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Maersk, FedEx, UPS 등 주요 국제 물류업체들이 러시아향 배송을 중단하고 유럽연합, 미국 및 캐나다는 러시아 항공기들에 대해 영공 폐쇄 조치를 내리는 등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가 심화되자 국제물류체계에서 새로운 대체통로로 급부상하게 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모처럼 찾아온 호황의 기회를 활용하여 세계 여러 국가들을 대상으로 자국의 에너지 및 광물 자원 등의 개발과 관련한 사업의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을 위시로 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물류 수송 경로 개척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점차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중국은 올해 들어 자국에서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물류를 운송하는 통로인 '일대일로(一带一路)' 건설 사업에서 러시아 구간에 대한 투자를 전면 중단하며 현재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를 피해 새로운 대안 찾기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내비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유럽과 중국 모두 중앙아시아를 경유하는 경로 개척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각국은 이 같은 상황을 십분 활용하며 저마다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례로 지난달 말에는 키르기스스탄 촐폰아타 시에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참여한 제 4차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 협의회가 진행되어 물류 및 교통 인프라 산업을 중심으로 한 각국의 지역 발전 계획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해당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자국 발전안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최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카자흐스탄 철도공사(KZT)에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구체적으로 '카스피해 횡단 국제운송로' 개발을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부흥개발은행은 자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금까지는 중국과 유럽연합을 오가는 물류의 95% 가량이 이른바 '북부 회랑(Northern corridor - 러시아, 벨라루스를 경유해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운송로)'을 통해 오갔으나 근래 들어 점차 국제 물류업체들이 대체노선을 찾는 경우가 늘게 되었고 특히 카스피해를 통해 중국-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조지아-터키를 연결하는 '중부 회랑(Middle corridor 혹은 TITR)'을 통한 수송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 노선은 중국과 유럽 사이를 잇는 기존의 철도화물수송 체계를 현실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대안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의 경우에도 이미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중앙아시아 지역 내 교통·물류 인프라 개발 사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해온 바 있다. 특히 지난 6월달에는 중국 외교부장이 카자흐스탄을 공식 방문하여 제3차 중국-중앙아시아 5개국 외교장관 회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방안 및 일대일로 외교정책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 바 있으며 지난달 20~21일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제 4차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 협의회 및 28∼29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 외교장관 회의에도 참여하여 중국과 중앙아시아 간 협력 강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있어서 이러한 상황은 큰 성장의 기회이기에 각국 정상들은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차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 협의회에 참석한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오늘날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에 이루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지역 내 상호협력 강화와 더불어 국제 정치·경제 분야에서 중앙아시아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고 발언했다. 특히 그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로 야기된 전세계적 물류 대란 속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집중된 수요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러시아, 중국, 남아시아, 근동, 남코카서스 사이의 교차로 위치에 자리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오늘날 새롭게 재편된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우리 지역이 대륙횡단 무역 체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비중은 나날이 커가고 있다"고 말하는 한편 "현재 진행 중인 지정학적 대립의 시기는 때가 되면 종식될 것이지만, 일단 그 기회를 통해 우리가 한 번 지은 다리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또한 '중부 회랑(TITR)' 외에도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카스피해 연안을 따라 ‘투르크멘바시-가라보가즈-카자흐 국경’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에 대해서도 지지의 뜻을 표명했다.
한편 지난 7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시에서 열렸던 사우디-카자흐스탄 투자 포럼에서도 토카예프 대통령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중국과 지속적으로 교역 규모를 늘려가고 있는 등 여러 이점을 바탕으로 카자흐스탄이 현재 갖추고 있는 투자 매력도에 대해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날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및 남아시아 시장과 인접한 카자흐스탄이 탁월한 투자 매력도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하며 60여 곳 이상에 달하는 희소금속 매장지역 등을 투자사업으로 추천했다. 이와 관련하여 카자흐스탄 매체 'Astana Times'는 "카자흐스탄, 중국,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튀르키예 공화국 등을 연결하는 카스피해 횡단 국제 운송로의 확장에 대한 향후 발전 로드맵은 사우디아라비아-카자흐스탄 투자 포럼에서 전략적으로 쓰여진 주요 공략점이었다"라고 언급했다.
이 밖에도 지난 7월 22일에는 아딜 투르수노프 카자흐스탄 공화국 외교부 차관이 주카자흐스탄 중국 대사와 면담을 갖고 오는 10월 누르술탄 시에서 개최될 예정인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상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한편 내년에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1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을 함께 수행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최근 카자흐스탄과 중국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알라콜' 국경교차점에는 카자흐스탄-중국 사이를 오가는 운송물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벨라루스로부터 온 물자를 수송하는 차량들이 몰려 교통정체가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구역을 관할하고 있는 제티수 주 행정부에 따르면 예전에는 하루에 통과하는 운송 차량의 수가 평균 10-15대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최근 들어서는 심하면 수 백대에 이를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제티수 주정부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국경교차점 운영시간과 근무인원을 늘리는 한편 하루에 1,200여 대의 차량을 통과시킬 수 있는 시설을 신설하고 있다고 알렸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대한민국과의 협력 및 투자유치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달 아딜 투르수노프 카자흐스탄 외교부 차관은 한국을 방문해 조현동 대한민국 외교부 1차관과 면담을 갖고 올 하반기 진행될 한국-카자흐스탄 수교 30주년 기념 문화행사와 관련한 사안 외에도 광물자원개발 및 원전사업 등 에너지 자원 분야 내 협력 방안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양국 차관들은 또한 올해 하반기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과 한국 간 협력포럼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