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азмер шрифта
Цвет фона и шрифта
Изображения
Озвучивание текста
Обычная версия сайта
Корё ильбо
Газета «Коре ильбо»
+7 (778) 160-13-34
+7 (778) 160-13-34
E-mail
gazeta.koreilbo@gmail.com
Адрес
050010, Казахстан, г. Алматы ул. Гоголя 2
Режим работы
Пн. – Пт.: с 9:00 до 18:00
Подать заявку
О Газете
  • О Газете
  • История
  • Партнеры
  • Подписка на газету
  • Архив газеты
  • Сотрудники
  • Актуально
О корейцах
  • О корейцах
  • Корейское общественное движение
  • Традиции и обычаи
  • Библиотека
Новости
뉴스
Библиотека
Kistory_mag
050010, Казахстан, г. Алматы ул. Гоголя 2
+7 (778) 160-13-34
+7 (778) 160-13-34
E-mail
gazeta.koreilbo@gmail.com
Адрес
050010, Казахстан, г. Алматы ул. Гоголя 2
Режим работы
Пн. – Пт.: с 9:00 до 18:00
Корё ильбо
Газета «Коре ильбо»
О Газете
  • О Газете
  • История
  • Партнеры
  • Подписка на газету
  • Архив газеты
  • Сотрудники
  • Актуально
О корейцах
  • О корейцах
  • Корейское общественное движение
  • Традиции и обычаи
  • Библиотека
Новости
뉴스
Библиотека
Kistory_mag
    "/>
    Корё ильбо
    О Газете
    • О Газете
    • История
    • Партнеры
    • Подписка на газету
    • Архив газеты
    • Сотрудники
    • Актуально
    О корейцах
    • О корейцах
    • Корейское общественное движение
    • Традиции и обычаи
    • Библиотека
    Новости
    뉴스
    Библиотека
    Kistory_mag
      "/>
      +7 (778) 160-13-34
      E-mail
      gazeta.koreilbo@gmail.com
      Адрес
      050010, Казахстан, г. Алматы ул. Гоголя 2
      Режим работы
      Пн. – Пт.: с 9:00 до 18:00
      Корё ильбо
      Телефоны
      +7 (778) 160-13-34
      Заказать звонок
      Корё ильбо
      • О Газете
        • О Газете
        • О Газете
        • История
        • Партнеры
        • Подписка на газету
        • Архив газеты
        • Сотрудники
        • Актуально
      • О корейцах
        • О корейцах
        • О корейцах
        • Корейское общественное движение
        • Традиции и обычаи
        • Библиотека
      • Новости
      • 뉴스
      • Библиотека
      • Kistory_mag
      • +7 (778) 160-13-34
        • Телефоны
        • +7 (778) 160-13-34
        • Заказать звонок
      • 050010, Казахстан, г. Алматы ул. Гоголя 2
      • gazeta.koreilbo@gmail.com
      • Пн. – Пт.: с 9:00 до 18:00

      고려인과 보따리 무역

      Главная
      —
      뉴스
      —고려인과 보따리 무역
      고려인과 보따리 무역
      25.02.2026
      '보따리상(첼노크, челнок)’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초기 상인들은 1980년대 말 소련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보따리 무역’은 모든 구소련 국가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소련 경제의 붕괴와 국가 부도 사태, 대규모 실업, 수개월씩 이어진 임금 체불, 그리고 거의 모든 상품의 부족과 품귀 현상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생계 대책 마련이라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았다. 이들은 기존의 직장을 대신할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했다.

      보따리 무역에 종사한 인구를 정확히 집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체계적이던 소련 통계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였기 때문에 관련 수치는 대략적인 추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직접 해외를 오가며 물건을 들여온 ‘보따리상’과 이들이 들여온 물건을 시장에서 위탁 판매하며 수수료를 받았던 ‘판매상’을 구분할 필요도 있다.

      시장 상인들은 보따리상으로부터 소량 도매로 물건을 구매한 뒤 이를 소매로 판매하며 마진을 붙였다. 보따리상의 규모 역시 계절, 국경 및 세관 통제 상황, 그리고 다양한 외부 요인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구소련 지역 고려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보따리 무역에 종사했는지를 정확히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어떠한 수치도 이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고등경제학교(ВШЭ-Высшая школа экономики)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1992~1993년, 단 2년 사이 '첼노크(보따리상)'의 수는 4 배로 증가했다. 대부분의 보따리상들은 정식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았으며, 국가에 납부한 세금은 상업 활동에 부과되는 의무 납부금인 '상업세(торговый сбор)' 정도에 그쳤다.

