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학 박사, 알마티 한국교육원 한국어 교사 김 아나스타시야 세르게예브나는 이제는 학위를 가지고 있고 한국어 교사라는 높은 권위도 있다. 게다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는 한글을 가르치는 과정에 문자 그대로 아이들속에 뒤섞여 버린다. 아나스타시야는 대학생들보다 어린이들에게 한글을 배워주기를 더 좋아한다. 국제주의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민족성이 어머나와 같다는 것을 소녀 때부터 인식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고려인으로 간주한다.
-아나스타시야 세르게예브나, 그런데 당신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간주한다고 하지요?
-더군다나 우리 가정에서는 전통도 섞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형적인 소베트 가정이였지요. 요리는 주로 러시아 요리였어요.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가 즐기는 러시아요리를 장만하였기에 우리 식탁에 한국요리가 드물게 올랐어요. 카자흐스탄의 많은 고려인 가정과 마찬가지로 주로 러시아 말을 했고 러시아 학교를 다녔습니다.그런데 어릴적에 한국어를 소유할 가능성이 없었기에 나는 자라서 이 공백을 채우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 때는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무엇을 꿈꾸고 계속 그 생각을 할 때면 운명이 스스로 그 꿈이 실현되도록 이끕니다. 내가 중학을 필하던 해에 알마티 시청은 10명의 최우등생들에게 시내 대학에서 공부할 그란트를 내 주었습니다. 그 열명중에 저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용기화와 수학 (이 두 과목을 나는 좋아했고 올림피아드에서도 자주 우승 자리를 차지했다)중 하나를 고르는 동안 기술대학의 그란트가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대학이 남았던가요?> - 내가 질문했다. 오직 외국어 대학에만 그란트가 남았습니다. 이렇게 내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기본 과목으로 한국어를 택했습니다. 기억하는바에 의하면 그 어떤 과목에서 뒤떨어진 아이들을 항상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흥미있는 것은 내가 이 일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였지요, 좋은 사업을 해서 만족을 얻는것처럼 말입니다.
-소년시절에 <고려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런 의식은 언제 왔지요?
-잡혼의 가정에서는 결국은 이 문제가 꼭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일찍 관찰한바에 의해 15세 쯤에 내가 고려인이라는 결심이 굳어졌습니다. 하긴 저의 성격에 대해서는 <고려인이 아닌>점이 많다고들 합니다. 예를 들어 융통성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어오면서 한가지 사실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에 대해 나쁜 말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지어는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놀랄 필요가 있습니까, 아나스타시야는 고려인이란 말입니다 – 고려인들은 다 근면하거던요>. 혹은 <고려인들은 버리는 것이 없지요, 어떤 풀로나 맛있는 요리를 장만할줄 아니까요>. 물론 이런 말을 듣기가 좋았습니다. 운명의 시킴에 따라 37년도에 이 곳에 강제이주된 할머니,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의 첫 정착지인 우슈토베에서 태여난 어머니 그리고 기타 많은 고려인들과 함께 훌륭한 한민족에 소속된다는 것이 반갑습니다. 나에게는 자랑할만한 뿌리도 있고 과거도 있으며 동포들이 당당하게 살며 성실하게 일하는 현재도 있습니다. 나는 바로 이런 민족에 소속되고 싶었습니다…저의 어머니에 대해 말한다면 어머니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에 대해 이루어진 의견에 전적으로 부합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지어는 각종 야채, 과실나무, 풋나물이 자라는 작은 터밭을 얼마나 알뜰히 가꾸었던지 터밭이 <푸른 왕국>을 상기시켰습니다.
-아나스타시야 세르게예브나, 언어가 없이 문화에 접촉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문화를 깊이 알지 못하고는 그 나라의 언어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언어만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의 기본 문제입니다. 한민족의 문화가 얼마나 풍부하고 희귀하고 다른 문화와 비슷하지 않는지 때로는 그것을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것이고 한국어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태여나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지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언어와 그 언어로 말하는 민족의 문화를 함께 배워야 합니다.
-아나스타시야 선생은 한국어를 소유하는데서 일정한 과정을 경과했고 한국에서 살았으며 지어는 한국어를 가르치기까지 했는데요…힘들었던가요?
-나는 자신을 언어소유에서 큰 능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매우 힘들었지만 또 매우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운이 좋아서 유능한 교사들을 만났습니다. 한국에 대해 말한다면 편안한 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어를 알았기에 그럴수도 있었겠지요. 첫 달에는 듣기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말하는 것과 한국인과 직접 대화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임의의 언어를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은 언어의 장애물을 꼭 겪게 됩니다. 한국인들 사이에 있게 되면 그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긴 내가 지금 언어를 배우던 시기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능성이 커 졌지요. 스카이프도 있고 교제할 다른 원천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 오니 그들과 교제하면서 언어를 배울 조건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당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면이 있었던가요?
