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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 · 가혹한 유배지에서 최고의 휴양지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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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 · 가혹한 유배지에서 최고의 휴양지로 (제주)
      제2장 · 가혹한 유배지에서 최고의 휴양지로 (제주)
      06.08.2026
      정태철의 한국에서 부치는 편지

      와유(臥遊):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그림이나 글로 산천을 여행하는 일

      오늘 한국 사람들이, 그리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이 섬의 바다와 해녀들의 물질을 만난 세계의 시청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섬은, 두 세기 전에는 가장 두려워하던 땅이었습니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닿는 제주가 그때는 사나운 물길 너머의 끝, 조선이 무거운 죄인을 보내던 가장 먼 유배지였습니다. 조선 오백 년 동안 이 섬에 끌려온 유배객이 수백을 헤아리고,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광해군이 생을 마친 곳도 여기입니다. 우암 송시열도, 추사의 스승뻘 글벗들도 이 물길을 건넜으니, 섬의 유배객 명부는 곧 조선 정쟁사의 색인이기도 합니다. 서울이 임금의 설계였고 수원이 한 사람의 그리움이었다면, 이번에는 갇힌 한 사람과 섬 백성의 슬기를 함께 읽습니다. 길잡이는 이 섬에 여덟 해 동안 갇혔던 추사 김정희입니다.

      바다 건너, 단절의 세계
      1840년 가을, 쉰다섯의 김정희가 제주 화북 포구에 내렸습니다. 그는 당대 조선에서 가장 화려한 이력의 지식인이었습니다. 명문가에서 나고 자라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에 가서 옹방강, 완원 같은 대학자들과 사제의 연을 맺었고, 금석학과 글씨로 두 나라에 이름이 높았습니다. 옹방강은 그를 두고 경술과 문장이 바다 동쪽에서 제일이라 적어 주었고, 완원은 귀한 용단차를 끓여 젊은 손님을 맞았습니다. 추사가 그 차의 이름을 따 승설도인이라는 호를 평생 지닌 것을 보면, 연경의 그날들이 그에게 어떤 시절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 그가 십 년 묵은 옥사가 되살아난 정쟁에 휘말려 모진 고문 끝에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가, 벗 조인영의 상소로 겨우 목숨만 건져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그는 해남 대흥사에 들러 오랜 벗 초의선사를 만났습니다. 이때 법당에 걸린 이광사의 현판 글씨를 흠잡으며 떼어 내게 했다가, 여덟 해 뒤 풀려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걸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전승은 전승으로 읽어야겠지만, 귀양길의 자부심과 귀로의 겸손을 이보다 잘 그린 그림도 드뭅니다.

      포구에서 다시 서쪽으로 팔십 리, 유배지는 제주에서도 서남쪽 끝, 바람이 가장 드센 대정 고을이었습니다. 형은 위리안치, 거처 둘레에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유배 가운데서도 무거운 벌이었습니다. 가시 울은 감금의 장치이자, 이 사람의 죄가 가볍지 않다는 표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처음 든 집에서 뒤에 강도순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여덟 해를 살았습니다. 그는 이 거처를 귤중옥, 귤나무 가운데 집, 이라 불렀습니다. 매화도 대나무도 흔하지만 귤만은 오직 이 섬의 것이라며, 갇힌 집의 이름을 그 귀함에서 따왔습니다. 귤은 임금께 올리던 진상품이라 섬에는 나라의 과수원인 과원이 따로 있었고, 진상철이면 백성의 시름이 깊었다는 기록도 전하니, 귀함이란 늘 양면이 있는 법입니다. 연경의 서재에서 천하의 책을 만지던 손이, 가시 울 안의 좁은 마당에 내려앉았습니다.

      두가지 목적의 담

      여기서 이 섬의 이치를 짚고 가야 합니다. 제주는 화산이 만든 섬입니다. 한가운데 한라산이 솟고, 그 자락에 작은 화산 봉우리 오름이 삼백예순여덟을 헤아립니다. 그리고 이 섬에는 바람이 많습니다.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가 많다는 삼다(三多)의 첫머리가 바람입니다. 막을 산줄기 없이 사방이 바다이니, 바람은 이 땅 살림의 첫 조건이었고, 그 바닷바람 속에서 물질로 바다밭을 일군 이들이 해녀였습니다. 기계 장치 없이 제 숨 하나로 바다에 들고, 물 위로 솟으며 숨비소리라 부르는 휘파람 같은 숨을 내쉬고, 물가의 돌집 불턱에 모여 언 몸을 녹이며 물질의 법도와 바다밭의 경계를 의논하던 공동체, 2016년 유네스코는 이 해녀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렸습니다. 바람의 섬은 그렇게, 여자들의 숨으로 바다까지 밭을 삼은 섬입니다.

