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정중앙, 음력 5월 5일. 이 시기는 단순한 계절의 전환점이 아니다. 바로 단오, 조상들이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며 여름을 맞이하던 날이다. 무더운 여름의 문턱에서 액운을 물리치고 정을 나누며 즐거움을 찾았던 이 날은 지금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살아 숨 쉰다.
그렇다면 단오를 대표하는 물건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단오의 상징을 하나씩 따라가며 재미있는 비밀까지 들춰다보자.
창포와 쑥의 향기
단오 아침,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은 창포와 쑥이다. 창포는 그윽한 향과 약리적 효능으로 예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약초’로 여겨졌다. 조상들은 이날 창포를 우린 물에 머리를 감으며 액운을 씻어내고 여름철 건강을 기원했다. 특히 여성들은 머릿결이 윤기가 돌기를 바라며 창포물로 머리를 감았고, 어른들은 창포를 술에 담근 ‘창포주’를 나누며 장수와 건강을 빌었다.
함께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식물은 쑥이다. 단오에 집 대문에 쑥을 걸어두는 풍습은 오랜 액막이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강한 향과 살균 작용으로 악귀나 해충을 쫓는 쑥은, 여름의 시작을 안전하게 맞이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염원이 담긴 식물이었다. 이 날 캔 쑥은 가장 효능이 뛰어나다고 여겨져 찜질이나 탕약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약초는 단오의 정수를 담은 ‘향기로운 방패’이자 자연이 준 가장 순수한 의례의 도구였다.
부채 한 자락, 바람 속의 정
여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물건 하나를 꼽자면 단연 부채일 것이다. 단오 무렵의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도구를 넘어 정성과 예를 담은 선물이었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부채에 시를 적어 지인에게 선물했고, 단오가 되면 지체 높은 이들이 백성에게 부채를 나눠주는 풍슴도 있었다. 부채 하나에는 계절을 건네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오늘날에도 ‘단오 부채 만들기’ 체험이 이어지며, 이 오래된 선물 문화는 현대인의 감성과도 맞닿아 있다. 한지에 나만의 문양을 그리고 부채살을 엮어 완성한 부채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닌, 손으로 직접 전통을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전통의 맛, 강릉단오빵과 수리취떡
단오의 상징은 향기로운 약초나 시원한 부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먹는 전통', 단오의 맛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대표적인 음식은 강릉단오빵이다. 매년 강릉단오제에서 판매되는 이 빵은 겉보기엔 평범한 단팥빵 같지만 그 안에는 단오의 의미가 깊게 담겨 있다. 부드러운 빵 속에 가득 찬 팥 앙금은 단오의 정신을 한 입에 녹여낸다. 전통의 가치를 간직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이 빵은 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친근하게 만들어준다.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전통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전통의 맛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수리취떡이다. 수리취는 단오 무렵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들풀로, 그 향긋한 풍미와 쫀득한 식감 덕분에 오랫동안 단오 음식으로 사랑받아 왔다. 찹쌀 반죽에 수리취의 향을 더하고 고운 팥고물을 겉에 묻혀 입혀 완성된 수리취떡은 보기만 해도 푸근하고 정겹다.
조상들은 이 떡을 나누며 액운을 막고 건강을 기원했고, 지금도 많은 가정에서 단오 즈음 수리취떡을 만들어 먹으며 계절의 전환을 기념한다. 단오의 맛은 결국, 우리의 입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조용히 인사하는 순간이다.
단오의 상징물들은 오늘도 우리 곁에서 ‘살아 있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그 안에는 계절을 맞이하는 지혜,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그리고 전통을 이어가려는 따뜻한 손길이 담겨 있다.
올해 단오에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전통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 순간, 단오는 다시 살아 숨 쉬기 시작할 것이다.
최 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