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신학기 첫 종이 울리고 어느 새 11월 중반이 지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가을 새학기 동방학부의 긴 복도에도 새 얼굴들과 더불어 생기가 넘쳐난다. 여름 내내 기능했던 입학위원회를 통해 최종 합격의 기쁨을 누린 동방학부 새내기들의 얼굴은 아직은 조금 상기되어 있지만 대학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재학생들 못지않아 보인다.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대답 속에서 앞으로 4년 동안 펼쳐지게 될 그들의 꿈을 향한 아름다운 몸짓들이 사뭇 기대가 된다.
최근 지난 4년(2018-현재) 동안 한국학과에서는 매년 40-50명 규모의 신입생 충원이 지속되어 왔다. 이는 그 이전 시기들에 비하면 30% 정도 더 증가한 것으로 매우 고무적이고 상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입생 규모면에서 항상 우리 학과를 앞서왔던 중국학과조차도 이제는 우리에게 추월당한 지 오래이다. 금년에도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우수한 신입생-인재들이 우리 한국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절대 다수의 구성원이 여학생이고 이번에도 남학생은 단 1명 뿐이다. 단 1명이라도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리고 민족 구성원에서도 절대 다수가 카자흐인들이고, 고려인이나 위구르인, 러시아인 등 타민족 출신들은 극히 적다. 학부 내에는 8개의 언어군들이 있는데,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단연 최고이다(과거에는 8개 언어가 각각의 학과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10여 년 전부터 4개의 대단위 학과로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음). 그런 만큼 입시경쟁율에 있어 한국학과의 커트라인 또한 매우 높다. 평균 70% 정도의 신입생들이 4년 국가장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ЕНТ(카자흐스탄 수능시험)에서 적어도 대략 110점 이상은 획득해야 1단계 장학생서류전형에 도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학과의 위상은 매우 높다.
동방학부에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학부는 카라사이 바트라 거리의 한 블록을 길게 다 차지하고 있는데, 타학과의 모든 학생들과도 늘 한 복도에서 수시로 마주치며 생활하게 된다. 그들에 대한 나의 인사는 언제나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이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지만 지금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낸다. 타학과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국학과에 지원했으나 경쟁에서 밀려 아쉽게 타학과로 갔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런 학생들의 경우 대체로 한국어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어 여전히 한국어 몇 마디 정도는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안다. 더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국가경쟁력, 그리고 한류의 영향도 클 것이다. 한국학과가 아니어도 한국의 K-POP (춤, 노래)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학과 내에서 종종 한국 관련 퀴즈대회가 열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깜짝 깜짝 놀란다. K-POP의 한 마디의 멜로디만 들어도, 혹은 사진 속 눈 주위의 모습만 보아도 바로 손을 들고 누구의 노래인지, 어느 연예인의 얼굴인지 정답을 말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류가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의 삶 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연주면 연주, 정말이지 우리 학생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학교 한국학과의 미래는 밝다. 교육을 농사에 비유한다면, 그 농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력이 좋은 밭과 밭에 뿌릴 좋은 품종의 씨앗일 것이다. 금년에도 우수한 품종의 '씨앗들'을 많이 얻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가장 행복한 농부인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잘 보살피고 훌륭하게 키워내는 일이다. 옛말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했다. 카자흐스탄 최고의 인재들을 받아들인 부담감 또한 적지 않으나 교강사진 모두가 사명감을 갖고 귀한 ‘씨앗들’을 지도해 나간다면 분명 최고 품질의 열매들을 수확해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병조(카자흐국립대 한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