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때로는 거의 한 생을 살아 온 노인들 사이에서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지금과 같지 않았어…> -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혹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런 말에는 마치도 현대 젊은이들에 대한 비난이 담겨있는듯 하다. 그런데 역사를 본다면 젊은이들의 세대마다가 시대의 상황에 따라 자기의 흔적 (좋은 의미에서)을 남겨 놓았다. 예를 들어 바이깔-아무르 간선철도를 건설한 젊은이들, 처녀지를 개간한 젊은이들, 우주공간을 개척한 젊은이들이 다 영웅성과 헌신성으로 역사의 페이지에 기입되었다. 그러면 현대 청년들은? 다수가 마음에 드는 직업을 전공하여 일하고 있으며 또 최근 몇 년에 보건대 봉사단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나서고 있는가! 그리고 집없이 헤매는 개나 고양이들을 먹이고 간호하는 동정심 많은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니 젊은 세대마다가 좋은 사업에 자기의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찍고 또 찍는 한 청년에게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월로자는 중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영화촬영가가 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 몇몇이 알마티 공학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서류를 접수시키니 자기도 입학시도를 해 보았다. 그런데 입학시험에 합격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 한 야꼬브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일하던 고려극장에 음향기사로 취직하기로 하였다. 이 직업을 맡았던 직원이 기타수의 직업도 겸했으니 때로는 어려운 점이 있어 음향기사의 직책에 따로 직원을 받기로 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기에 고려극장 집단은 연해주와 사할린으로의 장기 출장을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얼마간 음향기사의 직업을 배워야 하였다. 그런데 예술적으로 소질이 있는 (아버지를 따라서 그런지) 월로자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 직업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전 음향기사와 함께 순회공연을 다니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항상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월로자는 운이 좋아서 보물의 섬이라는 사할린의 대 도시들을 다 돌아보았고 아름다운 경치에도 감탄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첫 순회공연은 월로자의 기억에 영원히 남았다…
때마침 이 시기에 한국에서 사물놀이 음악교사가 고려극장에 와서 사물놀이를 배워주기 시작했다. 월로자는 민족음악에 접촉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민족악기중 하나인 장고를 배우기 시작했다.그가 사물놀이 음악단에 소속되어 일할 때 하루는 그의 친구인 마가이 안드레이가 말했다:
-넌 대학졸업장을 받아 쥘 생각이 없냐? – 고 묻는 것이였다.
-졸업장이 왜 필요해, 나는 일생을 두고 장고만 두르릴거야…-월로자가 이렇게 농조로 대답했다.사실은 월로자 자신도 고등지식에 대해 항상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1997년에 주르게녜브명칭 음악아카데미 기록영화 연출과에 입학하여 4년동안 공부했다. 음악아케데미를 졸업한 그는 <갈라 TV>프로듀셔 센터로 초대되었다. 이 센터를 유명한 작가, 기자 엠.바르만꿀로부의 부인 이리나 바르만꿀로바가 지도했다.
-블라지미르, 졸업작품은 어떤 것이였나요?
-<즙과 돌>이라는 기록영화였습니다.
-영화의 명칭이 재미있는데요…월로자는 우리의 생각을 즉시 알아맞히고 이야기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때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 영화의 주제를 던져준다.
-몇 년전에 김장철인 가을에 내가 고려극장 배우들이 집합하여 사는 아파트로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훈배우 림 로사 블라지미로브나의 집에서 초절금한 배추위에 올려놓은 큰 돌을 봤습니다. 물론 잘 절여지라고 그랬겠지요.
-그 뿐만 아니다. 절인 배추에서 나오는 즙은 김치에 특별한 맛을 준다니까…로사 블라지미로브나가 말하는 것이였어요…한순간에 김치에 대한 기록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나왔어요…한 블라지미르는 고려극장에서 근무하면서 민족예술은 물론 고려인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알아보게 되었다. 한진, 양원식 그리고 젊은 작가들인 강 알렉산드르, 박 미하일, 시인 리 스타니슬라브 기타…그는 고려인 작가들의 작품을 더 가까이 알아볼수록 그들에 대한 긍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블라지미르는 그가 형성한 You Tub 체널 <고려인들의 섬>에 자기가 제작한 고려인들에 대한 기록영화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근 100편의 작품을 올렸다. 작가 강 알렉산드르에게 대한 기록영화가 <고려인들의 섬>에 오른 첫 창작품이였다.
블라지미르는 세운 목적을 향해 대담하게 나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영화를 촬영하기도 좋아한다. 그는 일본어를 꼭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혼자서 일본에 가서 일본어 강습을 필하고 돌아와서 건축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한 처녀애에 대한 기록영화를 제작했다. 이런 영화는 난관을 극복할 의지를 젊은이들에게 배양한다고 블라지미르가 간주한다. 고려인들의 여러가지 모습을 카메라에 많이 담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고 한다.그는 레포르타즈도 촬영했는데 그중에는 서울에서 있은 <아리랑>예술축제에 대한 레포르타즈도 있다.
-블라지미르, 물론 부모들이 모두가 자식들에게 좋은 품성을 배양하려고 노력하는데 그중에서도 어떤 품성에 대해 부모님들에게 가장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요?
-동정심, 선의, 근면성은 두말할 것 없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한 말씀입니다: <생활에서 꼭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순조롭게 되고 조화를 이루거던…>.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저를 고무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고려인들의 섬>체널을 보고 자기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고 제의하는 것입니다.블라지미르는 안해 나딸리야와 자식 둘을 두고 있다. 22세의 아들은 중국 낭킹대학 경제학과 4학년에서 공부하면서 중국어도 전공하고 있다. 딸애는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안해는 의학센터 미용술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블라지미르, 앞으로 실천할 프로젝트는?
-채 끝내지 못한 아니메 시나리오를 끝내려고 합니다. 한민족의독창성을 보여주는 사랑이야기이기에 시청자들의 마음에 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사업에서 성과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