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의 한국에서 부치는 편지
같은 하늘 아래 - 사주명리 인문학
| 여름 절기 1부
입하(立夏)·소만(小滿)·망종(芒種)
봄은 불현듯 다가왔습니다. 겨우내 닫혀 있던 음(陰)의 문이 어느 날 활짝 열리고, 그 안에서 양(陽)이 솟구쳤습니다. 입춘이 그 문턱이었습니다. 음에서 양으로 단번에 넘어가는 극적인 전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은 그렇게 오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던 양의 기운이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사방으로 번져 갑니다. 봄이 '전환'이었다면 여름은 '확산'입니다.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열린 문으로 들어온 빛이 방 안 구석구석까지 차오르는 것입니다. 밤이 짧아지고, 아침은 일찍 오고, 어깨에 닿는 햇살이 무거워지는 —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어느새 우리를 여름 한가운데에 데려다 놓습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여름 석 달을 "하삼월 차위번수 천지기교 만물화실(夏三月 此謂蕃秀 天地氣交 萬物華實)"이라 했습니다. 여름 석 달은 번수(蕃秀)라 하니, 천지의 기운이 사귀어 만물이 꽃피고 열매 맺는 때라는 뜻입니다. 봄이 발진(發陳), 곧 묵은 것을 밖으로 펼치는 시간이었다면, 여름은 그 펼쳐진 것이 무성하게 자라 빛나는 시간입니다. 봄은 시작이었고, 여름은 그 시작이 실제로 세상 속으로 펼쳐지는 시간입니다.
다만 한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랐습니다. 나는 기쁨에 취해 자꾸 높이 올라갔고, 태양에 가까워지자 밀랍이 녹아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솟구치는 힘만 있고 제어하는 힘이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사주명리에는 자연에서 배운 이치를 포착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열두 지지(地支) 가운데, 품은 기운이 오직 화(火)로만 이루어진 글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가장 뜨거운 한여름 한복판의 글자들 속에는 불의 기운을 다스리는 금(金)과 전환하는 흙의 기운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자연은 순수한 불의 기운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타오르기만 하는 것은 반드시 절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름은 단순히 뜨거운 계절이 아니라, 어떻게 타올라야 사라지지 않는가를 묻는 계절입니다.
입하 — 길어지는 빛만큼, 무거워지는 책임
양력 5월 5일경 / 황경 45° / 사월(巳月)의 시작
입하(立夏)가 되면 한반도의 산빛이 바뀝니다. 봄의 연둣빛이 짙은 초록으로 무거워지고, 새잎들은 무성해져 그늘을 만듭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낮이 확연히 길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빛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곧 일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입니다.
하(夏)는 여름, 입(立)은 선다는 뜻입니다. 입춘에 봄이 섰듯 입하에 여름이 섭니다. 봄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곧 방향이 핵심이었다면, 여름에는 얼마나 갈 것인가, 곧 강도가 핵심입니다. 봄의 목(木)이 한 방향으로 곧게 뻗는 기운이었다면, 여름의 화(火)는 사방으로 퍼지는 기운입니다. 그래서 여름의 사람은 힘이 넘치지만, 동시에 흩어지기 쉽습니다.
이 무렵 한반도에서는 입하차(立夏茶)라 하여 찻잎을 따 차를 만들고, 쌀가루에 쑥을 버무려 찐 쑥버무리를 절식으로 먹었습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차의 성질을 차다(寒) 하였습니다. 솟구치려는 여름의 불기운을 한 잔의 차가 차분히 내려앉혀 주는 것 — 이것이 입하의 지혜입니다.
사주명리에서 입하는 사월(巳月)의 시작입니다. 사(巳)는 뱀입니다. 몸을 감추고 있다가 한순간에 풀어 낚아채는, 인내와 폭발이 한 몸에 있는 동물입니다. 사월의 지장간은 무토(戊土)·경금(庚金)·병화(丙火)로 읽습니다. 봄의 인월에서 무토가 수기(水氣)에서 목기(木氣)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었다면, 사월의 무토는 목기에서 화기(火氣)로 넘어가는 전환점입니다. 그 뒤를 잇는 경금(庚金)은 쇠의 기운으로, 사방으로 번지려는 불에 마디(節)를 주어 한 방향으로 응축시킵니다. 마지막 병화가 태양의 불, 이 달의 본기(本氣)입니다.
