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극장에서 공연을 구경할 때면 모든 종목이 나루랄데가 없어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데 관람자들이 만족을 얻을 정도까지의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가를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무용에 대해 말한다면 무용단 단장은 무용수들의 동작마다가 <광택이 날 정도로 연마>하기 위해 모든 심혈을 다 기울인다. 공화국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에도 그런 무용교사가 있다. 나는 발레 연출가 최 아나스타시야를 념두에 두는 것이다.
나스쨔는 두 할머니 ( 박 소피야 센추노브나와 박 마이야 센추노브나) 그리고 그들의 남편들이 다 연극 배우들이여서 극장의 분위기에 항상 휩싸여 있기는 했지만 자기의 운명을 극장과 연결하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물론 화려한 무대장치 ,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자신이 무대우에서 일생을 보내려고는 생각지 않았다. 나스쨔는 장래 법대에 입학하여 그 당시에 이미 인기가 커가는 변호사나 법률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그 때 극장에 한국춤 스튜디오가 열렸다. 그래서 주위 친척들의 충고에 못 이겨 그 스튜디오에 다니기 시작했다. 거의 반년동안 김 라리사 와실리예브나 무용교사의 지도하에 무용을 배웠다. 이 기간이면 무용가에게 장래가 있는가를 확정할 수 있었다.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스쨔의 나이가 15세였다. 나스쨔의 무용소질을 본 라리사 와실리예브나는 극장에서 일하라는 충고를 주었다. 그래서 그가 성년이 되던 해에 아나스타시야가 고려극장의 정 직원으로 되었다.
아나스타시야는 큰 정을 담아 알랴 까르가바예바 선배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가 그후 직업적 무용가로 자라난 것은 선배의 공로라고 말한다.
최 아나스타시야는 한국무용축제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일을 회상하면서 아직도 흥분을 가시지 못한다:
-그 화려안 무용을 보면서 입이 저절로 쩍 벌려지더라구요…그 때 저에게는 직업적 무용가가 되려는 결심이 더 굳어졌습니다.
-아나스타시야, 일본의 유명한 무용가 후지마 히로키우는 <춤이란 마음의 세계를 몸으로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물론이지요, 춤이란 단순한 몸집이 아니지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니까요…처음 보는 춤을 감상하더라도 그 춤을 통해서 전달되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춤도 언어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나스타시야는고려극장에서 30여년을 전문적 무용가 ( 최근 몇년간은 첨부적 수업무용교사로)로 근무하는 기간에 여러가지 춤을 추었지만 민족전통 무용에 가장 마음이 쏠린다고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전통무용은 <살풀이>이다.
아나스타시야의 남편 채 유리도 창작인이다. 시민들은 고려인들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소개자로활동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유리의 기본 직업은 영화제작이다. 그는 비데오 필림, 단편영화와 예술영화를 제작한다. 그가 제작한 영화 <붉은 돛> - 새로운 사연>에는 이름있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배우들도 참가하고 있다. 그는 지금 새 단막영화 <선행>을 제작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사연이 담길 것이다.
-아나스타시야,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면서 되돌아오고 싶은 가장 행복했던 시각이 있나요?
-우리 집안은 아주 화목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형제들이 큰 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그립습니다…
아나스타시야와 로만은 예술에 몸담고 자식 둘을 자래우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 아나스타시야는 공화국 공훈예술활동가의 칭호를 지니고 있으며 카자흐스탄독립 25주년, 30주년 기념메달, 영예표창장도 여러번 수여받았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