정태철의 한국에서 부치는 편지
같은 하늘 아래 - 사주명리 인문학
| 여름 절기 2부
하지(夏至)·소서(小暑)·대서(大暑)
여름의 앞 절반이 지났습니다. 입하·소만·망종을 건너, 이제 여름은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섭니다. 그런데 사주명리에서 여름의 가장 깊은 자리는, 단지 가장 뜨거운 자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동시에 돌이킴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동지(冬至)에 음(陰)이 극에 이르렀을 때, 그 안에서 일양(一陽)이 처음 움직였습니다. 봄·여름의 모든 기운은 그 작은 한 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 — 양(陽)이 극에 이르는 자리는 어디인가. 바로 하지입니다. 한의학 오운육기(五運六氣)에서 오월(午月)은 천풍구(天風垢)의 자리, 곧 양기가 절정에 이르되 그 안에서 음이 처음 생장하는 자리로 읽힙니다.
여름 2부 — 하지·소서·대서는 바로 이 역설의 자리입니다. 양극음생(陽極陰生), 양이 극에 이르는 그곳에서 음이 비로소 태어납니다. 환함이 다하는 자리에 서늘함이 자라고, 뜨거움이 다하는 자리에 가을이 첫 숨을 쉽니다. 한여름이 우리에게 새겨 둔 오래된 이치입니다.
하지 — 가장 높은 자리에서 돌이키는 마음
양력 6월 21일경 / 황경 90° / 오월(午月)의 한가운데
하지(夏至)는 한 해 가운데 낮이 가장 긴 날입니다. 한반도에서는 해가 14시간 35분 동안 떠 있고,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는 그보다도 더 깁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백야에 가까워지는 이 빛의 끝자락 — 그것이 하지의 자리입니다.
지(至)는 '이르다, 다다르다'는 뜻입니다. 하지는 여름이 다다른 자리, 더 나아갈 데가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동양의 사유는 늘 이렇게 묻습니다. 더 나아갈 데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답은 한결같습니다. 돌이키는 것입니다.
《주역(周易)》에는 "물극필반(物極必反)", 곧 사물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간다는 이치가 있습니다. 가장 환한 날, 그 빛 안에 이미 짧아지기 시작하는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가장 양(陽)이 강한 날, 그 안에 음(陰)의 첫 씨앗이 내려앉습니다.
사주명리에서 오(午)의 지장간은 병화(丙火)·기토(己土)·정화(丁火)로 읽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뜨거운 글자인 오(午)의 가운데에 흙(己土)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불 사이에 흙이 자리해, 끝없이 솟구치려는 불의 기운을 땅으로 가라앉힙니다. 자연은 가장 뜨거운 자리에도 그 열기를 받아 갈무리할 흙을 미리 마련해 둡니다. 한여름의 들끓는 열기가 가을의 결실로 옮겨 가는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옛 농가에서 하지는 모내기가 끝나는 마지막 때였습니다.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는 속담이 그래서 생겼습니다. 모를 다 심은 농부는 이제 비를 기다립니다. 분주함이 멈추고 기다림이 시작되는 자리 — 그것도 하지가 자연에 새겨 둔 결입니다.
카자흐스탄의 6월 하순은 스텝이 가장 풍요로운 때입니다. 가축은 살이 오르고, 풀은 가장 푸르며, 백야에 가까운 긴 낮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알았습니다. 가장 풍요로운 이때부터 이미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풀을 베어 말리고, 가축의 털을 깎고, 우유를 발효시켜 쿠미스(қымыз)와 슈바트(шұбат)로 갈무리하는 일이 시작됩니다. 가장 환한 날 그늘이 시작되듯, 가장 풍요로운 계절에 이미 부족의 계절을 위한 손이 움직입니다.
하지의 기운을 품은 사람은 더 오를 수 있을 때 멈춥니다. 가장 잘 나갈 때 한 걸음 물러서서 다음을 봅니다. 정점에서 스스로 돌이키는 것 — 그것이 후회를 피하는 길입니다.
소서 — 뜨거워지는 밖, 차분해지는 안
양력 7월 7일경 / 황경 105° / 미월(未月)의 시작
소서(小暑)는 작은 더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작다'는 말은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큰 더위인 대서 앞에 놓인, 본격적인 더위의 시작입니다. 햇살이 따가워지고 바람조차 뜨거워져, 절로 부채를 들고 그늘을 찾게 되는 때입니다.
사주명리에서 소서는 미월(未月)의 시작입니다. 미(未)의 지장간은 정화(丁火)·을목(乙木)·기토(己土)로 읽습니다. 여름의 마지막 한 달인 미월은 흥미로운 자리입니다. 화(火)와 목(木)이 들어 있지만, 정기는 토(土)입니다. 미월을 '양화토(陽火土)'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여름의 뜨거움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 곡식을 익히는 자리 — 그것이 미월의 본의입니다. 봄에 뿌리고 여름 내내 길러 온 모든 기운이, 이제 흙의 갈무리 안에서 결실로 변환되기 시작합니다.
이 무렵 한반도는 장마철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물과 땅의 흙이 만나, 벼는 가장 빠르게 자랍니다. 농가에서는 모를 낸 뒤 20일이 지난 논의 김을 매고, 퇴비를 장만하고, 논두렁의 잡초를 깎습니다. 더위 속에서 하는 일이라 고되지만, 이 한 번의 김매기가 가을의 수확을 좌우합니다.
소서의 절식은 민어입니다. 한의학에서 민어는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여, 더위에 지친 오장육부의 기운을 돋우고 뼈를 튼튼히 한다고 보았습니다. 더위에 차가운 것만 찾기 쉬운 이때, 옛사람들은 오히려 따뜻한 성질의 음식으로 속을 보양했습니다. 차가움으로 뜨거움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안을 따뜻이 지켜 바깥의 더위를 견디는 지혜 — 이것이 소서의 또 다른 결입니다.
