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 국가에서는 이 날을 어머니, 할머니, 자매, 친구, 딸에게 바치며 튤립을 선물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3월 8일은 원래 단순한 선물의 날이 아니었다. 물론 꽃과 선물은 기분 좋은 전통이지만 이 날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깊다.
3월 8일은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위한 연대의 날이었다. 이 날의 등장과 함께 세상은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여성도 투표권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독립과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증명해 준 여성들을 떠올려 보려 한다. 우리는 단순히 “남자의 동반자”가 아니라 창조자이며 혁신가이고 발견자이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준 여성들이다. 이 글은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녀의 발견이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의 기술 발전은 훨씬 느렸을지도 모른다. 바로 헤디 라마르(Hedy Lamarr)이다. 그녀는 종종 “와이파이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물론 그녀가 처음부터 인터넷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명은 이후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의 기초가 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릴스나 넷플릭스를 보고 세계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헤디 라마르는 할리우드 배우였지만 동시에 매우 뛰어난 발명가이기도 했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발명 중 하나는 ‘주파수 도약 기술’이다. 이 기술은 원래 어뢰를 원격으로 조종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미군과 과학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이를 단순히 “할리우드 미녀의 엉뚱한 생각” 정도로 취급했다. 아름다운 영화배우가 군사 기술을 발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녀의 발명은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리고 무려 55년이 지난 뒤에야 그녀는 전자 프런티어 재단으로부터 ‘개척자 상’을 받으며 뒤늦게 인정받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의 기초 중 하나가 바로 그녀의 아이디어다.
또 다른 위대한 과학자는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이다. 영국의 생물물리학자인 그녀는 DNA 연구로 유명하며 “레이디 DNA”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연구를 진행하던 프랭클린은 실험 장비를 다루는 능력이 특히 뛰어났다. 그녀가 촬영한 X선 회절 사진은 “사진 51”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문제는 바로 그 사진이었다. 프랭클린의 동의 없이 그녀의 연구 자료와 사진이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DNA 구조 모델을 완성하게 된다. 이후 세 명의 과학자는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프랭클린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녀의 공헌은 훨씬 뒤에야 제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여성 과학자의 연구가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또 한 명의 여성, 아니 어쩌면 아직 어린 소녀였던 인물이 있다. 바로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이다. 파키스탄의 이 소녀는 친구들처럼 공부하고 지식을 얻고 싶어 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소녀들의 교육이 금지되었다.
말랄라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BBC에 익명으로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고, 탈레반 통치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과 교육을 받을 권리에 대한 생각을 기록했다. 이 글이 알려진 이후 말랄라는 학교 버스에서 총격을 당했다. 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 사건 이후에도 그녀는 침묵하지 않았다. 2013년 말랄라는 뉴욕에서 열린 UN 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그리고 전 세계 소녀들의 교육권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위협과 비판이 이어졌지만 그녀의 용기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말랄라는 17세의 나이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역사상 가장 어린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후 시리아 난민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위대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훨씬 더 많다. XY 염색체 연구로 알려진 네티 스티븐스(Nettie Maria Stevens), 우주의 펄서를 발견한 조슬린 벨 버넬(Jocelyn Bell Burnell), 남편의 작품을 수없이 필사하고 편집했던 소피야 톨스타야(Sophia Tolstoya)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들 뒤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편견과 차별을 경험했다.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남긴 영향이다. 이 여성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사회가 여성의 능력을 더 진지하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데에도 기여했다.
오늘날 많은 소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변화 덕분이다. 실제로 EU 통계에 따르면 25~34세 인구 중 약 48%의 여성들이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남성의 경우는 약 37% 정도이다.
물론 완전한 평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도 존재한다. 오늘날 여성들은 연구실에서도, 정치에서도, 의학에서도, 심지어 건설 현장에서도 점점 더 많이 보인다.
현대의 여성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업적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하고 창조할 수 있다.
그래서 3월 8일은 여전히 중요한 날이다. 이 날은 여성들이 존중과 인정, 그리고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물론, 우리 주변의 여성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전하기에도 아주 좋은 날이기도 하다.
서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