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탄할만한 이 여아와의 만남은 장애인에 대한 습관된 상상을 뒤바꾸어 놓았다. 한 왈레리야는 곧 즉 2월 24일이면 16세가 된다. 뇌성마비병으로 앓는 왈레리야는 놀랄 정도로 강한 의지, 낙천성과 목적지향성, 근면성 그리고 물론 부모와 친척들의 지지에 의해 유명한 가수가 되려는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확신있게 앞으로 나가고 있다. 그 애는 7세부터 노래를 부르는데 이 기간에 큰 성과를 달성하였다. 각이한 공화국 및 국제 콩쿨과 축제 수상자로 되었고 2019년에는 첫 독창 공연도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특별한 여아 레라는 우연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어머니와 여행을 많이 했는데 한번은 여행중에 어머니가 핸드폰에 있는 노래카세타를 틀었다. 그런데 딸애가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가사도 속히 외웠다. 그 때 딸애의 재능을 키워 주려는 생각이 왔다. <아싀크 엘렘> 시콩쿨에 참가하여 처음 무대에 올랐다. 어린 가수가 그 콩쿨에서 첫 자리를 차지했다.
-노래를 잘 불렀다기보다도 그 때 내가 어렸으니 나타샤 코롤료바의 노래 <작은 나라>를 불러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시킨것 같습니다 – 왈레리야가 회상한다 –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싶은 생각도 났습니다.
왈레리야는 성악교사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아스타나 오페라>독창가수 옐레나 간자가 그 애의 첫 교사였다. 그런데 교사의 시간이 부족해 그 선생에게서 오래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레라는 다른 교사 알리야 뚤레게노브나 꾸르가노바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역시 이 교사가 음악학교의 레라 담임이다.
레라는 수도의 제 65호 학교 9학년에서 공부하며 또 제 3호 아동 음악학교 에스트라다 성악과에서도 공부하고 있다.
-부모들이 모든 면에서 나를 백방으로 지지해 줍니다. 아버지가 모든 조직문제를 해결하고 어머니는 스찔리스트 역을 하는 셈입니다 – 공연을 앞두고 화장도 해 주고 공연시에 입을 의상도 골라줍니다 – 레라가 이야기 한다 – 나는 큰만족감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하지만 무대에 서면서 큰 책임감도 느낍니다.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다 발휘하려고 노력하며 가징 중요한 것은 부모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입니다.
레라는 2013-2015년까지 공화국 <줄듸사이>축제에 참가했다. 2015년에 그는 시 콩쿨에서 결승전에 뽑혀 셋째 자리를 차지하여 <카자흐스탄>공연실에서 있은 <Bi 줄듸사이 – 2015> 기념 갈라콘서트에 참가했다. 바로 이 공연과정에 알리야 꾸르가노바가 재능있는 소녀에게 주목을 돌렸으며 다른 음악교사들과 레라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고 음악학교 예비명단에 넣었다. 2015년 9월 1일에 레라가 음악학교 일학년에 입학했다. 그는 콩쿨에서 보통 아이들 (장애자가 아닌) 과 함께 공연하였다.
-우리가 <줄듸사이>축제에 참가하면서 <Bi 줄듸사이>재단 부사장 알띄나이 따니베르겐에게서 이 재단에 재활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레라의 아버지 한 레오니드가 이야기 한다 – 우리는 필요한 서류를 다 모아 재단에 올렸습니다. 왈레리야를 받아들여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 라트비야에서 사뉴까스 의사를 초대하여 두 다리를 수술한 후에 상기 재단의 재활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2016년 봄에 레라가 카자흐국립 예술대에서 있은 <샤븨트-메레이>콩쿨에 참가하여 대상을 받았다. 바로 이 콩쿨에서 레라기 심사위원회 위원인 꾸르마스 마하노브 작곡가와 만났다. 작곡가는 왈레리야를 위해 특별히 노래를 작곡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어머니>라는 나의 첫 노래가 나타난 것입니다 – 레라가 이야기 한다 – 이 노래가 어린 재능가 TV콩쿨 <발라빤 줄듸스>에서 처음 울려났습니다. 나는 이 콩쿨에 손님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이 노래가 아르만 꾸라바예브의 마음에 들어 그는 비데오클립을 촬영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우리는 클립을 촬영하여 엑스포 무대에서 <아스타나 – 미래의 에너지 에스포 2017>아동라디오 축제 갈라 콘서트에 내 놓았습니다. 인터넷 투표결과 가요<어머니>가 대상을 받았습니다.