한나라 동중서(董仲舒)는 여름의 화(火)에 인간의 덕목 예(禮)를 배속했습니다.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서 공자(孔子)는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 곧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라 했습니다. 불은 퍼지려 합니다. 그러나 퍼지기만 하면 모든 것을 태우고 스스로 꺼집니다. 예(禮)라는 마디가 잡힐 때, 그 불은 비로소 흩어지지 않고 세상을 밝힙니다. 사월의 지장간에서 경금이 병화 앞에 놓인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마디를 얻은 불이라야 결실에 닿습니다.
카자흐스탄의 5월은 스텝이 가장 빛나는 때입니다. 긴 겨울과 봄의 기다림이 끝나고 초원이 풀과 꽃으로 뒤덮입니다. 유목의 전통에서 이 시기는 가축을 여름 목초지(жайлау)로 옮기는 때였습니다. 한자리에 머물면 풀이 마르기에, 움직여야 살 수 있었습니다. 봄의 준비가 끝났으면 이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 입하의 기운이 그것입니다.
1937년 크즐오르다에 내려진 고려인들에게도 이 시기는 결정의 때였습니다. 시르다리야 강물을 끌어들여 논에 물을 대기 시작하면 더는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시작한 것을 끝까지 책임져야 했습니다. 입하의 기운을 품은 사람은 시작의 흥분이 아니라 지속의 책임을 아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소만 — 차오르되, 넘치지 않기 위하여
양력 5월 21일경 / 황경 60° / 사월의 후반
소만(小滿)의 소(小)는 작다, 만(滿)은 찬다는 뜻입니다. 작게 찬다 — 아직 다 차지는 않았으나 차오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리 이삭은 여물기 시작했으나 거둘 때는 아니고, 모는 자라고 있으나 아직 벼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중간에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이기도 합니다. 《도덕경(道德經)》 9장에서 노자(老子)는 "지이영지 불여기이(持而盈之 不如其已)", 곧 가득 채워 그대로 두려는 것은 채우다 멈추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릇에 물을 끝까지 채우면 넘칩니다. 그래서 소만은 '크게 참'이 아니라 '작게 참'입니다. 넘치기 직전에 멈출 줄 아는 것 — 그것이 소만의 지혜입니다.
이 시기 한반도의 농가에서는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였습니다. 단순한 치레가 아닙니다. 오행에서 붉은색은 화(火)의 색이며, 옛사람들은 그 붉은 기운이 나쁜 것을 물리친다고 믿었습니다. 풍속 하나에도 오행이 들어 있습니다.
크즐오르다의 고려인들이 해 온 일도 소만의 일이었습니다. 강제이주 직후 모래뿐인 황무지에서, 김만삼(金萬三)은 '선봉(先鋒) 콜호즈'를 세우고 벼농사를 일구었습니다. 적기에 일정하게 물을 대고 제초를 함께 해 수확을 끌어올리는 법을 찾아내 다른 농장에까지 퍼뜨렸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대면 모가 떠내려가고, 모자라면 뿌리가 마릅니다. 가득 차되 넘치지 않는 그 한 점을 지키는 일 — 그것이 소만의 농사였고, 황무지를 옥토로 바꾼 손끝이었습니다. 1949년 그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이 되었고, 오늘날 크즐오르다 시내에는 홍범도 장군의 거리와 더불어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남아, 고려인이 이 땅에 새긴 자취를 전하고 있습니다.
소만의 기운을 품은 사람은 이 긴장을 압니다. 일이 풀리기 시작할 때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봅니다. 《맹자(孟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법으로 한 말이 "물망물조(勿忘勿助)", 곧 잊지도 말고 억지로 돕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자라게 하려고 싹을 잡아당기면 뿌리가 뽑히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잡초에 묻힙니다. 기르되 억지 부리지 않는 것 — 소만의 농사가 가장 섬세한 까닭입니다.
망종 — 거두는 손과 심는 손이 하나가 되어
양력 6월 5일경 / 황경 75° / 오월(午月)의 시작
한 해 절기 가운데 가장 분주한 때를 꼽으라면, 망종입니다.
