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케이피즘은 말 그대로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2026년을 살아가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 현상에 기대는 이유는 현실이 아직 뚜렷한 방향이나 확실한 안정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 불안하다. 끊임없는 전쟁과 정치적 갈등은 우리가 직접 바꿀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 영향은 분명히 우리 삶에 닿는다. 이런 상황은 발밑의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감각을 만든다.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고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도 점점 희미해진다. 그런 순간에 에스케이피즘은 하나의 도피처가 된다.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도 한다. 반대로,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책은 통제가 전혀 필요 없는 세계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독자는 그 안에서 단순한 관찰자가 된다. 그래서 많은 젊은 사람들이 책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그곳은 더 흥미롭고, 더 화려하고, 무엇보다 안전하다. 책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 끝이 행복하든 슬프든 어쨌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일들이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에는 또 다른 형태의 도피로 ‘수도원 생활 체험’ 같은 선택을 하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료로 머물며, 정해진 일을 하고 주어진 방식대로 살아간다. 일종의 안정감과 보호받는 느낌을 얻는 것이다. 먹을 것과 잠자리,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 공간 속에서 잠시라도 불확실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점점 더 자주 언급될 정도로 눈에 띄는 흐름이 되었다.

이와 반대되는 형태의 에스케이피즘도 있다. 바로 완전한 통제를 손에 쥐는 방식이다. 비디오게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게임 속에서는 플레이어의 선택 하나하나가 이후의 전개를 바꾼다. 현실과 달리 실수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시간이 되돌려지지는 않지만, 게임 속에서는 언제든지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점이 묘한 안정감을 준다. 실수는 수정할 수 있고 결과는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감각이다. 어떤 게임에서는 아예 새로운 삶을 처음부터 설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심즈(Sims)는 삶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이다. 도시를 선택하고 집을 짓고 직업을 만들고, 원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는 수많은 제약이 그 안에서는 사라진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보면 서로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이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모두가 에스케이피즘의 한 형태이다. 한쪽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다른 한쪽은 반대로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두 욕구를 움직이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같다. 바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현실이다.
문제는 이 현상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보다 도피의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이런 도피에는 비용이 들기도 한다. 책을 사야 하고, 게임을 하려면 구독을 해야 하고, 여행을 가거나 다른 공간으로 떠나기 위해서도 자원이 필요하다. 때로는 이런 삶의 방식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흐름을 단번에 멈출 방법은 아직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현실보다 다른 세계에 더 오래 머물고 있다는 사실조차 크게 의식하지 못한다.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가에 따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감각도 달라진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단순한 바람 하나만 남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그리고 우리가 속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이고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란다.
서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