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쉬토베 역사탐방으로 시작된 계묘년 새해
2023년 계묘년의 카자흐스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매서운 추위와 많은 눈으로 시작되었다. 마치 하늘의 눈창고가 터진 듯 연일 쉴새없이 내린 눈으로 도시도,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스텝 초원도 눈에 묻혀버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한국에서 온 ‘특별한 손님들’과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한국학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특별한 우쉬토베 역사탐방이 새해 계묘년 벽두에 수행되었다. 얼마 전 인문콘텐츠학회 신임 회장을 맡은 김상헌 교수(상명대)와 학회임원들(서경대 방미영 교수, 글로벌사이버대 이건웅 교수, 학회 사무국장 안우리)이 바로 그 ‘특별한 손님들’이다. 눈덮힌 광활한 스텝 초원지대를 서 너 시간 달린 끝에 마침내 버스가 도착한 곳은 예스켈드 마을이다. 예스켈드 마을은 소련 시기에는 ‘극동콜호즈’로 명성을 날렸던 곳으로, 마을 입구에는 웅장한 모습의 마을 이정표가 과거의 영광을 말해주듯 웅장하게 솟아있다. 과거 강제이주 당시에 이 지역으로 ‘극동’, ‘모프르’, ‘달성’ 등 서너 개의 고려인 콜호즈들이 이주 정착을 했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예스켈드 마을은 우쉬토베 탐방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필자가 학생들과 함께 했던 우쉬토베 지역의 마지막 역사탐방은 2018년 가을에 있었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펜데믹 이후 다시 학생들과 답사를 재개하게 되었으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한국에서 온 ‘특별한 손님들’과 함께 하게 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이번 우쉬토베 탐방은 의미가 남다른 시간이었다.
탐방팀의 발 길이 머문 첫 번째 탐방지는 예스켈드 마을에 있는 ‘줴르쥔스키 고려인 학교’였다. 1938년 건립된 이 학교(1969년 재건축)는 현재 2차대전의 영웅 코쉬카르바예프의 이름을 기려 개명되어 불리고 있다. 학교는 우쉬토베가 속해있는 카라탈 지구(군) 예스켈드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데, 한때는 고려인의 비율(학생 및 교사)이 70% 정도까지 높았으나 현재는 20여 % 정도 밖에 안된다. 현재 250여명의 재학생 중 약 40-50명 정도만이 고려인이고, 2010년까지 정규과목이었던 한국어 수업은 이후 카자흐스탄 교육부의 교과목 프로그램 변경 지침으로 방과 후 수업형태로 전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이 또한 현지 사정으로 한국어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비록 순수한 고려인 학교로서의 위상은 변했으나 그 자체만으로도 과거 우쉬토베 고려인 교육기관의 상징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두 번째 탐방은 강제이주의 아픔과 애환이 담겨있는 기차역에서 진행되었다. 1932년에 기차역이 들어섰는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쉬토베역은 고려인 강제이주민들을 받아들이면서 고려인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기차 선로에서는 촬영이 제한되어 사진으로 충분히 담지는 못했지만 과거 고려인들이 실려왔었을 듯한 화물객차와 철로는 그대의 아픔을 기억하듯 낯선 이방인들을 침묵으로 맞이해 주었다. 다음으로 탐방팀이 찾은 곳은 중앙공원에 위치한 ‘정치탄압희생자위령비’이다. 1999년 한국정부의 지원으로 건립된 삼각형 모양의 위령비는 가운데 빈 공간을 두고 서로 분리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분단된 한반도와 역사적 모국과는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어진 탐방지는 ‘옛 고려극장 건물’이다. 이 건물은 크즐오르다에 있던 고려극장이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이전해 왔다가 1959년까지 자리했던 곳이다. 고려극장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당시 고려극장 배우단이 묵었던 숙소 건물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탐방팀이 방문한 날에 우쉬토베의 찬 기운은 유난히 더 매서웠다. 꽁꽁 언 몸을 잠시나마 따뜻한 국물이 곁들여진 점심을 먹으며 녹였다. 아침을 먹지 않고 참가했던 학생들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배를 채웠고, 예상치 못한 카자흐스탄의 매서운 겨울에 흠짓 놀란 한국에서 온 손님들 또한 한 조각의 빵과 국물에 움츠렸던 몸을 녹이며 창밖 너머 우쉬토베의 겨울을 음미했다.
잠깐의 점심 시간을 만끽하고 계속된 탐방의 하일라이트 바스토베 언덕 밑에 있는 강제이주기념비들과 항일애국지사추모비가 있는 ‘한-카우호공원’에서 펼쳐졌다. 본래 해당 장소는 1999년과 2002년에 각각 한국정부와 한카친선협회에 의해 세워진 타원형의 옥석과 흰대리석 기념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이 비석들 중앙에 카자흐인에 대한 백석감사기념비(게르형상조형물 포함)가 한국정부와 고려인협회의 지원으로 조성되었다. 이후 2019년 상반기부터 ‘한-카우호공원’은 더 새롭게 단장이 되었다. 공원 우측에는 ‘한-카우호기념비’와 ‘항일애국지사추모비’가 세워졌고, 공원 입구에는 4개의 기둥으로 된 아크 조형물과 4개 언어(한국어, 카자흐어, 러시아어, 영어)로 된 안내문이 세워졌으며, 공원 바닥과 울타리가 단장되고 가장자리에는 식수가 되었다. 바스토베 언덕 밑에 있는 ‘한-카우호공원’을 뒤로 하고 탐방팀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한국인 목회자가 사명감을 갖고 사유지에 조성한 강제이주 초기 고려인들의 거주지와 생활모습이 재현되어 있는 박물관이었다. 방문팀의 눈길을 가장 크게 끈 것은 적당한 깊이의 땅을 파고 만든 토굴이었다. 토굴은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되던 첫 해에 주택이나 식량, 의약품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임시 거처이다. 본래 소련 중앙정부의 문서상으로는 강제이주민들에게 재산상의 손실에 따른 보전을 해 주는 것에 대한 약속이 있었지만 현실은 아무 것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토굴 옆에서 갈대를 이용해 만든 땅집도 있었다. 땅집은 토굴에서 나온 고려인들이 보다 나은 형태로 지은 주택인데, 허름한 집이지만 한민족 특유의 온돌이 갖추어져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새해 초부터 카자흐스탄 땅을 방문한 김상헌 교수가 이끄는 인문콘텐츠학회 방문단과 카자흐국립대 한국학과 학생들이 함께했던 우쉬토베 탐방은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중단되어 왔던 학생들과 함께하는 답사 프로그램이 다시 재개되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또한 한국에서 온 방문단에게는 카자흐스탄 지역에 남아있는 항일애국지사 및 고려인 주요 사적지들을 직접 돌아봄으로써 해당 지역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인문콘텐츠학회의 학술사업 아이템 중의 하나로도 구상해 볼 수 있는 여지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카자흐스탄 내에 문화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문화콘텐츠를 통한 한국학의 발전과 확산 등에도 기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으면서도 고려인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가 적었던 학생들에게(참가자 모두 카자흐 민족)는 현장 탐방이 고려인의 존재와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사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카자흐인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고려인의 존재는 그다지 주목 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고려인에 대해 굳이 알아야 될 필요성도 동기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2023년 계묘년 벽두에 한국에서 온 특별한 손님들과 한국학과 학생들이 함께 한 우쉬토베 현장 탐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병조(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