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의 직업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특히 깊은 존경심을 담아 대한다. 그들이 때로는 사람의 생명을 손에 쥐고 있다. 의사를 일생의 직업으로 택한 사실 자체가 그의 대담성, 동정심, 인간애, 인내성, 지식욕에 대해 말해 준다. 의사라면 이 모든 품성을 꼭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근 반 세기를 기자생활을 하는 필자에게 있어서 의사와 참전로병이 가장 마음이 끌리는 주인공들이다. 직업적 명절인 의료일군절을 며칠 앞둔 오늘도 의사를 찾아 알마티 시 사말 미구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박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는 사말 미구역에서만 아니라 전 남부수도에서 널리 알려진 유능한 의사이다. 그가 태여난 곳은
딸듸꾸르간 주의 립싀 부락이다.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는 미소를 지으며 그가 립싀 부락에서 태여난 사연을 이야기 한다.
-저의 부모들은 이미 알아아타에서 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고집해서 며누리가 꼭 외가에 와서 아기를 낳도록 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낳으려고 일부러 립싀에 갔습니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말이 났으니 말인데 원래 니 안드레이 스쩨빠노비치는 립싀에서 유명한 분이였다. 립싀에는 전국적 의의가 있는 못 공장이 있었다. 니 안드레이 스쩨빠노비치가 수십년을 이 공장 지배인으로 일했다.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밤낮을 헤아리지 않는 그는 위대한 조국전쟁 시기에도 공장에서 몇 교대로 작업을 조직하여 작은 물건이나마 여러 분야에 극히 필요한 못 제작계획을 항상 초과수행하였다.
-립싀 부락의 한 거리가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자랑스럽습니다. 저의 이름도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라서 안드레이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가 이야기한다.
박 안드레이는 알마아타에서 중학을 필하고 알마아타국립의대 소아과에 입학했다. 의학대학에서 공부하는 중에 군대복무도 다녀왔다. 방공부대에서 복무하여 공군 지상군의 업무를 다 파악하였다. 안드레이는 의대를 필한 후에 제 1호 알마아타 아동병원에 취직했다.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 아동병원에서 자립적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누가 선배의 역할을 놀았나요?
-예, 나딸리야 마고메도브나 까라께또바 과장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성격이 엄숙하기는 했지만 젊은 의사들에게 유익한 충고와 경험을 많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 그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술도 하고 상담도 했는데 혹시 기억에서 스쳐버릴 수 없는 일이 있었다면?
-예, 30년전에 있은 일인데요…하루는 5세되는 여아이를 구급차가 싣고 왔어요. 그 애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중 불량배들이 일부러 길에 철사를 늘여놓은 것을 보지 못하고 목이 철사에 걸려서 상처를 입었어요. 여자아이구 해서 외부에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고 수술칼을 대지 않고 레이저로 수술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그것이 성대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그래서 또 수술을 받았답니다. 결과는 다 무사하지만 <내가 그 때 외부수술을 했었을걸…>하는 후회감도 좀 후에 들었습니다. 글쎄, 나는 더 잘하노라고 했는데요…하여튼 결국은 다 잘 되여서 다행입니다… -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가 이야기를 끝낸다.
박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는 최고급 의사의 증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수준을 계속 높이기 위해 여러 나라를 다닌다. 지금 한국의료관광이 유행인데 우리 나라보다 얼마나 앞섰는가 궁금해서 한국에 가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 보니 어떻던가요?
-서울, 부산에 가 보았는데 별로 앞섰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러시아는 물론 독일, 미국,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압스트리야, 아랍에미레트에 다녀왔는데 우리 카자흐스탄의 의학이 얼굴을 붉힐 근거가 없습니다…
얼마전에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에게서 치료를 받은 남 이르마 여성에게 박 의사에게 대한 질문을 한다.
-우선 아주 친절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의사의 말만 들어도 병이 낫는것 같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실지에 있어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의 찬찬한 목소리로 환자가 걸린 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필요한 충고도 주었습니다. 의사의 말을 들으니 아픔도 가셔지는것 같았어요. 결국은 박 의사님의 덕분에 완쾌되었지요. 의사선생님, 감사합니다!
박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는 안해 이리나와 딸 둘을 길렀는데 아버지의 직업을 따르지 않은 것을 섭섭해 한다. 그러나 딸애들은 현시 적절한 직업을 전공하였다. 맏딸 율랴는 재정분야를 전공했고 둘째딸 윅또리야는 마케팅을 전공했다. 안해 역시 재정일군이다.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 모국어에 관심이 있나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의 뿌리에 대한 생각이 자주 납니다. 지금 딸애가 한글을 배우고 있고요 나는 그 애에게서 배우는 중입니다.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냅니까?
-독서에 열중합니다, 우리 집에 책이 많거던요…
-그러면 부인은 그 시간에 무얼 하나요, 남편이 없이?
-자연히 역시 책을 읽게 되지요… –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빈후에 문제가 있어 알마티 시 <카루도>의료센터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이비인후과 의사 박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를 잘 알고 있다. 박 의사의 친절한 접대와 배려에 대한 환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다. 안드레이 아나똘리예비치는 완쾌한 환자의 모습을 볼 때 택한 직업에 대한 긍지감을 항상 느낀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