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사할린 섬은 일본말로 카라후토라고 한다. 우리집 식구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강점 시기에 한반도 그리고 그후에는 사할린 섬에서 살았다.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준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해마다 8.15 해방의 날이 가까워 오면 그리운 내 고향 사할린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일제의 고통에 시달리던 부모들이 해방후에 한 이야기도 회상된다...
물론 우리집 부모도 강제로동에 사할린 섬에 끌려온 다른 조선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빨리 망할 것을 기다렸다... 일제시대에 아버지는 조선에서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본 부자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시키는 일을 뭐나 순종하여 실행했다. 그러나 ''자기 나라에서 매를 맞으면서 살거나 정월 초하루에 뜨거운 밥주걱으로 뺨을 맞는다니...어떻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하루라도 이 꼴을 보지 않고 천대 없이 살 곳이 없을까?> - 아버지는 깊은 밤에 아득한 먼 길을 바라 보면서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고 한다.고민하던 중 하루는 한반도 '조센진'(한인들) 들을 배에 실어 어디론가 돈벌이를 보낸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도 떠나기로 결심했다.'이 곳보다 못할까?' –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가난한 짐을 꾸리고 식구들, 친척들과 연락선에 탔다...며칠이 지나 연락선이 멈추더니 ''여기서 모두 내리라!''고 명령했다. 내리고 보니 이것이 카라후토 (사할린 섬)였다. 병으로 앓는 자들을 가는 도중에 바닷물에 내던졌다고 했는데 그 중에는 나의 사촌 언니도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의 기대는 현실과 어긋났다. 여기에서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자들이 주권을 자기 손에 틀어 쥐고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낙심을 하게 되였으나 이제는 왜놈들을 피해 더 어디로 갈 곳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사할린 섬의 우글레고르스크 항구도시에 머물게 되었다. 왜놈들은 심지어 조선인들로 하여금 성과 이름도 일본 성명으로 바꾸게 하였다. 아버지의 '최'씨 성은 일본어로 ''후미야마 ''가 되었고 이름은 사이까산으로 바뀌였다. 친척들도 이젠 일본 이름으로 서로 부르게 되었다. 우글레고르스크를 비롯하여 남부 사할린 섬의 도시들에도 한국어로 가르치는 학교는 죄다 없애 버렸고 조선말을 한 마디라도 하면 회초리로 매를 맞았다. 나는 그 시절에 4살이어서 학교를 아직 다니지 않았으나 언니는 일본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차별과 미움을 받았다고 하였다. 드디어 1945년에 남부 사할린은 소련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으며 1946년에 일본강점자들을 모조리 배에 실어 그들의 나라로 쫓아 보냈다. 일본인 어른들과 아이들이 무엇인가 가득 든 배낭을 어깨에 메고 항구를 향해 가던 모습이 어렸던 나의 기억에도 남았다. 쓰라린 날을 뒤돌아보지 않고 해방후 부모들은 여러 분야에서 일하면서 소베트정권의 인간대우를 받았으며 우리들은 조선성명을 가지고 조선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해방은 실로 동쪽에서 해가 떠서 우리에게 밝은 빛을 뿌려주는 1945년에 일본제국이 패전하여 일제강점자들을 쫓아버린 그 날은 참으로 동쪽에서 해가 뜨는 광명한 기쁜 날이다. 해방의 날을 광복절이라고 하는데 ''광복''이라면 빛을 되찾음, ''잃어버렸던 국권을 되찾음' 이란 뜻을 담고 있다.사할린 섬을 회상할 때면 반드시 해방의 날을 맞이했던 일이 기억난다. 8.15 명절이면 일제시대 언니가 통학했던 해방후 조선학교 앞에 시민들이 모여 기쁜 날을 흥겹게 맞이했다. 가족마다 빛다른 맛좋은 음식을 장만해서 온 식구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왔었다. 우리 나라 음악(민요)이 흥겹게 울리는 운동장은 운동애호가들의 마라톤,, 여성들은 그네뛰기,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각 나라의 수도 알아맞치기, 남성들은 씨름, 장기두기 등 여러 가지 오락으로 명절 맞이에 찾아 온 군중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하였다. 그리고 달리기 종목에는 연세가 비슷한 아줌마들이 나와 한 줄에 서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힘내 보는데 나의 어머니도 명단에 등록되어 1등을 쟁취하고 상을 받던 일도 생각난다.십년이면 산천도 변한다고 하는데 해방후 이미 74년이 지났으니 그 동안의 변동을 다 이야기 할 수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카자흐스탄에 이주하여 알마티에서 살고 있다. 몇십년전부터 이곳 시문화공원에서 고려인들이 매년 해방의 날 8월 15일 (경우에 따라 날자가 바뀔 수도 있다)에 한국문화의 날로 맞이하고 있다. 축사가 있고 재미있는 공연, 아이들의 그림그리기 경기, 군중놀이가 진행된다. 광복절은 고려인들이 고대 기다리는 명절로 되여 있다.
최미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