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출신의 고려인들에게 한국은 단순히 고유한 문화의 상징이 아니라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나라가 되었다. 텔레그램의 한 채널에서 흥미로운 게시글을 발견했는데, 20년 전에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과 10년 전에 한국에 온 고려인의 삶을 종합적으로 묘사한 내용이었다. 이 두 세대의 이민자의 이야기를 통해 고향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기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각기 다른 시기에 한국으로 온 이들의 적응 경험과 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2000년대에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제 이름은 안드레이이고, 올해 마흔일곱 살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15년째 살고 있습니다. 서른 살이 조금 넘었을 때 더 나은 삶을 찾아 가족을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당시 친구들은 한국을 공장에서 일하며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마치 동화처럼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 일하게 된 공장은 제가 고향에서 벌 수 있는 금액보다 높은 급여를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곧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작업 교대 시간은 10~12 시간에 달했고,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주거비와 가족의 식비를 지불하고 이전 삶에서 남은 대출금을 갚고 나면 급여의 20%정도만 남았습니다. 이 돈도 많지 않아 1년에 한번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선물을 보낼 정도였습니다.
저에게 아들과 딸 두 명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 한국에 와서 이곳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새로운 언어와 낯선 문화 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저 또한 학교 선생님들에게 우리의 관습이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한국어도 익히고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합니다. 저의 경우에 한국말 배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생활비를 벌어야 되기 때문에 학원이나 학교에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가끔은 어딘가에 전화하거나 서류를 처리할 일이 있으면 우리 아이들은 도와줍니다.
제 삶은 반복의 연속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가서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고 ‘’내일은 또 다시 이 하루가 반복되겠네’’라는 생각하며 잠이 듭니다. 그래도 제가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한국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제가 겪었던 고된 노동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가치가 있었을까?’’
한편으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진급의 기회가 없는 공장에서 제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를 보냈으며 엄청난 과로와 피로만 쌓였습니다. 그러나 제 가족은 항상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으며 언어도 배웠습니다. 그들은 이미 다릅니다. 이제 그들은 저보다 더 한국인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끔은 오래된 사진을 보면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마을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 멀리 떠나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고향에 남았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삶은 더 단순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과 가까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랬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는 쉬운 것이 없고, 모든 선택의 옳고 그름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쓰라리고 아쉽기도 합니다. 공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건강도 나빠졌으며, 여전히 돈은 빠듯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보면마음이 놓입니다. 그들은 기회를 얻었고, 저는 그것이야말로 이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2010년대에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제 이름은 마리나이고, 저는 스물 두 살입니다. 한국에서 산 지는 벌써 12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열 살이었을 때, 부모님은 더 나은 삶을 찾아 한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그당시 내 감정도 아직 생생합니다. 제 마음 속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여 설렜더라고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학교…
한국 학교 첫날. 저는 철저히 이방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변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저는 그들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돕기 위해 서투른 영어로 몇 마디를 건네셨지만 저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반 친구들은 수군거리며 제 이야기를 나누는 듯 보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는지 이야기하고 있었겠죠.
그때 처음으로 ‘진짜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주변 사람들의 눈빛에서 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려는 기색을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금만 비웃을 거리가 생기면, 예를 들어 잘못된 발음, 한자를 쓸 줄 모르는 것, 혹은 한국어 문법의 어려움 같은 것들에 대해 아이들은 금세 그것을 꼬집어 놀리곤 했습니다. 제 책가방이 사라지거나 모욕적인 말이 적힌 쪽지가 들어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속상했던 건, 제가 ‘새로 온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저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참아야 했고, 고향 학교를 몹시 그리워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선생님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저를 잘 알고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으며 모든 것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몇 주, 몇 달이 지나면서 저는 점차 한국어를 배우고 반 친구들과 조금씩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모든 아이들이 악의적이거나 비우호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많은 아이들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언어 장벽이 얆아질수록 따돌림도 줄어들었지만, 제 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언제든 누군가가 다시 저를 비웃거나 모욕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제 안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한국어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지금 스물두 살이 된 저는 한국에서의 제 삶을 돌아보며 이 나라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는지 깨닫습니다. 이곳은 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이고, 교육의 기회도 많습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회들과 함께 제 안에는 늘 어떤 공허함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항상 ‘외국인’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자랐습니다. 물론 저는 이제 한국어를 거의 억양 없이 구사하고, 한국의 문화와 관습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때로는 제가 여전히 ‘완전히 한국 사람이 된 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미래를 생각할 때면 복잡한 감정이 제 마음을 채웁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이 저에게 분명히 많은 커리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곳은 안전하고,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잘 운영되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도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향 학교의 정서, 단순하고 소소한 일상, 그곳의 냄새, 심지어 제가 태어나 10년 동안 자란 곳의 날씨조차 그립습니다.
때로는 제 한국인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모든 것이 익숙한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저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이런 생각이 종종 듭니다. ‘’나는 과연 이곳에서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제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될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지금 나름대로 행복한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는 목표도 있고 직업도 있으며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향 학교와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쪽이 먹먹해집니다. 그 기억들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일은, 아마 제게 평생 불가능할 것일지도 모릅니다.
안드레이와 마리나의 이야기는 새로운 나라에서의 삶이 수많은 기회가 존재하더라도 막대한 노력과 인내, 그리고 강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각의 이야기는 고된 노동, 언어 장벽, 혹은 이질감이라는 도전 과제에 맞서 싸워온 그들만의 여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두 이야기를 관통하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가족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열망이 이 여정을 가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의 이주는 그들에게 단순히 시련의 연속이 아니라 새로운 성취를 위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 없는, 그들만의 특별한 여정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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