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김병학 시인이 알마티에 왔었다. 문학계는 물론 알마티에는 김병학을 모르는 고려인이 거의 없다. 그가 몇년전에 귀국하였지만 김병학 선생이 고려인들과 맺은 인연은 더욱 깊어가기만 한다.
김병학은 한국 전남 신안에서 태여나 전남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왔다. 그는 우슈토베 광주한글 학교에서 5년간 한글을 배워주었다. 다음 <고려일보>신문사에서 기자활동을 하였고 카자흐스탄의 문학과 고려인들의 문화예술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사업을 하였으며 고려인 원로들과의 만남을 통해 고려인 이주사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김병학은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문화예술계에 깊은 자취를 남겨 놓았다. 그가 발행한 첫 시집 <천산에 올라>는 카자흐스탄을 노래하는 것이였다. 다음 고려인 시인 리 스따니슬라브의 시집 <모쁘르에 대한 추억>을 번역했고 카자흐 국민시인, 계몽가 아바이의 시가를 번역한 <황금천막에서 부르는 노래>는 문학평론가들의 높은 호평을 받았다. 또 한진작품들을 모아 <한진전집고려인을 둘러 싼 아름답고도웅장한 세계, >을 편찬했고 항일운동가 김경천 장군의 일기를 정리하여 < 경천아일록>을 펴냈다. 러시아에의 한인이주 150주년에 즈음하여 편찬한 <황무지에서 지켜낸 민족 혼>에는 김병학 선생의 막대한 노력이 깃들어 있다.
고려인 문학계의 거목 정상진 선생은 <김병학은 고려인들 속에서 고려인의 세계, 고려인들의 모질고도 너무나 피곤했던 운명, 고려인들의 빛과 향기를 정답게 노래하고 있다>고 썼다.
우리는 이렇게 귀중하신 분을 신문사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김병학 선생이 귀국한후 하신 중요한 사업도 있고 해서 시간이 제한되여 있지만 잠간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그가 귀국해서 광주 광역시 월곡동에 고려인 박물관을 개막한 것은 고려인들만을 위한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김병학 선생님, 몇년만에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려인 박물관을 열려는 구상이 어떻게 생겼나요?
-그것이 나의 오래전의 소원이고요 내가 유물들도 가능한대로 수집해 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광산구에 가 보니 나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둘이 있더라구요, 즉 이천영 선생과 사단법인 고려인 마을 센터장 신 조야였습니다. 고려인 마을에는 고려인들이 집합하여 살고 있습니다. 20여년전에 한국에 온 신조야는 고려인들을 위한 사업이라면 시간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고려인 마을에는 아동, 청소년 기타 연령에 따라 아동센터, 교육기관들의 사업이 잘 조직되어 있습니다. 내가 고려인 마을 행사에서 이상의 두 분을 처음 만나서 유물을 가지고 왔다는 소식을 전하자 임의의 방도로 고려인 박물관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박물관을 열려면 구청과도 합의를 봐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이지요, 광산구청은 이 구상을 받들었고 건물까지 구매하여 우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면으로 박물관 사업을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행사는 언제나 구청의 직접적 참가하에 진행됩니다. 고려인 마을에서 2017년 9월에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에 즈음한 큰 행사가 아시아 문화전당에서 처음 진행되었습니다. 그 행사과정에도 고려인 유물전시회가 있었습니다. 2019년 3월 1일에 3.1절 100주년에 광주 시청에서 두번째로 고려인 유물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김관장님, 박물관의 구조에 대해 좀 이야기해 주십시오…
-우리 박물관이 2021년 5월 20일에 개관되었는데 박물관의 1층은 고려인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장이 있는데 1864년 – 한인이주, 1905년 – 국내전쟁에 고려인 참가, 1937년 – 고려인 강제이주 등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싶이 최 아리따 여사가 유물수집에 많은 수고를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층에 최 아리따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의 공로를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그러니 1층은 상설전시장으로 되여 있는 것이지요.
원래 고려인들의 역사를 한국에 될 수 있는대로 널리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 박물관을 개막한 후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반응을 보니 학자들을 내 놓고는 고려인들의 역사를 아는 한인들이 소수입니다. 지난해 8월 15일에 있은 홍범도에 대한 특별전시가 방문객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박물관의 2층에는 특별전시를 하려고 합니다. 공로가 있는 인물들의 전시말입니다. 지난 4월에 한 야꼬브 작곡가 (사망 이후)에 대한 특별전시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전 <레닌기치> 신문사 사원들인 주동일과 리상희 부부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특별전시를 계획하고 있고요 그에 뒤이어 고려극장 원로배우들 김진과 최봉도, 유명한 벼재배업자 김만삼의 특별전시도 있을 것입니다.
한가지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한진의 희곡원고 9권 (<이붓 어머니>, <어머니의 머리는 왜 세였나?>, <산부처>, <토끼전> 및 기타 )과 김해주의 희곡원고 8권 등 총23권의 고려인 모국어 문화예술 기록물이 국가지정 기록물 제 13호로 등재되었습니다.
-김관장님, 앞으로 고려인 박물관의 사업을 계속 확대해 나갈것이지요?
-하여튼 운명은 피할 수 없는가봐요…귀국할 때는 다른 사업을 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박물관 사업에 몸담고 고려인들과 인연을 더 깊이 맺어나가는 것이지요. 박물관 면적이 좀 작은데 구청에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7월에 한-카 수교 30주년에 즈음하여 주한국 카자흐스탄대사관이 주최하는 전시회가 있습니다. 문 윅또르 화가의 그림을 비롯하여 거기에 우리 유물도 전시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을에 고려극장 창립 90주년, 내년에 <고려일보> 100주년과 연관된 전시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김관장님, 우리 민족에 아주 필요한 사업을 하시고 계시는데 큰 성과를 바랍니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