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벽두 자나오젠 지역에서 시작되었던 민생시위가 카자흐스탄 전역으로 확산, 대규모 무장폭력 사태로까지 번졌던 ‘1월 소요사태(이하 1월 사태)’. 액화천연가스(LPG) 가격상승에 대한 불만이 기폭제가 되어 그간 카자흐스탄 사회 내에서 누적되어 왔던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성토와 더불어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주도하는 시위로 비춰졌던 초기의 움직임은 이내 대규모 약탈과 방화, 총격 등을 수반한 가담자들의 과격 폭력행위와 정권 찬탈을 노린 특정 세력의 개입,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군의 무력 진압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소속 평화유지군의 파견 등으로까지 이어지며 크나큰 혼란을 빚어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 독립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로 기록된 이 사건은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을 위시로 한 카자흐스탄 정부로 하여금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 개혁을 향한 움직임에 속도를 올리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1월 사태’가 발생한지도 어느덧 3년. 비상사태 해제가 공포된 2022년 1월 19일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카자흐스탄 내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와 관련해 카자흐스탄 철학·정치학·종교학연구소(Institute for Philosophy, Political Science and Religion Studies) 산하 정치연구센터장이자 정치분석가로 활동 중인 암레바예프 아이다르(Амребаев Айдар) 박사의 의견을 들어본다. 아래 내용은 카자흐스탄 매체 Kazinform의 기사를 발췌하여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암레바예프 박사는 “2022년 1월 일어난 사태 직후부터 현재까지 카자흐스탄 정부가 펼쳐온 개혁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나 짧다”고 말하면서 우선 당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그간 역사분석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여러 연구를 토대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또한 그는 본 사태의 본질과 관련하여 보다 심층적이며 포괄적인 이해가 가능해지고, 해당 사건의 여파가 향후 국가 발전에 궁극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아이다르 암레바예프 박사의 의견에 따르면 ‘1월 사태’는 이미 2022년이 도래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바 있는 카자흐스탄 정치·경제 시스템의 변화 과정 속에서 누적되어 온 불균형이 초래한 결과였다.
“문제는 당시 카자흐스탄의 정치·경제 체제가 국내에서 일어나던 현안들은 물론, 국제 동향에 따라 일어나던 문제점들에도 적절한 대처를 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에 있었습니다. 지난 90년대에 카자흐스탄의 정치모델로 굳혀졌던 초(超)대통령제(Superpresidency) 시스템은 초창기 카자흐스탄이 신생 독립국가로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본 체제가 사회와 민중이 충족을 필요로 하는 긴요한 수요에 대응하는 것을 멈추어 버렸다는 점이지요. 독립 직후 초기 단계에서는 권력이 한 축에 집중된 중앙집권 체제가 효율적인 수직형 권력구조를 통해 독립국가의 건설에 필요한 사회를 조성하는데 일조했습니다만, 정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국민의 수요를 건설적이고 현대적이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끌어내어 충족시키고, 더불어 국제 무대에서 한 국가로서의 생존력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 나갔어야 합니다”.
또 그는 본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국가의 경제적 측면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정부가 ‘경제 우선, 정치는 나중’ 식의 정책에 치중하여 국가가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 필요한 정치·경제 간 조화로운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경제는 정치에서 분리된 채로 오롯이 홀로 발전을 이룰 수 없는 분야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일어나던 경제적 변화는 당시의 정치적 자유 수준, 그리고 사회의 발전 과정과 일치하지 않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심각한 불균형을 야기시켰습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집권 직후 이미 자신의 첫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정치개혁의 시작을 예고하며 이른바 ‘경청하는 정부’의 신설을 통해 향후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사회적 수요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갈 것임을 표명한 바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토카예프 대통령의 주도 하에 이미 2019년부터 시작되었던 개혁 과정은 기존 ‘막후정치’ 기반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변화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국내 경제권력을 독점해 온 일부 정치권 세력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2022년 1월 벌어진 소요사태 중 정권 찬탈을 목적으로 한 국가전복 시도로 이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수면 위로 터져 나왔던 민중의 불만이 해당 세력들에 의해 ‘개혁’을 막기 위한 도구로써 악용된 것이지요”.
