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는 심장과 마음의 시킴에 따라 주르게녜브명칭 콜레지 만화영화과에 입학한 아이들중 하나이다. 그런 연소한 나이에 자각적으로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이 드문 일이다. 다수 경우에는 자식들이 이 나이에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면 디자인과 연관된 교육기관으로, 정밀과학에 실력이 있으면 경제과로 보내는 등 부모들이 확정한다. 그런데 남 아냐는 자립적으로 선택한 후에 자기의 결정을 부모들에게 알렸다.
그 애는 졸업작품으로 <작은 새들>이라는 만화를 창작했다. 이것은 만화의 주제가 모든 규칙에 따라 준수된 창작품이였다. 심사위원회 위원들은 아냐의 졸업작품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전망에는 아냐가 관람자들을 위한 좋은 만화영화도 창작할 수 있다는 의견을 말하였다. 아냐의 만화를 동창생들도 보고 평가했고 친척들은 어린 창작가의 철학적 사색이 담긴 만화를 보고 감탄하였다. 항상 겸손한 아냐는 그와 인터뷰를 한다니 좀 격동된 기분이였다.
- <고려일보>와 같은 위신있는 신문이 저의 창작에 관심을 돌리니 좀 거북감이 느껴집니다. 저는 아직 한 일도 별로 없는데요…아냐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미 그린 그림들을 꺼낸다. 아냐는 시험을 앞둔 아이처럼 흥분된 상태다. 나는 그 애를 보면서 생각했다: <넌 이런 <시험>을 앞으로 여러 번 치르게 될 것이지, 그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너의 운명이 달리기도 할 거야. 너의 생활이 얼마나 재미있고 가치가 있는가하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달릴수도 있단 말이야!> 그 애의 생활은 어릴적부터 창작과 환상의 세계와 인연이 있었다. 아마 아냐는 원래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로 태여난 것 같았다. 아냐는 일찍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였다 – 그것도 그럴 것이 본받을 사람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붓글을 잘 썼고 아버지는 직업적 화가이다. 아빠는 딸애에게 미술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러니 아냐의 직업선택에 아버지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친척들 중에도 자기가 전공한 직업외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냐는 자기의 구상을 졸업작품에 담았으니 친척들보다 한걸음 앞선 셈이다.
-너네 콜레지의 모든 졸업생들이 다 이런 식으로 졸업시험을 치른거야?
-많은 사람들은 저의 아니메를 불규격적이고 비전통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다시 말해서 윤곽이 없이 즉시 얼룩과 물감으로그려졌다는 말입니다. 저의 창작품이 다 자체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다른 창작품과 차이나는 점이라고 모두들 말합니다. 준비할 시간도 적었습니다 – 아냐가 이야기 한다 – 창작품의 모든 단계를 나 자신이 직접 실행한 것으로 하여 시험작품이 저에게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니메를 만드는 과정에 알아보고 소화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아니메를 잘 만들려면 음악가, 촬영가, 옛말작가 그리고 아니메를 만드는 기타 많은 전문가들이 참가합니다. 물론 교사들이 저를 도왔지요. 그런데 이러저러한 부분을 어떻게 더욱 두드러지게 해야 하는가하는 상담식으로 도왔습니다. 아니면 예를 들어 아니메에서 사건의 전환을 어떻게 활발하게 할 수 있는가하는 충고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아니메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만든 것입니다. 나 자신도 이런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거던요…
아냐는 인내성을 내여 매 부분을 꼼꼼히 그렸다. 아니메의 주인공들이 되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림들이 많을수록 주인공이 더 질좋고 표현력있게 나온다고 한다. 이것이 아주 세심한 주목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 아냐가 자인한다 – 재미있는 결과에 대한 만족을 미리 느끼는 것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지루한 과정을 극복함에 힘을 줍니다.
- 아냐, 그런데 음악은 어떻게 해결했지?
- 음악도 제가 선택했어요, 다행하게도 아니메의 서정적 내용에 맞더라구요. 그래서 오래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아냐가 <작은 새들>이란 아니메에 어떤 사연을 이야기 했는가? 얼핏 보기에는 내용이 간단하다. 문제는 표현력에 있는 것이다. 하긴 우리의 생활 그리고 만화나 옛말의 주인공들의 생활도 평범하다.. 문제는 우리의 주인공이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있다. 작은 새 두 마리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새들을 각각 다른 새장에 앉혀 헤여지게 한다. 새들은 이별에 서로 그리워하며 애수에 잠긴다. 결국 새들이 자유롭게 되어 서로 만나며 악은 처벌을 면치 못한다. 자유만세! 이것이 내용 전부이다. 그런데 이 모든 사연에는 선과 악의 영구한 투쟁, 주인공들의 기대와 숙망 그리고 아니메의 저자인 아냐의 다정한 태도를 보게 된다. <이 소녀에게 세상 사정에 대한 지혜가 어디에서 그렇게 나오는걸까?> - 이런 질문이 스스로 나타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아냐에게 다음의 질문을 한다.