      무관세 반입 기준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일부는 아예 관광객 자격으로 출국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커다란 체크무늬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한눈에 ‘보따리상’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러시아 국가통계위원회 자료 기준으로 1995~1996년 당시 보따리상들이 해외에서 들여온 물품은 러시아 전체 수입의 1/3을 차지했다. 중국, 베트남, 폴란드,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 한국 등에서 의류와 신발, 전자제품과 장난감, 식료품, 건축 자재 등 다양한 상품이 유입되었다. 모스크바 한 도시에서만 200개가 넘는 시장과 장터가 운영되었으며, 시민 두명 중 한 명은 보따리상의 물건을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1998년 러시아의 국가부도 사태는 보따리상 활동을 사실상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는 국제 유가 급락과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가 겹치면서 발생한 경제 충격이었다. 1999년 초까지 불과 반 년 만에 루블화 환율이 달러 대비 3.5배나 급등(루블 가치 폭락)하면서, 모든 거래를 달러로 진행하던 보따리상들은 심각한 손실을 떠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따리상 활동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적응하며 형태를 바꾸었다. 일정한 일정에 맞춘 쇼핑 투어를 기획하고 비자 발급, 상품 구매, 화물 운송까지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여행사들이 등장하면서 운영 방식도 점차 전문화∙조직화되었다.

      1998년 위기는 개인 단위의 소규모 보따리상이 보다 체계적인 ‘보따리상 비즈니스’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수익성이 크게 낮아지자 일부 상인들은 활동을 접거나 대형 무역회사가 수입한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러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도 보따리상 활동은 점차 감소하는 흐름을 보였다.

      보따리상이라고 하면 흔히 여성들이 주로 종사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훨씬 복잡했다. 성별 구성은 활동 형태, 민족적 배경, 취급 상품의 종류 등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상품을 사들이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경우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나갔으며, 시장에서 판매를 맡은 쪽은 대체로 여성들이었고, 그중에는 고용된 판매원도 적지 않았다.

      고려인들 역시 다른 여러 민족 집단과 마찬가지로 보따리상 활동에 참여했다. 성별∙연령별∙직업적 구성 면에서 볼 때 고려인 보따리상은 전체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보따리상 활동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상품을 구매하는 국가와 관련된 특징이다. 고려인 보따리상들도 튀르키예, 인도, 중국, 이탈리아 등지로 다른 상인들과 함께 이동했지만 특히 한국을 방문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둘째, 타슈켄트, 알마티, 모스크바, 하바롭스크 등 대도시 출신의 고려인, 특히 여성 상인들은 주로 품질이 우수하고 디자인이 세련된 고가 의류를 들여왔다.

      셋째, 이러한 고급 의류는 전통 시장이 아니라 가게를 통해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들이 저렴하고 회전율이 높은 상품을 수입∙판매하기도 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모스크바의 체르키조포스키(Черкизовский) 시장이나 루즈니키(Лужники) 시장에서는 고려인 보따리상들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타슈켄트 쿠일류크(Куйлюк) 시장에서는 이미 소련 시기부터 고려인들이 두드러진 민족이었다. 당시 이 지역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일종의 민족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다. 1만 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거주했으며, 인근의 고려인 집단농장들과 인접해 있어 자연스럽게 '카레이스키 바자르(고려인 시장)'로 불리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품 종류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고려인들이 직접 만들던 전통 놀이용 카드 '화투', 밀짚모자, 채칼 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청바지, 선글라스, 야구모자 등 새로운 상품들이 대신하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보따리상 비즈니스' 현상은 비교적 활발히 연구되었고, 언론과 인터넷에서도 그들의 고된 삶이 자주 조명되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보따리상에 관한 의미 있는 연구나 출판물은 찾기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가장 정보가 풍부한 자료는 독일 빌레펠트대학교(Bielefeld University) 발전사회학연구센터 소속 연구원 마르쿠스 카이저(Markus Kaiser)의 논문이었다. 그는 소련 시기의 '제2경제(second economy)'로서의 상업 활동이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비공식 경제 형태의 상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학문적으로 분석했다. 해당 연구는 386 건의 심층 인터뷰와 300 건의 표준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상당히 탄탄한 자료 기반을 갖추고 있다.