암레바예프 박사는 “소수 권력집단의 이익 위주로 운영되던 독점경제 체제가 정치개혁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로써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정치적 긴장과 갈등이 결국 사회적 대립의 형태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당시 카자흐스탄 서부에서 일어났던 LPG 가격 인상에 대한 시위는 당시 민중에게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서민들에게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당시의 독점가들로 하여금 가격을 정상화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이 전무했으며, 이들이 처했던 상황은 곧 그해 일어났던 ‘1월 사태’를 야기시킨 주요 요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정치 정책의 의사결정에 있어 보다 폭넓은 참여권을 원했으나, 사법당국을 위시로 한 일부 정부기관들은 이러한 민중의 수요에 반하는 행보를 고수했으며, 결국 이는 사회적 반발과 충돌을 불러일으켰지요. 나아가,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을 저지하려는 일부 정치권 세력은 자신들의 이익 보전을 위해 국익을 배신하는 행태를 자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국가의 정치·경제 시스템 개혁은 복잡한 과정을 수반하는 만큼, 지금까지 이를 추진했던 국가들은 저마다 다른 전개 양상을 보여왔다”고 설명하며 “그 중 일부 국가들에서는 강제적인 형태로 정권이 교체되고 정치 체계가 바뀌면서 오히려 사회 전반에 걸쳐 발전이 아닌 퇴보를 야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암레바예프 박사는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1월 사태’ 당시 토카예프 대통령은 사회적 충돌을 최소화하고 정부기관들의 구성 및 운영 원칙의 대대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 일련의 결정적인 조치를 내리며 민중과 정부 간 대립의 강도를 줄이고, 나아가 사회와 정부 사이에 건설적인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환경의 조성을 최우선 순위로 설정했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그는 ‘1월 사태’ 이후 진행된 개혁의 세부적인 내역에 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1월 사태 이후 카자흐스탄 법령 체계에는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민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개혁을 골자로 하는 정책이 채택되었습니다. 또한 마질리스(하원) 의원과 마슬리하트(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에는 더 많은 정당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예전보다 경쟁 체제가 강화되었지요. 과거 우리나라에서 초대통령제 기반의 중앙집권적 정치 체계가 유지되던 것에 반해 이제는 현 대통령에 의해 이른바 ‘강력한 대통령 – 영향력 있는 의회 – 책임 있는 정부’로 규정된 3대 가치에 기반한, 종전보다 균형 잡힌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는 현재 카자흐스탄의 정치체계의 변화 양상과 관련해 “과거보다 더 경쟁 체제가 강화되고 ‘열려 있는’ 형태로 변모해 가고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부는 민중과 사회가 지적하는 문제점들을 수렴하여 살피고, 이를 해결함에 있어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조는 특히 홍수 등의 자연 재해나 비행기 추락 등 근래 발생했던 여러 사고 및 사태들에 대해 국가행정조직들이 신속하게 대응하는 행보를 보인 것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또한 의회의 경우에도 과거와 비교해 다방면에서 카자흐스탄 사회의 이익대변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며, 대통령 또한 주지하듯 체계적인 정치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말한다.
암레바예프 박사는 2022년 1월의 소요사태를 카자흐스탄의 정치 시스템이 과거에서 새로운 형태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분수령’으로 칭한다.
“‘1월 사태’는 카자흐스탄 정치의 의사결정 시스템의 과거와 새로운 시작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는 종전보다 균형 잡히고 사회와 민중 앞에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되었지요. 토카예프 대통령께서는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점진적 개혁을 실현해 나가고 있고요. 정치분석가로서 저는 현재의 시스템이 사회가 내는 목소리에 이전보다 열려 있는 형태로 변모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정치 체계의 개혁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공정한 카자흐스탄’을 이룩하는데 있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여러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