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에 침켄트에서 고려인 문화중앙이 공화국에서 맨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중앙은 30년을 내려 오면서 자기의 주위에 동포들을 결속시켰고 평화, 통일, 합의를 선전하면서 민족문화, 전통, 풍습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나라에서 세번째로 가는 이 도시에서 주년일에 즈음한 기념행사가 있었다.
휴일 (토요일)에도 불구하고 심켄트시 카자흐스탄민족회 궁전 앞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흥성거렸다. 많은 손님들 중에는 백발의 악사깔들도 있었고 한국문화에 관심을 두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따라 천천히 입구로 향한다. 여기에서는 화려한 한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동양식으로 절을 하며 손님들을 친절히 맞이한다. 궁전의 앞 거리에는 한국상품 판매시장도 펼처졌다.
박 로사 윅또로브나 회장을 비롯한 남부카자흐스탄 고려인소수민족연합 회원들이 행사를 주최하는데 그들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최대한 주목을 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띠운다.
연합의 회원들은 한 팀이 되여 화목하게 사업한다. 열성자 각자, <일삼>실무클럽 회원들과 청년들이 손을 맞잡고 제각기 맡은 분야에서 모든 힘을 다 경주하여 일했기에 행사가 나무랄 데가 없이 진행되었다.
정각에 우아한 무용가들이 무대에 나타나 장고춤을 추었다. 다음 심켄트 연합 <모란봉>성악단이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노래를 불렀다.
모인 사람들은 남부카자흐스탄 고려인소수민족연합 박 로사 회장을 우렁찬 박수로 맞이했다. 회장은 발언을 축사부터 한 것이 아니라 지난 세기에 러시아 원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명성높은 리학순 어부에게 대한 설화시의 구절로 시작하였다.
-굶주림을 겪은 지방주민들이 고려인들과 빵과 거처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우리 동포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겠는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카자흐인들이 고려인들과 우정을 나눈 것입니다. 지방주민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 땅에서 남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끔 했습니다. 카자흐인민의 이 묵묵한 위훈을 그 어떤 표창으로도 응당히 재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많은 것이 이주민들 자체에게도 달렸었습니다. 우리는 리학순 어부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기본 유산 즉 근면성, 나라의 유익하고 존대받는 공민으로 되려는 갈망을 남겨둔데 대해 선조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로사 윅또로브나는 자기의 발언에서 남부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사회운동이 어떻게 조직되어 발전한데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 운동의 토대를 닦아놓은 원로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었다.
…80년대 말에 고려인연합에 대한 구상이 떠돌았다. 침켄트에서는 고려인공동체에서 존경을 받는 대표들로 그루빠가 형성되었다. 그들이 공화국에서 맨 먼저 민족문화 중앙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이 발기는 그당시 침켄트주 집행위원회 위원장이였던 에쓰.쩨레센꼬의 지지를 받았다. 정관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누구도 몰랐다. 때문에 이 일을 최 왈레리 예브세예위츠에게 맡겼다. 생산에서 일하는 그는 가장 복잡한 환경에서 항상 출로를 찾군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그가 출로를 찾아 내었다. 그는 직업동맹도 사회단체라고 옳게 생각하고 이 단체의 정관을 기본으로 삼았다. <희망의 집>이라는 명칭하에 단합된 큰 계획을 정관에 넣었다. 예를 들어 고려인들이 집합하여 살기 위한 주택을 건설할 땅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이 주택이 자립적 하부구조를 두어야 하였다: 유치원, 모국어로 가르치는 학교도 거기에 예정되어 있었다. 합작기업 설립과정에 고려인 전문가들을 이끌어 들여야 하였다. 고급 호텔과 민족요리 레스토랑, 문화 궁전과 예식장, 스포츠 시설과 기타 건물을 건설하기로 계획했었다.
그런데 우선 작은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고려중앙의 첫 신문 <노븨 뿌찌> (새로운 길)를 창간하고 TV방송에서 어린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칠 프로그램을 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때 경제위기가 판을 치기 시작하였다. 고려중앙을 돕던 많은 스폰서들은 그들 자체가 파산될 위험에 처하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에 관심을 두는 동포들은 고려인 사회단체를 계속 지지하였다.