      1991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극심한 소비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상업에 대한 면허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우즈베키스탄의 보따리상들은 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상품을 합법적으로 수입한 뒤, 이를 카자흐스탄으로 밀반출하여 카자흐스탄 통화로 더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 이후 텡게는 자유롭게 달러로 환전하고 그 달러로 우즈베키스탄의 암시장 환율을 통해 숨(So'm-우제베크 화폐)을 받았다. 다시 이 숨을 국립은행의 공식 환율에 따라 달러로 환전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다단계 환전 방식은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타슈켄트 '호르수(Хорсу)' 시장은 중앙아시아의 주요 무역 허브로 성장했다. 그러나 시장 내 거래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자 시 당국은 수도 외곽에 ‘이포드롬(Ипподром)’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도소매가 함께 이루어지는 이포드롬 시장에서는 마르쿠스 키아저의 연구에 따르면 한 건의 거래 규모가 최대 10만 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이 시장은 이른바 ‘고려인 구역’과 ‘중국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려인 구역’에서는 판매자의 약 ¼이 고려인이었으며, 유럽∙한국∙일본에서 들여온 고급 상품이 판매되었다. 반면 ‘중국 구역’에서는 중국∙이란∙터키산 생활 잡화가 주로 판매되었고 상인들은 주로 우즈벡인이나 위구르인이었다. 시장 명칭은 인근에 위치한 승마 경기장, 즉 히포드롬(경마장)에서 유래했다.

      타슈켄트의 남서부에 위치한 ‘소츠고로드(Соцгород)’ 시장은 간이매점이나 좌판을 갖춘 상설 상인 구역과 밧줄을 매달거나 바닥에 물건을 펼쳐 놓고 판매하는 잡화 상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1994년에 조성된 이 시장은 처음에는 약 100여 명의 상인이 활동했으나 5년 만에 그 수가 2천 명으로 급증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보따리상 현상이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이들의 상업 활동과 마주했다. 실제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카라간다주 ‘누르오탄’당 지부 부의장이었던 예셋 예센가라예프(Есет Есенгараев)는 아스타나, 알마티, 카라간다에 보따리상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또한 유라시아 기업인협회 회장 조마르트 알단가로프(Жомарт Алдангаров)는 국가 원수에게 보낸 서한에서 “보따리상들이 국가를 전면적인 물자 부족 사태로부터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이들이 국가 발전에 크고도, 어쩌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다. 결국 기념비는 세워지지 않았지만 보따리상이 수백만 국민과 국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예센가라아예프와 알단가로프의 견해에는 많은 시민들이 공감했다.

      타슈켄트나 알마티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시장 상인으로 활동한 고려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설문조사나 인터뷰, 학술 보고서나 논문 형태의 연구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시장 상업에 종사했던 고려인들에 대한 소문과 구전만이 적지 않게 전해진다. 예를 들어, 가수 아니타 초이(Анита Цой)가 젊은 시절 보따리상을 하며 모스크바 루즈니키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는 이야기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이름을 알린 다른 고려인들 역시 한때 잡화가 가득 든 짐보따리를 옮기며 생계를 이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은 대체로 그 시절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그 결과 고려인들의 보따리상 활동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해답보다 여전히 더 많은 질문이 남아 있다.

      김 게르만, 역사학 박사 ∙ 교수
      Назад к списку

      Подписывайтесь
      на новости
      О газете
      О Газете
      История
      Партнеры
      Подписка на газету
      Архив газеты
      Сотрудники
      Актуально
      О корейцах
      О корейцах
      Корейское общественное движение
      Традиции и обычаи
      Библиотека
      Новости
      Статьи в газете
      Welcome to Korea
      Гранты и стипендии
      뉴스
      +7 (778) 160-13-34
      +7 (778) 160-13-34
      Заказать звонок
      E-mail
      gazeta.koreilbo@gmail.com
      Адрес
      050010, Казахстан, г. Алматы ул. Гоголя 2
      Режим работы
      Пн. – Пт.: с 9:00 до 18:00
      gazeta.koreilbo@gmail.com
      050010, Казахстан, г. Алматы ул. Гоголя 2
      © 2026 Газета «Коре ильбо»
      Карта сайта
      Разработка сайта SITER.K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