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카자흐 민족역사학자 살타낫 아사노바 박사는 “과거 카자흐 민족은 농경이 불가능한 척박한 초원지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축을 거느리며 떠돌아 다니는 유목(遊牧) 생활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런 만큼 평소 가축들을 비롯하여 광활한 유라시아의 대자연 속에서 마주치는 여러 동물들을 향한 이들의 시선과 태도 또한 특별했다”고 설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유라시아 지역의 초원에 서식하던 동물들이 카자흐 유목민들의 의식주에 미친 영향 또한 실로 지대했다”고 덧붙인다.
“튀르크족의 역사와 문화에 조예가 깊은 카자흐스탄의 저명한 문학가이자 언어학자 올자스 술레이메노프 선생은 일찍이 유목민의 기원과 이들이 세계 문명사에 미친 영향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사설에서 그는 ‘초원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는 가축들을 늑대무리로부터 지키는 과정에서 카자흐 유목민들은 자연스럽게 늑대들이 가진 독특한 무리생활 방식과 사냥 습성 등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고, 어느덧 그러한 특성을 형상화하여 자신들의 생활양식 전반에 투영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지요. 그는 특히 ‘늑대 무리는 가축 떼를 사냥할 때, 결코 젊고 힘센 개체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개체들을 잡아먹는 법이 없다. 이들은 항상 피식자 무리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병들거나 어린 개체들을 사냥하여 잡아먹는다. 늑대들은 본능적으로 먹이사슬 생태계 속에서 자신들의 생존 수단인 가축들이 상시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해설하면서 ‘자연히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유목 방식의 가축사육 활동은 카자흐인들에게 있어 강인한 힘과 사냥능력을 가진 남성들의 전유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상술한 바 있듯 일상 가까이에서 늑대의 습성을 관찰해 온 카자흐 유목민들은 이 맹수가 가진 ‘남성적인 강인함’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기원을 상징하는 토템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아사노바 박사는 또 “이처럼 늑대라는 동물이 하나의 토템으로서 카자흐 유목민 문화 속에 자리잡아 발전한 대표적인 예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민속놀이 ‘쿽뵈릐(көк бөрі, 푸른 늑대를 의미. 러시아어 발음은 ‘콕파르’)’를 꼽을 수 있다. 오로지 남성들만 참여하는 이 놀이는 바로 늑대 무리의 행동을 고스란히 모방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민속놀이 ‘쿽뵈릐’의 전반적인 틀은 늑대들이 어린 개체들을 상대로 사냥 훈련을 시킬 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늑대들의 사냥 훈련은 우선 힘센 성체의 늑대들이 훈련용으로 사용할 작고 어린 동물을 사냥한 뒤 그 시체를 어린 늑대들에게 던지면, 어린 늑대들은 일정 시간 동안 그 사체를 물고 달리다가 다시 이를 성체 늑대들에게 물어 던지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바로 이렇게 서로 사냥감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어린 세대에게 사냥법을 전수하는 것이지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카자흐인들과 여러 다른 튀크르계 민족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쿽뵈릐’ 놀이는 바로 이러한 늑대들의 생활을 그대로 본 딴 것이고요”.
그렇다면 카자흐 유목민들이 가축으로 길렀던 동물들의 경우는 어떨까? 아사노바 박사의 말에 따르면 유목생활을 하던 카자흐인들이 여러 가축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존재로 여긴 동물은 양, 말, 낙타였다.
“과거 카자흐 유목민들은 두세 종류의 가축들을 사육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보통 양과 말, 그리고 낙타가 가장 선호되었지요. 상시적으로 드넓은 초원지대를 옮겨 다니던 유목생활 방식의 특성상, 장거리 이동을 버거워 하는 소와 같은 동물들은 폭넓게 사육되지 않았고요. 사실상 체중·체력을 소실하지 않고 거뜬히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가축으로는 말, 양, 그리고 낙타 정도 밖에 없었죠. 게다가 이 동물들은 방목 하에 계절에 구애 받지 않고 스스로 먹이를 구해먹는 습성까지 갖추었는데, 특히 겨울철에는 눈을 직접 파내어 풀을 뜯어먹을 수 있어 동계에도 사료로 쓸 건초 등을 준비해 둘 필요가 없다는 큰 이점이 있었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방식의 가축 사육은 큰 손실 위험을 수반하기도 했는데, 바로 각종 자연재해로 한순간에 가축들이 전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중 유목민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봄으로 접어들 무렵 일시적으로 사그라들었던 추위가 급작스럽게 다시 찾아오면서 초원지대가 얼음으로 뒤덮이는 현상으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빙판 아래의 풀을 뜯어먹을 수 없게 된 가축들이 집단으로 아사해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치켜볼 수 밖에 없었다. 예로부터 ‘주트(Джут)’라 불렸던 이 자연재해는 유목민들에게 있어 가장 큰 재산인 가축들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무서운 존재였다. 이 현상은 유목민들의 사회에서 통용되던 12년 주기인 ‘무셸(Мүшел)’을 기준으로 대략 한 주기(12년)에 한번씩 크게 찾아오는 재앙으로 알려졌었다. 흥미로운 점은 ‘무셸’에서도 동아시아 문화권의 ‘십이지(十二支)’와 마찬가지로 주기 내 각 연도를 상징하는 총 12종의 동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이 또한 카자흐인들을 비롯한 튀르크계 유목민들이 예로부터 동물들을 각별한 존재로 인식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말
카자흐 유목민들은 말이 태어나 성장해 가는 시기에 따라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며 명칭을 붙였다. 가령, 생후 첫 1년을 살아가는 녀석을 ‘쿨른(Құлын)’이라 불렀으며, 생후 6-7개월 이상 된 개체는 ‘좌바그(Жабағы)’, 약 1살 되는 개체는 ‘타이(Тай)’, 생후 2살 된 망아지는 ‘쿠난(Құнан)’, 3살 된 녀석은 ‘되녠(Дөнен)’, 2-3살 된 암컷 망아지는 ‘바이탈(Байтал)’이라 이름 붙이는 식이었다.
