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좋고, 나와 가장 친근한 사람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사간을 보냈다. 같이 산책도 하고, 책도 보고, 축구까지 했다.
나에게 아버지는 없었다. 가끔 어머니는 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오래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나는 다가가서 안아 주고 우리는 같이 울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지…
나에겐 아버지가 없었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배려와 끝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나는 지금 35 살이다. 나에게는 아내와 자식 두 명이 있다. 나의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나에게 아주 진지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같이 차를 마셨다. 어머니는 내가 친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도 아기를 낳았지만 그 아기는 바로 죽었다. 10 일이 지난 후 어머니는 나를 데려오기로 했다. 어머니는 나를 친아들처럼 자기 모유를 먹여주면서 키웠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 없었다. 살 집이 있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다.
10 살 때 나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지 않고 호수에 수영하러 갔는데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어머니에게 그 것을 숨기려고 했지만 내가 호수 물을 많이 마셔서 몸 상태가 나빠졌고, 열이 나서 결국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나를 살펴보고 ‘너의 행동은 어리석었어, 네가 죽을 뻔했잖아’ 라고 말했다. 그 날 바로 어머니는 삼촌에게 전화해서 나에게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이 일은 내가 프로 수영 선수가 될 정도로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아주 즐겁게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19 살 때 나는 전국대회 우승자가 되었고, 23 살 때 유럽 수영대회에서 금 메달을 땄다. 이 모든 것은 다 어머니의 덕분이었다. 지금 나는 수영 강사로 젊은 프로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아이들이 항상 ‘우리 할머니가 최고’라고 했다. ‘당신 어머니에겐 뭔가 있어. 내가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떤 깨끗한 에너지를 발생해서 그런지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고, 따뜻함을 느끼게 돼’ 아내가 말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면 했는데,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따로 살아야 한다고 했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다녀오는 날은 너무 즐겁게 시간을 보내서 집에 돌아오기 싫어했기 때문에, 어머니 집에서 자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는 지혜로운 선생님처럼 ‘부모와 아이들이 같이 살아야 가족이 튼튼하다’고 가르치고 항상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물론 나의 인생에 만족했지만 항상 친어머니에 대해 궁금했다. 내가 아기였을 때 나를 버린 친어머니…
어머니가 나를 버린 나의 친어머니에 대해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의 친어머니는 낙태하려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꿔서 아이를 낳고 고아원에 보내기로 했다. 나와 친어머니의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친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나는 어머니를 만났고, 어머니야말로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친하고 가장 귀중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친어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친어머니의 행동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그 때 너무 어렸고 어떻게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변호하셨다. 그 뒤로 우리는 친어머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은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는 법이다. 어머니의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어머니는 자꾸 어지럽고 날마다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의사들이 병명을 알 수 없었고, 약도 효과가 없었다. 일주일 내에 어머니는 많이 야위었다. 우리는 검사를 받기 위해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병이 심해져서 어머니는 걸을 수도 없었다. 의사는 오랜 시간의 비행이 어머니의 상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말도 할 수 없게 되여서 조용히 나의 손을 잡고 있을 때 나는 어머니 눈에서 아픔을 읽고 어머니가 숨쉬기 어려워 하는 것을 보았다. 나의 눈물도 물론 도와줄 수 없었다.
치료해 주는 의사가 어떤 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그 약은 실험적이라서 사용하기 위해 허락서를 써야 했다.
그 약을 먹은지 12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이 것은 기적 같았다. 어머니는 숨도 편하게 쉬게 되었고, 건강해 보였다. 우리는 함께 병원 침대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씩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서 어머니는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어머니는 속히 병원에 와 달라고 해서 나는 가능한 빨리 뛰어갔다. 의사는 어머니가 약해졌다고 했고, 약은 더이상 작용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창문 옆에 앉아 있었는데 병이 심해지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안아 주었다. 어머니는 자기를 산에 있는 별장으로 데려 가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 곳에서 해돋이를 보고 싶어 했다. 의사는 몸 상태가 나빠질까봐 반대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침에 돌아오겠다고 의사를 설득했다.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우리는 온 가족이 별장으로 갔다. 놀랍게도 어머니의 몸 상태가 좋아졌다. 아내는 저녁을 만들고 우리는 다 같이 행복한 순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일찍 잤다. 나는 이상한 꿈을 꿨다. 늑대는 나를 잡으려고 쫓아왔고, 나는 뛰면서 멀리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렸다. 그리고 나는 눈을 뜨고 ‘아들아, 일어나라! 곧 해돋이잖아!’ 나를 깨우는 어머니를 보았다. 나는 어머니가 베란다에 있는 안락 의자에 앉는 것을 도와 주었다. 첫 햇빛이 하늘을 물들였을 때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보세요? 어머니!’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조용히 ‘보고 있어, 아들아. 보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그런데 어머니가 얼마나 인생을 좋아했는지 생각하면 나도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살기로 했다. 나의 마음에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나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과 나누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어머니도 꼭 기뻐하실 것이지…
박 마리나
마흐피로브 알리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