이와 같이 어려운 조건에서 민족 문화 재생과 보존에 대해 말하기는 더욱 힘든 일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주민들을 받들기 위해 공연을 조직하기 시작했는데 그 공연에서 훌륭한 가수 김 옐레나, <모란봉>무용단 그리고 좀 지나서는 청년협주단 <청춘>이 자기의 기예를 시위하였다. 소인예술 단원들은 오늘도 자기의 창작으로 관람자들을 기쁘게 하며 기념 콘서트에서는 가장 우수한 종목을 보였다.
남부 카자흐스탄 고려인소수민족 문화중앙은 오늘 국가과업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지역의 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다. 중앙에서는 실무클럽 <일삼>, 청년운동이 활약하고 있다.
이날 연단에서는 사회운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모든 회장들의 이름이 울렸다 – 이는 첫 회장 박 윅또르 나우모위츠, 그에게서 계주봉을 넘겨받은 김 블라지미르 세르게예위츠 기리고 그 후에 회장직을 맡은 한 뾰뜨르 마까로위츠, 안 올레그 보리쏘위츠, 연 유리 블라지미로위츠, 김 빠웰 니꼴라예위츠, 유가이 유리 보리쏘위츠이다.
심켄트 시청, 시 카자흐스탄 민족회 대표들, 기타 소수민족연합회 회원들이 고려인연합회를 축하하기 위해 행사장에 왔다.
지역 소수민족연합에 속하는 막따아랄, 렌게르, 사이람 고려문화중앙 열성자들이 동료들을 축하하기 위해 행사에 왔다.
고려인소수민족연합 30주년과 관련하여 남부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을 축하하기 위해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오 세르게이 회장이 일부로 심켄트에 왔다. 오회장은 발언에서 소수민족연합의 정연한 사업에 대해, 모든 년령의 고려인 대표들이 사회사업에 열심히 참가하는데 대해 이야기 하였다. 이런 후계성이 오늘날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최근 년간에 지역의 사회단체들의 사업의 수준이 높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본 활동이 사람들, 구체적 과업해결에 목표를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라고 오 세르게이 회장이 강조하였다.
소수민족 연합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업하는 열성자들에게 성대한 분위기에서 메달, 감사장, 영예표창장이 수여되었다. 원로들에게는 폭신한 이불을 선사했다.
다양한 종목으로 된 재미있는 공연이 관람자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알마티, 타스켄트, 막따아랄 예술단 그리고 물론 심켄트 예술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자기의 재능을 시위했다.
손님들은 고려극장 성악단 <프레미움>의 종목마다를 우렁찬 박수로 맞이했다. 가수들이 카자흐 노래를 부르자 <브라워! 재창!>이란 소리가 들려왔다.
<남성>무용단도 대 환영을 받았다. 심켄트에서는 이 창작집단을 잘 알고 있었다. 심켄트에서 무용을 배우고 있는 무용가들에게 한해서는 <남성>무용단원들이 진짜 스타로 되여 있다. 공연을 앞두고 <남성>무용가들은 심켄트의 어린 무용가들과 만나 교제하고 경험도 나누었다.
<비단길>합창단은 심켄트에 자주 가는 손님들이다. 합창단원들은 심켄트에 공연만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고려인들과 합창단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우정의 관계가 맺어져 있다. <비단길>은 이번에도 심켄트인들이 즐기는 노래들을 불러 기쁨을 안겨주었다.
고려인 중앙이 조직하는 행사를 <모란봉>합창단의 공연이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관람자들은 풍부한 역사를 가진 이 합창단의 공연을 항상 반갑게 받아들인다.
<7개 대륙>무용단과 청년들의 무용그루빠의 화려한 종목은 모인 사람들의 열의를 북돋구어 주었다. 청년집단은 남부카자흐스탄
지역에서만 아니라 그 경외에서도 큰 인기가 있다.타스켄트에서 온 어린 무용가들의 공연이 관람자들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감동시켰다.
공연이 끝난후에 카자흐인들의 손님후대 전통에 따라 모두가 만찬연에 참가했다. 상다리가 불러질 정도로 음식이 차려진 상에 둘러앉은 행사참가자들은 남부카자흐스탄 고려인소수민족연합 30주년을 축하하여 건배하였고 행사의 주인 로사 윅또로브나를 비롯한 연합 열성자들은 손님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모든 힘을 경주하였다. 이 행사가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은 의심할바 없다.
김 콘스탄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