      제주 사람들이 그 바람을 읽은 법이 돌담에 남아 있습니다. 구멍 숭숭한 현무암을 시멘트도 없이 얼기설기 쌓은 담은 어설퍼 보이지만, 거센 바람에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습니다. 돌과 돌 사이 틈으로 바람을 통과시키기 때문입니다. 바람 드센 날 담 곁에 서면 돌 틈을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막아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통하게 해서 견디는 슬기입니다. 밭과 밭 사이를 가르는 밭담은 섬 전체를 검은 그물처럼 덮어, 그 길이가 이만 킬로미터를 넘는다고 추정됩니다. 2014년에는 이 밭담이 세계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이 되었습니다. 초가지붕을 줄로 촘촘히 얽어매고, 집으로 드는 골목 올레를 일부러 구부려 바람의 기세를 꺾은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산 자의 밭에서 그치지 않아서, 죽은 이의 무덤에도 산담이라는 나지막한 돌담을 둘렀습니다. 산 사람의 밭과 죽은 사람의 집이 한 가지 이치 안에 있는 셈입니다. 대문조차 그렇습니다. 제주의 집은 문짝 대신 정낭이라 부르는 나무 막대 두엇을 걸쳐 두어, 주인이 있는지 멀리 갔는지를 길 가는 이에게 알렸습니다. 막는 대신 알리는 문입니다. 마을 어귀의 돌하르방 또한 무서운 수문장이라기보다, 둥근 눈으로 손님을 맞는 돌의 인사에 가깝습니다.

      서울에서 우리는 임금과 신하들이 산과 글자로 도읍을 설계한 이치를 읽었습니다. 제주의 돌담은 그와 다른 계보, 이름 없는 백성들이 몸으로 익힌 땅 읽기입니다. 풍수서 한 권 없이도 섬사람들은 바람과 돌의 이치를 누구보다 깊이 알았습니다. 바람을 묶을 수 없어 길들였고, 다 길들일 수 없어 함께 사는 법을 익혔으니, 돌담은 그 오랜 협상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같은 섬에, 통하게 하려는 담이 아니라 막으려고 두른 담도 있었습니다. 추사를 가둔 탱자 울타리입니다. 섬의 돌담과 유배객의 가시 울, 이 두 담의 대비가 이번 이야기의 속살입니다.

      추운 계절에야 보이는 것들

      가시 울 안의 세월은 모질었습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낯선 풍토에 시달리는 사정은, 그가 부인에게 보낸 한글 편지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민어며 장이며 옷가지를 보내 달라는, 자상하고도 구차한 살림의 부탁들입니다. 천하의 명필도 끼니 앞에서는 한 사람의 지아비였습니다. 그 부인마저 유배 세 해째에 세상을 떠났고, 부고는 한 달이 지나서야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추사는 시 한 편에 비통을 눌러 담았습니다. 저승의 월하노인에게 빌어 다음 생에는 부부의 자리를 바꿔 태어나, 그대가 살고 내가 죽어 이 슬픔을 그대도 알게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시 울타리는 모든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초의는 바다 건너 차를 부쳐 왔고, 추사가 차를 어서 보내라 조르고 으르는 익살스러운 편지들이 남아, 갇힌 이의 어리광이 벗 사이의 온기로 읽힙니다. 역관 제자 이상적은 연경에서 구한 귀한 책들을 잇달아 보내왔습니다. 백스무 권 거질 『황조경세문편』 같은, 권세 있는 집에 바쳐도 아깝지 않을 책들이었습니다. 권세가 떨어진 스승에게, 누구도 시키지 않은 정성이었습니다. 1844년 추사는 그 마음에 그림 한 폭으로 답합니다. 마른 붓으로 그린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 그리고 막막한 여백, 세한도(歲寒圖)입니다.

      그림에 붙인 글에서 추사는 『논어』의 한 구절을 끌어옵니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줄을 안다. 그리고 권세와 이익으로 모인 사이는 그것이 다하면 흩어진다는 사마천의 말을 곁에 두었습니다. 따뜻한 시절에는 모두가 푸르러 보이니, 누가 송백인지는 추워져 봐야 안다는 뜻입니다. 그림 한쪽에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도장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상적은 이 그림을 품고 연경에 가서 청나라 문인 열여섯 사람의 글을 받아 왔습니다. 가둬 둔 사람의 그림 한 장이 바다를 두 번 건넌 셈입니다. 세한도의 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뒷날 일본까지 흘러갔다가 광복 직전 한 서예가의 지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작은 그림 한 폭마저 유랑과 귀환의 내력을 지녔습니다.

