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6월25일이 오면 내 나이 19세였을 때 인민군 군인으로서  국방군,미군 및 16개국제연합군 외래무장간섭자들과 한반도동해안에서 싸움하든 무자비한 전투의 나날이 어제 있었든 일처럼 계속 눈앞에 떠오르며 나는 그 나날을  일생에서 잊을래야  잊을수 없다.그때마다 억울하게도 승리의 날을 보지못하고 전사한 많은 전우들의 얼굴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인민군주력부대는  38선을 넘어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계속 남진했지만  인천에 상륙한 국제연합군에 포위되어 적지않은 장병들이 포로되었다. 이윽고 국제연합군은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대학생이였던 나는 우리 대학의 모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업을 중지하고 평양에 있는 군관학교에 입학했고 단기 강습을 받은 후 그 즉시로 포병소대장으로서 부대에 배치되자마자  방어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우리 부대에서는 크고 작은 후퇴전투들에서 매번 많은 장병들이 전사했고  부상병들이 발생했다  우리부대는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무질서하게 후퇴하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 부대가 어느 한 무명고지에 이르렀을 때 여기서 우리 소대도 시급히 포진지를 구축해야했다. 부대장은  이번에는 이 유리한 무명고지에서  진격하는 국방군,미군 및 국제연합군 외래무장간섭자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하기로 결심한 것이였다. 

밤이 지나고  아침해가  동녘하늘에 떠올랐을 때 우리 방어계선앞에는  공격전을 개시하기 위한 거대한 적군병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인민군에는 비행기가 없기 때문에 폭격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적들은 대낮에 대담하게 수많은 땅크, 장갑차 등 기계화부대들을 우리앞에 가깝게  집중시키는것이였다.

나의 가장 친근한 벗인   정창수는 나의 고향친구이며 같은 대학수물과에서 같이 공부했고 대학기숙사에서는 한 방에서 같이 살았고  같은 군관학교에서 같이 단기강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같은 포병 중대에서  같은 전투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그는 우리 박격포 포병중대의 제3소대장이였고  나는 제2소대장이였다.  

이른 아침에 바로 우리 무명고지아래에 집중된 적의 대부대를 본 정창수는  지금 이시각은 우리에게로 죽음이 사정없이 한초한초  접근하고 있다는것을 예리하게 감촉 했다.  겁을먹은 그는 바로 곁에 있는 우리 포진지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다른 데로 끌고 오자 대원들이 보이지 않는데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 여보, 적아의 역량대비를 해봤는가 ? –하고 물었다. 나는 인차 대답을 못하고 있을 때 그는 

계속하여

- 투항하자우! -라고 내게  귀속말로 말했다. 정창수의 나직한 말에는 복종을 강요하는 위압기가 느껴젔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한  너무나 돌발적인 그의 질문에 그저 무의식적으로 

- 투항이라니 ?-하며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 이제는 성년이지, 학생이 아니야, 인민군군관이다. 왜 그렇게 염통이 작은가 ?- 하고 소리치는 그의 말마디는 고추처럼 매웠고 쓰거웠다.

-대원들은? 

- 대원들을 다 데리고 손을 들고 투항하자- 라고 말하는 정창수는   노동당원이였다.  

나는 이 때 절대로 투항할 수 없으며  성스러운 조국보위전쟁에 나선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우리 선배들에게서 늘 교양을 받았기 때문에  

- 그러지말고,  한바탕  또  해보구 그다음에 보자.  투항하게 되면 지금까지  최고사령관앞에 충성을 맹세한 보람이 없소. – 라고   말하며 그에게 냉큼 동의하지 않았다. 

      

- 야, 이새끼야, 너 정신있니 ?  포탄 3000발 가지고 이 넓은 데서 하루종일 뭘 하자는거야 ! 그럼  한두시간 후 넌  이 무명고지에서 개죽음을 당하라우 . 너의 시체는 산짐승들이 제때에 나타나 막 뜯어먹게 되면 넌 인차  외로운 해골귀신으로 변해   영원히 여기에 남으라우  –라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는 노기가 서렸다.