-아냐야, 넌 언제부터 만화영화를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했지? 우리 모두가 아동시절을 겪었지만 자신이 직접 만화영화를 제작해 보려고 생각한 자가 어린 화가들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을걸?
- 열네살 때에 그 어떤 사연을 쓰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 시기에 일본 아니메가 저를 이끌었거던요, 하긴 오늘날까지도 그의 영향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시아 테마가 다정함과 미묘성으로 저에게 소중합니다. 아마도 내가 부드럽고 다정스러운 노래와 멜로디를 들으면서 자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많은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잠들기전에 부모들이 옛말을 해주던 일을 기억합니다. 나는 소련시대에 제작한 만화영화를 보면서 자랐고 그후에는 디즈니의 영화도 보았습니다. 만화의 내용에 담긴 짤막한 사연들이 나의 마음속 깊이에 파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다 내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니 자연히 사랑하는 주인공들을 그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화영화와 더 가깝게 접촉하게 된것 같애요
-내가 어렸을 때 <희색 목덜미>라는 만화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를 모두가 잘 알고 있어. 후에 소학반에서 공부할 때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의 내용을 주제로 상기 영화를 제작했었어. 그런데 다섯살에 영화를 보았을 때보다 그리 감동되지 않았단 말이야. <…쑥숲은 더욱 무성해지고 여우는 <희색 목덜미>새끼 오리에게 더욱 더 가깝게 기여들기 시작하였다…>영화를 보면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새끼오리가 불쌍해서 흐느껴 울었어, 마치도 여우가 사람에게 기여드는것처럼…
-저에게는 <푸른 강아지>가 그런 만화영화였습니다. 강아지가 너무너무 불쌍했거던요, 사람같이 말입니다. 주인공의 운명을 함께 체험하게 하는 그런 영화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동정심이 나타나고 어떻게 주인공을 도울수 있겠는가하는 생각도 나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영화가 끝날 무렵에)제작자가 낙천성을 주는 것이지요: <모든 일이 다 잘 될거야, 왜냐 하면 선이 꼭 악을 이기니까>.
-그런데 악이 없다면 선이 어떻게 나타날까?
-아주 흥미있는 생각입니다…나는 아니메 <작은 새들>에 모든 옛이야기들에서 이러저러한 형태로 나타나는 진리를 주장한 것입니다 – 꼭 다 잘 될거야, 지어 기적이 필요한다해도 다 잘 되리라!
-아냐, 넌 주제도 쓰고 짤막한 이야기도 쓴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누구에게 먼저 보여주지?
-인터넷에 올리고요 동시에 따냐 이모에게 보여줍니다. 이모는 작품에 결함이 있더라도 내가 낙심하지 않을 말을 해 줍니다.
-그러면 이모가 너를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이모의 비판이 별로 들어나지 않거던요. 따냐 이모는 아주 적극적인 생활입장을 취하는 분입니다. 이모는 모든 면에서 유행을 잘 알고 현대 예술의 흐름도 잘 판단합니다. 이모는 주로 나를 받들어 주고요 확신을 안겨줍니다. 또한 <아냐야, 언제 너의 새 창작품이 나오지?>라는 이모의 질문에 나는 고무감을 느낍니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진짜 언제 작품이 나오지?
-지금 그에 대해 생각지 않습니다, 하긴 단편 만화영화를 만들어 볼 계획은 있습니다. 코믹스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좋은 코믹스를 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작업에 몇 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한국에 가서 배우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지어 미국의 아니메도 신선한 아침의 나라에서 제작합니다. 때문에 세계의 아니메 중심지인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려고 합니다. 지금 나는 지식이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너는 오늘의 생활을 어떻게 평가하니? 어떻게 목적을 향해 나가야 하는지? 네게 근면성이 충분하다고 간주하니?
-언어도 배우고 테블릿에 그림도 많이 그립니다. 그러나 아주 부지런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나와 여동생은 부모들의 깊은 배려와 사랑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요, 때로는 부모들이 우리를 지나치게 귀여워 하는 것 같애요. 우리 할머니는 박식하고 지혜로운 분입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냐야, 나도 너처럼 확신성이 없고 당혹한 때도 있었어. 나는 너보다 더 어려웠었지, 혼자서 생활의 길을 닦아나가야 했으니 말이야…네게는 사랑해 주고 아껴 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니…> 보시다싶이 내겐 본받을 사람이 있습니다.우리의 담화가 끝날 무렵에 아냐가 말하는 것이였다: <나는 수줍어하고 확신성이 없기에 생활에서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좀 고쳐보려고 하는데 아직은 잘 되지 않는걸요>.
나는 아냐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우리 주위의 소녀들 중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아이들이 많을까? 아냐보다 나이가 이상이 되는 사람들 중에도 세상살이를 이렇게 분석하고 지금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자기가 구상해낸 주인공들 사이에서 사는 이 연약한 소녀-창작가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지나지 않으면 남 아냐의 인터뷰가 <고려일보>로만 제한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 신문을 걸쳐 <별이 아무리 밝게 비쳐도 정든 신문과 인터뷰를 할 것도 잊지 말라고 약속하고 싶었다. 아냐가 나의 말에 동의한 것 같다.
진 따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