      갇힌 손은 쉬지 않았습니다. 추사는 스스로 일흔 평생에 벼루 열 개를 갈아 없애고 붓 천 자루를 닳렸다고 적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깊은 시간이 이 마당에서 흘렀습니다. 후대가 추사체라 부르는 글씨가 유배의 세월에 무르익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 길의 끝자락이 궁금하시면 서울 봉은사의 판전(板殿) 현판을 찾아보십시오. 세상 뜨기 사흘 전, 일흔한 살 병중에 썼다고 곁에 적혀 있는 글씨입니다. 그는 고을의 젊은이들도 가르쳤습니다. 대정향교에 그가 써 준 의문당(疑問堂) 현판이 걸렸으니, 물음을 품으라는 그 두 글자는 가시 울 안에서 나온 가장 너른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탱자 울 곁에서 읽는 법

      제주에 가시거든 서남쪽 대정으로 길을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세한도 속 집을 닮게 지은 제주추사관이 들녘에 낮게 앉아 있고, 그 곁에 초가와 탱자 울타리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마당에 서면 들판 너머로 종처럼 솟은 산방산이 한눈에 듭니다. 갇힌 사람이 날마다 바라보았을 봉우리이고, 그 곁의 단산은 바구니를 엎은 듯한 바위 능선으로 벌판의 윤곽을 잡아 줍니다. 이웃 포구 모슬포의 바람은 오죽 드세면 못살포라는 우스개가 전해 올 정도이니, 추사가 견딘 바람이 어떤 바람이었는지 몸으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추사관을 먼저 보고 마당으로 나오면 같은 들판이 다르게 보입니다. 겨울에 가신다면 들녘의 수선화를 눈여겨보십시오. 추사는 이 꽃을 깊이 사랑해서, 연경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꽃이 여기서는 지천으로 피어 소와 말에게 짓밟히고 김매듯 뽑혀 나간다고 벗에게 한탄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알아보는 눈이 없으면 보물도 잡초가 된다는, 유배객 자신의 처지 같은 문장입니다.

      밥상은 섬답게 차려집니다. 흑돼지 구이와 옥돔구이, 한치물회에 한라봉 한 알, 바람 많은 섬이 기른 맛들입니다. 유배를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는 풀려난 지 세 해 만에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다녀와야 했고, 몸은 끝내 상해 있었습니다. 다만 그 모진 세월이 무엇을 남겼는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안다는 세한의 문장을, 시린 세월을 건너온 공동체보다 깊이 읽을 독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 건너 갇힌 스승에게 책을 부치던 이상적의 마음은, 머나먼 땅에서 모국어 신문을 만들고 받아 읽는 마음과 그리 멀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글이 사람을 잇는 일입니다. 한 세기 전 연해주에서 창간되어 강제이주의 화물칸을 따라 중앙아시아까지 옮겨 오고도 끊기지 않은 이 신문이야말로, 날이 차가워진 뒤에도 시들지 않은 송백 한 그루입니다.

      탱자 울타리는 진작 삭아 없어졌고, 세한도와 글씨와 돌담은 남았습니다. 막으려던 것은 사라지고 통하려던 것은 남는다, 이 섬이 두 개의 담으로 가르쳐 주는 이치입니다. 바람에게 배운 백성의 담이, 권력이 두른 가시 울을 이긴 자리입니다. 사람을 가두던 형벌의 이름은 잊혀 가지만, 갇혔던 사람의 호는 미술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대정의 마당에 서는 날, 남아 있는 것들이 그 증언을 들려줄 것입니다.

      답사 메모
      • 가는 길: 제주공항에서 대정까지 서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렌터카 또는 버스).
      • 반나절 동선: 제주추사관·유배지 지도·사진 → 걸어서 대정향교 지도·사진(단산 아래) → 차로 산방산 지도·사진·용머리해안 지도·사진 → 모슬포항 지도. 적거지에서 산방산까지의 들길은 올레 10코스와 나란히 걷기 좋습니다.
      • 철과 시간: 수선화는 한겨울부터 이른 봄, 대정 들녘이 가장 이름났습니다. 추사관은 전시를 먼저 보고 마당으로 나오면 같은 들판이 다르게 보입니다.
      • 맛과 쉼: 겨울 모슬포는 방어의 철, 항구 횟집들이 성시를 이룹니다.
      • 알아 둘 것: 추사관은 월요일 휴관. 용머리해안은 물때에 따라 출입이 닫히니 현장 안내를 확인하시기를. 세한도 진본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에 있습니다(2020년 기증).

      동선 한 번에 열기, 대정 반나절: 동선 지도

      알아 두면 좋은 말들
      •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지 거처에 가시 울타리를 둘러 가두던 형벌.
      • 세한(歲寒): 한 해의 추운 때. 어려운 시절을 빗대는 말.
      • 발문(跋文): 글이나 그림 끝에 붙이는 글.
      • 오름: 제주의 작은 화산 봉우리를 이르는 제주말.
      • 적거(謫居): 귀양살이하는 거처, 또는 귀양살이 그 자체.
      • 금석학(金石學): 쇠와 돌에 새긴 옛 글씨를 연구하는 학문.
      • 거질(巨帙): 권수가 많은 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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