- 난 외롭지않다 . 대원들이 있잖는가. 우리 앞에는 보병중대, 중기관총중대도 있는데… 

- 무기없이 그래 맨주먹으로 적을 막겠다는 말이지  . 이 머저리 새끼야… 지금 우리 사정은 폭풍우앞에 선 초 불이다. - 하고 말하는 그의 두눈에는 지금까지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몸서리칠 정도의 싸늘한 냉기가 풍겼다. 사실 정창수소대장의 말이 옳았을 수도 있었다. 

적아의 역량대비를 하게 되면 원래 공격하는 적군의 무력은 전투기-폭격기까지 동원되는 조건에서 고사포 한대없는 아군무력에 비하면  적어도 우리 무력의  10배이상 우세하다고 보아야 했고 그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아군무력이랑 사실상 대비가 안된다.

내모습을 아래우로 훑어보는 그의 눈빛은 놀랄만치 빠르게 변했다. 그는 돌아서자  자기 진지로 향했다.  아니,그럼 지금 뭘해야 한단말인가?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백기를 들고 투항을 하다니 , 투항하는 나를 보면 대원들이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총알이 앞에서만 날아오는것은 아니다. 내 뒤에서도 내 옆에서도 날아올 수 있지 않는가?!

이 때 나는  

-야, 이새끼야,  넌 반동이다.  넌 네맘대로 너갈데로 가라! - 하고 그의 뒤를 따라가며 크게 소리첬다. 

정창수소대장은  걸음을 멈추고 홱 돌아서더니 재빠르게 자기 권총집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아주 냉정한 눈초리로 나를 쏴보드니 내 가슴팍을 향하여  

“다다땅 …” 하고  몇발을 연달아 발사했다. 

고막이 터지는듯한 요란한 권총소리에 나는 정신없이 그자리에서 쓰러졌다. 얼마후에 정신을 차리고 그자리에서 겨우 일어서 주저앉고  하도 어이가 없어 한동안 

멍청하니 그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고   전쟁판에서는 총알이 앞에서만 날아오는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했든 곳에서도  날아온다는것을 절실히 느꼈고 이 전장판에서는 “ 도대체 누구도 믿을 놈이 없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 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심장이 찢어지고 가슴이 터지는듯한 아픔을 참으며 한손으로 으스러지게 앞가슴을 꽉 눌렀다. 

그런데 정창수소대장은 내게 총뿌리를 돌려대고 쏘기는 했지만 일부러 빗쏘고 달아난것이다. 

총뿌리를 내가슴앞에 내댄 너부죽한 분노한 흉악한 정창수의 검은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사상과 지향이 아무리  하루 아침에 변하게 했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악착스럽게 변한단 말인가. 

그런데 정창수의 사정이  조국보위의 의무를 망각하고  결국  적편으로   투항했지만  하여튼 그의 개인사정이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가장 가까운 친구인 나를 권총으로 쏘고  달아나게 된것은 결정적 순간에  이르러 그는 자기만 살기 위해 친구를 냉정하게 희생시킨것으로 되며 이것은 정창수가   스스로  택한 운명의 길이 였을것이다 .그렇지만 운명이 아무리 모질다 하더라도  제나라를 지켜야 할   의지 앞에서는 무능력 한것이다.

정창수는  두손을 들고 무조건 항복했고  전후 서울에서 끝가지 제명대로 살았으니 투항을 거절하고 투쟁의  길을 선택한 그의 전우들은 무명고지전투에서 거의 다 전사했다.

정창수는  지울수 없는 흔적과 일생에 두고두고 가슴허비는 상처를 나에게 남겨놓고 사라진것이다. 사람은 의리와 인정이 있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지 안는가 그런데   의리도 인정사정도 아무것도 없는 놈인 정창수에 대한 격멸감과 격분을 억제할수 없는 고민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1950년 6월25일에 시작된 남북전쟁은 그후 중국지원까지 참전하게 된 규모큰 세계대전으로 변했고  휴전협정을 맺은53년7월까지의 남북의 사상자는  북측이 100여만명,  남측이 150여만명이다. 남북을 합하면 모두 250만명이다.

양단된 남북조선은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되리라는데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군사무기가 최고도로 발달된 상황에서  무력통일의 망상을 영원히 청산해야 하며 나는 평화적통일에 대한 건설적인  임의의 제안도 환영한다.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