망(芒)은 까끄라기, 곧 보리나 벼의 이삭 끝에 달린 뾰족한 수염입니다. 종(種)은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종은 까끄라기 있는 곡식을 거두고 또 심어야 하는 절기입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망종까지 보리를 다 베어야 그 자리에 물을 대고 모를 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둠과 심음이 같은 때에 겹쳐, 옛사람들은 이 무렵을 두고 "발등에 오줌 싼다"고 했습니다. 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다는 뜻입니다.
거둠과 심음이 겹친다는 것 — 이것은 농사의 이야기이면서 삶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를 매듭지으면서 동시에 다른 하나를 시작해야 하는 때가 인생에는 있습니다. 헤어짐의 인사를 건네면서 만남의 인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 익숙한 길을 거두면서 낯선 길에 발을 내딛는 시간.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 망종이 조상을 기리는 날이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옛사람들은 망종을 손[損], 곧 사람을 해코지한다는 귀신이 없는 날로 여겨, 청명과 한식에 산소를 손보고 망종에 제사를 올렸습니다. 한국의 현충일이 6월 6일, 망종 무렵으로 정해진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한 해 농사가 가장 바쁜 때에 잠시 손을 멈추고 먼저 간 이들 앞에 서는 것 — 거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고려인 여러분에게 이 대목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봄의 한식에 부모의 날을 지내 가족이 함께 묘지를 찾고, 조상 앞에 음식을 올리던 그 마음. 거둠과 심음이 겹치는 자리에는 늘 떠난 이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주 1세대가 떠나며 그 기억이 흐려질 때, 동시에 다음 세대가 새 정체성을 심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망종의 자리입니다.
망종은 오월(午月)의 시작입니다. 오(午)는 말(馬), 십이지에서 가장 빠르고 뜨거운 동물입니다. 오시(午時)는 한낮, 양기가 가장 강한 시간 — 여름의 한복판, 낮의 한복판, 불의 한복판이 오(午)의 자리입니다. 《대학(大學)》은 "지소선후 즉근도의(知所先後 則近道矣)", 곧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거둠과 심음이 겹칠 때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지 아는 것. 조급함이 아니라 현명함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6월은 한 해에서 가장 분주한 때입니다. 낮이 가장 길고, 가축은 여름 목초지에서 살을 찌우며, 논의 물은 한시도 손을 떼면 안 됩니다. 이 며칠을 놓치면 한 해가 어긋났습니다. 강제이주의 첫 세대가 모래땅을 논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짧고 강한 여름에 거둘 때와 심을 때를 한 치도 어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망종의 땅에서는, 그저 부지런한 것이 아닌 때를 아는 것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망종의 기운을 품은 사람은 이 긴박함 위에 발을 디딥니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감각. 그러나 그것은 허둥거림이 아니라, 끝낼 것을 끝내고 시작할 것을 시작하는 슬기로움입니다.
여름 1부를 마치며 — 어떻게 타야 떨어지지 않는가
여름의 첫 세 절기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물음이 됩니다.
입하는 물었습니다. 타오르되 태우지 않을 수 있는가. 소만은 물었습니다. 가득 차오를 때 멈출 줄 아는가. 망종은 물었습니다. 거두면서 동시에 심을 수 있는가.
봄의 세 절기가 깨어남과 시작을 물었다면, 여름의 세 절기는 지속과 절제를 묻습니다.
황무지로 버려졌던 시르다리야 강가의 모래땅을 고려인들이 옥토로 바꾼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입하에 몸을 움직이고, 소만에 넘치지 않게 물을 대고, 망종에 거둠과 심음을 동시에 해낸 손끝이었습니다. 고려일보를 읽는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끝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카루스의 날개를 녹인 것은 태양이 아니라, 더 높이 오르려는 마음이었습니다. 불꽃은 사라지려 타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밝히려고 타는 것입니다. 다만 그 타오름이 헛되지 않으려면, 여름의 열기가 가을의 낟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한 것이 그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여름의 나머지 세 절기 — 하지·소서·대서를 읽겠습니다. 한 해의 가장 긴 낮과 가장 뜨거운 열기, 그리고 그 절정 속에서 이미 시작되는 가을의 씨앗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AI로 구성된 이미지
정태철
교육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