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알파라비카자흐국립대 동방학부 극동학과와 인연이 있는 분들은 대한민국 '한국' 외대 역사학을 전공한 이병조
교수님을 볼 수 있다. 이 교수님이 벌써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에서 지내시는지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전에 동방학부에 취직하여 일하신 파견교사들과 다른 점은 이병조 교수님이러시아어를 충분히 소유하였음으로 현지 대학생들과 접촉하기가 쉬운 것이다.교수님은 첫날부터 언어로 소통하는 방면에서 현지 교수님들과 학생들 간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특히 역사를 전공한 교수님의 강의 시간에 상급반에서는 특별 역사용어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만일 역사 어휘가 어렵거나학생들이 그것을 이해하기에 능력이 부족한 눈치가 보일 때면 간혹 러시아어로도 설명해 준다. 양국 나라 언어를 능숙히 소유한 결과 별 어려움이 없이 강의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물론 카자흐스탄과 한국은 20년 간 외교 관계를 맺고있는 우정이 깊은 나라이나마 사고방식과 문화가 서로 다른 나라이기에 처음에는 카자흐스탄땅에서 적응이 좀 어려웠던 것도 어느 정도 짐작할만 하다. 그러나 남에게 호감을 주는 정중성과 사교성이 있으신 이교수님은 짧은 시일에 전 한국학과
교수님들과 잘 어울리면서 쉽지 않은 대학교 임무를 수행하며 또한 보이지 않는일도 찾아내면서 모든 학과 일을 처리해 나갔다. 새학년도 신입생 환영회로부터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교수님은 학부장 또는 학과장의 부탁에 따라 모든 일을 어김 없이 조직실행하며 대학생들을 귀여워하는 교수님 역시 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학생들은 휴식 시간이 되면 교수님을 찾아 인사를 드리려고 5층에 오르내리곤 한다.
이상에 지적했듯이 일을 찾아서 하는 이교수님은 봄이면 겨울 동안 눈속에 파묻혔던 나뭇잎을 학생들과 함께 청결하며 또 늦가을이면 바람에 불려 사방에 떨어진 누런 단풍잎들을 학교 마당이나 학교 건물 주위에서 깨끗이 청결한다. 이런 작업에 동원되는 학생들은 아무런 불만이 없이 교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한결 같이 이 작업에 나선다.
이병조 교수님은 역사 박사 직책을 떠나서 모범교육자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들이 다른 체제에서 태여나 자랐기에 교수님의 성품이 우리와 차이나지만이러한 품성은 바로 한국에서 받은 교육의 결과라고 본다. 제가 이전에 '한국어 교사연수'로 여러번 한국에다녀왔었는데 많은 것을 듣고 본 결과 한국 학생들 다수가 어른들의 부탁이라면 반드시 무조건 공손하게 ''네''하고 대답하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물론 시키는 일이 싫은 경우도 있었겠지만 ) 다른 답변은 들을 수 없었으며 '싫어요, 시간이 없어요, 못하겠어요.' 하는 부정적인 표정을 나타내는 현상은 볼수도 없거니와 들을 수도 없었다. 교육자로서 그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어쩌면 저렇게 교육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대한민국 정부가 정당한 교육의 뿌리를 심는다는 것을 증명하여 준다. 이병조 교수님 역시 어려서부터 그러한 환경 속에서 생활했고 교육을 받았음으로 시간이 퍽 지
났어도 교육의 뿌리가 남아있는 것이다. 이병조 교수의 가정교육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보인다.
카자흐국립대 국제관계 학부에서 공부하는 교수님의 아들 이지환도 참으로 그러한 학생이다. 현재 임시 대학 수업을 중지하고 태여나 어린 시절을 지내보낸 대한민국에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 이에는 부모님들의 교육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열심히 군대 복무를 끝내고 제대되면 꼭 부모님을 찾아 카자흐스탄에 와서 다시 대학 수업을 계속 할 것이다.
한국 6.25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그런환경에서도 학교도 다녔고 차후 대학 문턱까지 넘어섰다. 이전에 난관을 겪은 한인들은 그 비극을 잊을래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해외에거주하는 우리들은 "태극기는 휘날린다" 및 기타 영화작품들에서 구경하면서 알고 있으며 그 현상을 그려볼 뿐이다.이병조 교수님 역시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효자로서 부모님들을 열심히 도왔다.
미성년으로서 힘겨운 농사 일을 도우면서 고생이 많았었다는 것을 짐작할만 하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자신이 그 때의 상황에 의해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자식들을 공부시키시려는 결심을 품고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자식들이 대학 졸업장을 받아쥔 기쁨을 보게 되었다.
1997년에'한국'외대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그후 석사과정을 마치고 2008년에 박사 과정을 취득하고 외대에서 강사로 근무한 후 CIS 여러 지역들에서재외 한인들의 역사탐구에 착수했다. 우선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의 < 정신
문화적 기치: 계승, 변형이>이 테마이다. 다음은 중앙아시아 지역 해외동포들의 독립
운동유 적지, CIS 고려인들의 역사도 탐구했다. 물론 이 지역대학들에서 강의 및 조사도 있었으며 러시아지역에서 특히 블라지보스토크, 하바롭스크, 우수리스크 등이고,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강의와자료 수집인데 유명한 역사 유적지인 사마르칸드에서 중요한 연구자료들을 여러 건수집했다. 다음 교수님은 탐구활동을 했는데 그중에는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과 연관된 자료며, 러시아 블라지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시에서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한 중요한 자료들이 있다. 이뿐이 아니다.
1994-1995년 기간에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레나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야쿠트스크 도시 한국 학교와 한국대학교들에서 강의를 했으며 그곳의 독특한 취향을 연구했으며그들의 생활과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들을 수집했었다. 안전을 모르는 교수님은 연구사업 이외에도 일본 도쿄국립대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한적도 있었고 150주년 고려인 이주정착사 및 카자흐민족의 역사와 연관된 특강도 했다.
이렇듯 극동학과의 힘이 되시며 자랑스런 교수님께 앞으로도 속도나 시간을늦추시지 마시고 극동학과의 발전을 위해 더욱 힘내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최미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