-우리에게는 문화가 하나이고 언어도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살며 자랐습니다. 우리는 한민족의 정신적 가치물, 과거와 역사를 소중히 여깁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가깝게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부닥치게 되는 문제가 없고 안전하고 무사한 한국에서 진심의 친선감이 때로는 없어서 냉대를 느끼게 됩니다. 내가 본바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모든 것을 다 재쳐놓고 동료를 도우려고 발벗고 나서는 현상이 드문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 돕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거던요. 한국에 가서 어느 기간 살게 될 고려인들에게 이에 대해 경고하는 페단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자기의 집에 초대하거나 와서 살아라고 하는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의를 표하여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단 초대를 했으면 꼭 기다리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저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만일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계속 초대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반갑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서로 알고 지내는 다른 친구가 즉시 전화를 걸어 나더러 <왜 그 집으로 가려고 하느냐?>고 나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예의를 지키노라고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하긴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회사의 사장 집에서 근 일주일을 머물은적도 있었습니다. 친척처럼 저를 받아들였습니다. 가족들도 다 소개해 주고요. 내가 떠나기직전에 한국에 남아서 일해라고 설득하였어요, 떠나가면 실수를 한다는 것이지요. 임의의 도움을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 남아서 근무하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가서 살며 일할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생활의 모든 단계에서 경쟁 문제는 한국인들 자체도 긴장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학교가 초급, 중급, 상급 학교로 나뉘우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집단을 바꾸게 됩니다. 대학에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각자가 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저의 자식들이 그런 환경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상상하니 두려웠습니다. 알마티가 저의 마음에 듭니다. 내가 12년동안 교육사업에 몸담고 있는데 강죄장으로도 일했습니다. 같이 일했던 집단의 동료들과 아직까지도 친근하게 지냅니다. 서로 도와주며 때로는 만나기도 합니다. 그중 많은 동료들은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받들어 준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관계를 보기 드뭅니다. 나는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 주위에 있는 것을 자산으로 여깁니다.
-아나스타시야 세르게예브나, 27세에 강좌장으로 되어 3년간 일한후에 자청하여 퇴직하고 새로운 계획과 꿈을 키운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를 하면서 도중에서 멈추지 않는데요…
-새로운 일이 실지에 있어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교사의 직업과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또 내가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데 지장이 됩니다. 보고서, 계획안 등 문서 작성이 시간을 많이 앗아가거던요…그런데 나는 대학생, 학생들을 가르치기를 좋아합니다. 때문에 내가 3년이 좀 남짓한 기간을 일한후에 강좌장의 자리를 내 놓고 교사로 일했습니다.
-대학생들도 버리고 나갔나요?
-그 때 저는 남편과 한국으로 갔습니다. 지금 한국어를 계속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직 학생들의 나이가 각이할 따름입니다.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개인수업을 치릅니다. 가장 어린 학생이 7세입니다. 그 애를 기르치기가 재미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그애가 방금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영어와 한국어를 배우거던요. 짧은 기간에 그 학생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대해 이미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배워주었습니다. 나는 한글을 가르치는 과정에 여러가지 방법논을 강구하게 되었습니다! 교육활동을 함으로서 나는 흥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교제하고 있습니다.
-꿈이 있나요?
-교사의 직업에 대한 소질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다른 분야에서도 일해 보고 싶습니다. 한글교육에 대해 말한다면 장래에 교육센터를 열어서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장래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쌓았으면 합니다. 그런 교육을 위해 나는 자신의 방법논을 강구하고 싶습니다. 이런 방법논은 학생마다가 후에 꼭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사의 직업과 인연이 없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해 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한국어 교사는 내가 전공한 직업이니 그 소질은 항상 내게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해 보고 싶은 것은 미용사-안마사, 사진사 그리고 빵을 굽는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이 직업이 다 저의 마음에 듭니다. 이것을 다 직업적 수준에서 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하여튼 두고 봅시다. 육체적 힘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니 제 손으로 직접 해 보면서 비결을 알게 되면 효과적으로 노동을 조직할 수 있고 사업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선택의 문제가 나설 수 있겠지요?
-기본 선택은 내가 이미 하였습니다 – 저는 교사입니다. 그런즉 교사는 다방면적으로 발전되어야 하고 새로운 것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겠지요, 나머지는 다 제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를 성과적으로 습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우선 동기가 필요하지요, 우리 사이에는 신동이 없거던요. 모두가 주로 중등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자신이 무엇에 정통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이용하여 마음에 드는 언어로 말하는 다른 민족의 문화와 접촉하면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저의 그루빠에 꼭 그것을
전하겠습니다.
진 따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