고려인의 여름 식탁에도 같은 슬기가 있습니다. 더위에 입맛을 잃을 때 차게 말아 먹는 국시(Кукси)는 한반도의 냉면과 닮았으나, 더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강제이주 이후 척박한 땅에서, 고향의 면(麵) 음식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고려인들은 메밀과 밀가루로 다시 국수를 뽑았습니다. 거기에 오이와 계란과 고기를 얹고, 차게 식힌 육수를 부어 더위를 견뎠습니다. 한 그릇의 국시 안에는 고향의 기억이 들어 있고, 그것이 곧 한여름을 건너는 힘이었습니다.
소서의 기운을 품은 사람은 더위를 피하지 않습니다. 작은 더위를 견디는 사람은 큰 더위도 견딥니다. 다만 견디되, 안을 비우지 않습니다. 바깥이 뜨거울수록 안을 더 정성껏 채웁니다.
대서 — 여름의 절정 안에 자리한 가을의 기척
양력 7월 23일경 / 황경 120° / 미월의 후반
"염소 뿔도 녹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대서(大暑)는 그렇게 뜨거운 자리입니다. 일 년 가운데 가장 더운 시기, 한낮의 햇살이 정수리를 두드리고 밤에도 열기가 가시지 않는 때입니다.
그런데 옛사람들의 슬기는 정확히 이 자리에서 빛을 발합니다. 가장 뜨거운 때, 그들은 가을의 기운을 미리 청했습니다.
복(伏)이라는 글자가 그것입니다. 초복·중복·말복으로 이루어진 삼복(三伏)은 24절기는 아니지만, 절기와 짝을 이루어 여름의 한복판에 자리합니다. 복(伏)은 '엎드린다'는 뜻인데, 무엇이 엎드린다는 것일까요. 가을의 금(金) 기운이 여름의 화(火) 기운에 눌려 엎드린 날 — 그것이 복날입니다. 그래서 복날은 반드시 경일(庚日), 곧 천간이 경(庚)인 날로 잡습니다. 경(庚)은 오행으로 금(金)이며, 계절로는 가을입니다.
여기서 옛사람들의 깊은 사유가 드러납니다. 가장 뜨거울 때, 그들은 그 더위에 그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가을의 금 기운을 달력 안으로 끌어들여, 한여름의 한복판에서 가을을 미리 만났습니다. 한여름의 한복판에 이미 가을이 깃들어 있음을 알아채어, 그 이치를 생활 속 풍속에 새겨 두었습니다. 동지에 일양이 생기고 하지에 일음이 생기듯, 인간의 달력 안에도 자연의 같은 결이 옮겨 적힌 것입니다.
복날의 음식 또한 같은 결입니다. 삼계탕·민어탕·육개장은 모두 뜨거운 것으로 뜨거운 것을 다스리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음식입니다. 한여름의 화기에 몸의 양기가 모두 바깥으로 떠올라 속이 비고 차가워질 때, 따뜻한 국물로 안을 채워 균형을 되찾는 지혜입니다. 동시에 수박과 참외, 옥수수 같은 제철 과일이 식탁에 오릅니다. 안은 따뜻이, 바깥은 서늘히 — 이것이 대서를 건너는 옛 슬기입니다.
대서 무렵 카자흐스탄 스텝의 더위도 만만치 않습니다. 알마티의 한낮은 섭씨 35도를 넘고, 남부 크즐오르다는 그보다 더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가장 뜨거운 때야말로 가장 깊이 안을 다스려야 하는 때라는 것을. 가장 막힌 자리야말로 다음을 준비할 자리라는 것을. 고려인 1세대가 황무지 위에서 일군 모든 것이 그 슬기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대서의 기운을 품은 사람은 끝에서 다음을 봅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서늘한 것을 청하고, 가장 풍요로울 때 가장 부족한 때를 떠올립니다. 다 이르렀다고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이미 다음 계절을 시작합니다.
여름 2부를 마치며 — 다 이른 자리에 다음이 깃듭니다
하지·소서·대서는 한 가지를 함께 가리킵니다. 극에 이른 자리는 끝이 아니라, 다음이 처음 움직이는 자리라는 것.
하지는 가장 환한 날 그 안에 이미 짧아지는 시간이 깃들었음을, 소서는 더위를 피하지 않되 안을 비우지 않는 견딤을, 대서는 가장 뜨거운 날에 가을의 금(金) 기운을 미리 청하는 옛사람의 손을 보여 줍니다. 세 절기 모두, 절정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이미 다음을 심는 자리입니다.
고려인의 여름이 가르쳐 준 것도 같은 결입니다. 강제이주 첫해의 폭염, 배추 없는 우슈토베에서의 김치 담그기, 고향 면을 잊지 않으려 다시 뽑은 국수 — 모두 가장 뜨겁고 막막한 자리에서 다음을 심은 손끝이었습니다. 가장 막힌 자리가 곧 시작의 자리라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 준 분들이 여러분의 할아버지·할머니였습니다.
독자 여러분, 지금 당신의 삶에서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느끼십니까. 한계에 이르러 더는 갈 데가 없다 싶은 자리에 서 계십니까.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가만히 바라봐 주십시오. "지금 그 자리는 닫힌 문이 아니라,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하는 문입니다." 그 자리에 이미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지금 당신에게도 느껴지지 않습니까.
다음 주에는 가을의 첫 세 절기 — 입추(立秋)·처서(處暑)·백로(白露)를 읽겠습니다. 무성하던 여름이 어떻게 결실로 갈무리되는지, 양에서 음으로 넘어가는 큰 전환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정태철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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