꾸르마스 마하노브와의 창작협조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작곡가는 왈레리야를 위해 <책>과 <볼라샤긤>노래를 작곡했다. 다른 카자흐스탄 작곡가 나르따이 알따소브는 어린 가수를 위해 <엘렘데>, <아스타나> 노래를 창작했다. 레라는 <아스타나>노래를 불러 2020년 10월 5일에 있은 <뚜간 제르>콩쿨의 <국민의 사랑을 받는 가수>종목에서 승리했다. <뚜간 제르>콩쿨 조직자인 델피스키위원회는 왈레리야에 대한 영화를 촬영하여 상으로 수여했다. 그리고 이름있는 러시아 작곡가 안나 뻬뜨랴쇼바는 왈레리야에게 <음악위를 날다>, <꿈>노래를 선사했다.
꿈으로 가는 길
2018년은 왈레리야에게 한해서 좋은 일이 많은 해였다. 소녀는 자선공연, 각종 포럼과 행사에 참가하였으며 아동 예브로비제니예 전국 선발에도 참가했다. 이것은 다 그에게 있어서 좋은 경험으로 되었다. 같은 해 4월에 그는 러시아 성악콩쿨 <자유로운 새>의 두 종목에서 첫 자리를 차지했다.
레라가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특별한 명절>재단의 지원하에 2019년 2월 2일에 평화 및 화합 궁전에서 그의 첫 독창 컨서트 <음악 위를 날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관람자들이 얼마나 올까고 걱정했습니다 – 레라의 아버지가 말한다 – 그런데 관람석이 꽉 찼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들은 남의 일에 무관심하지 않은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특별한 명절>재단 배우들과 운영자들, 유한책임회사 <유산>, 연출가 잔나 뚜약바예바, <노마드>협주단, 왈레리야의 노래 작곡가들, <줄듸사이>재단, 자선봉사단원들, 왈레리야가 공부하는 학교, 촬영가들, 이벤트 회사 그리고 우리를 도와 준 기타 많은 사람들입니다.
컨서트, 콩쿨 외에 레라는 자선사업도 하며 사회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목적지향성 있는 사람앞에는 장애물이 없다는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왈레리야는 2019년에 파라파우에르리프찡 국제걍기 대회에서 공연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레라는 77개 나라에서 온 대표단들 앞에서 자작곡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는 또한 같은 해에 델피스키 위원회 카스찡을 통과하고 장애자 배우들의 창작실 창설에 참가했습니다. 레라는 <예렉세 발라라르>장애자 극장의 <구름의 다른 면>뮤지클에서 독창가수로 공연하였습니다. 다음 이 뮤지클 가수로 카자흐스탄의 남부와 서부에 있는 6개 도시들을 2주간 순회공연했습니다. 순회공연은 수도에서 뮤지클 공연으로 끝났습니다.
-나는 자선공연에 참가하면서 지나 오라스 여류시인과 면목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 우리 주인공이 이야기 한다 - 시인은 나에 대한 시를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를 작사로 하여 노래를 작곡하기로 했습니다. 예르볼 싸릑바예브 작곡가가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2019년 12월 15일 아스타나의 콘서트 실에서 <나래를 타고 꿈속으로>라는 상기 노래의 첫 공연이 있었습니다.
2020년에 체히야에서 진행된 <Pearles of Europe>국제콩쿨에서 왈레리야가 <자기의 별에로>와 <꿈에로 날아라> 이 두 종목에서 수상자가 되었다. 그리고 Pop Vocar에서는 둘째 자리를 차지하고 소수민족 노래 경쟁에서도 우승 자리를 차지했다. 카자흐스탄의 재능있는 여아는 <축제의 자랑>이란 특별 상도 받았다 팬데믹으로 인한 자가격리 시기에 꾸랄라이 크릑바이와 울잔 쇼라예바는 왈레리야를 위해 <비익께 삼가이믠>이란 노래를 창작했다.델피스키 위원회 소속 <에렉세 극장> 배우들은 이 노래로 공화국 재활 센터에서 장애자 아이들에게 새해를 축하하였다.
이것이 레라가 큰 만족감을 품고 참가하는 행사와 공연 전부가 아니다. 레라의 하루 일정은 빈 자리가 없이 다 잡혀있다: 일반학교와 음악학교에서 수업, 성악과 피아노 연주 첨부 시간…
여유 시간이 좀 나면 레라는 친구들과 교제하기를 좋아하며 영화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Tik Tok도 본다. 교과목들 중에서 지리와 문학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왈레리야는 장래에 창작사업과 인연을 맺으려고 한다. 학교를 필한 후에 카자흐 국립예술대학 <샤븨트>에 입학할 예정이다. 재즈 작품도 불러 볼 생각이 있다. 한 왈레리야가 하는 모든 일에 성공을 바라며 낙천성을 잃지 말고 놀라운 생활애를 항상 보존할 것을 기원하는 바이다!
김 콘스탄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