이렇듯 “모든 동물을 통틀어 오직 말들에게만 나이/시기/유형 별로 붙여지는 10개 이상에 이르는 명칭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카자흐 유목민들에게 있어 말이라는 가축의 존재가 특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아사노바 박사는 설명한다.
“익히 알려졌듯, 말은 카자흐 민족에게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단순히 유목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궂은 일을 도맡아 해주는 존재에 그치지 않았지요. 카자흐 민족의 구전 설화나 대서사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말이며, 내용상 말은 늘 인간의 친구로 묘사되지요. 때로는 말 스스로가 인간을 자신의 주인으로 간택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특히 ‘코블란드 바트르(Кобланды батыр)’, ‘예르 퇴스틱(Ер Төстік)’ 등 카자흐 대서사시에 등장하는 말은 주인공에게 있어 그 어떤 다른 극중 인물들보다도 더 소중한 친구로 묘사되고 있죠”.
한편 아사노바 박사의 말에 따르면 카자흐 유목민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가축들에겐 각각 종에 따라 수호신의 역할을 해주는 영적 존재가 있다고 여겼다. 일례로 낙타들은 전설상의 성인(聖人)인 ‘오이슬카라(Ойсылқара)’, 양들은 성인 ‘쇼판아타(Шопан-ата)’의 가호를 받는다고 믿었으며, 소들을 지켜주는 존재로는 또다른 전설상의 인물 ‘젱기바바(Зеңгі баба)’가 숭배되었다. 또한 말들의 경우에는 튀르크계 민족들의 설화 속 인물 ‘쥘크쉬아타(Жылқышы ата)’가 수호신으로서 신봉되었다. 카자흐 민족의 여러 구전 설화들에서 시작해 자체 문자가 생겨난 이후 쓰여진 여러 문학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동물들과 그 수호신들의 형상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 중에서도 낙타와 말은 매우 특별한 영물로서 늘 여러 대서사시 혹은 설화 속에서 주인공들 앞에 나타나 이들의 선행을 돕는 친구같은 존재로 등장하곤 한다.
수리부엉이, 까마귀, 그리고 검독수리

아사노바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카자흐 유목민들은 유독 하늘을 나는 맹금류 중심의 여러 새들을 신성시하였는데, 특히 그 중 가장 고귀한 존재로 인식했던 동물은 수리부엉이다. 이 새는 강력한 영력을 지닌 신성한 동물로서 인간, 특히 아직 유약한 아기와 어린이들을 저주, 부정, 질병, 악령 등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수리부엉이의 깃털은 카자흐 유목민들의 의복과 요람, 어린이 및 처녀들의 모자 등을 만들 때 자주 사용되었다.
카자흐인들이 신성시한 또 다른 새는 바로 까마귀이다. 카자흐 유목민들 사이에서 까마귀는 지혜를 상징하며 신들과 영들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하여 주는 존재로서, 이승과 천상계를 이어주는 동물로 여겨졌다. 아사노바 박사는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많은 민족들과는 달리 카자흐인들에게 있어서 검은색은 비극이나 어둠이 아닌 ‘힘’을 상징하는 색이었다”고 강조한다. 바로 이러한 시각에 기반하여 카자흐인들은 예로부터 가장 힘이 세고 지구력이 강한 동물들에게 ‘카라(қара, 검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예를 들어 강인한 체력을 가진 낙타를 가리켜 ‘카라 나르(қара нар, 검은 단봉낙타)’라고 불렀다.
“카자흐 유목민들 사이에서 까마귀는 신성한 새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까마귀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조심스러웠죠. 특히 이승과 천상계를 잇는 존재로 인식되었기에, 가급적이면 이들을 건드리거나 사살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했습니다. 다만 일상 속에서 까마귀가 눈앞에 나타나거나 지붕 위에 앉는 경우는 매우 좋은 징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람들은 까마귀의 이러한 행동이 하늘이 자신들에게 가호를 내려주고 있는 증거라고 믿었죠. 이 밖에 살생해서는 안될 대상으로 여겨졌던 또다른 새로는 백조가 있습니다. 백조 또한 유목민들 사이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지요”.
한편 카자흐 유목민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았던 새는 바로 검독수리다. 사냥활동이 일상이었던 고대 카자흐인들의 생활 속에서 검독수리는 토끼와 여우, 심지어 이따금 늑대까지도 사냥하여 줄 정도로 이들의 수렵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동반자였다. 이들은 야생동물인 검독수리를 길들이기 위해 새끼일때부터 둥지에서 꺼내와 함께 생활하며 사냥 훈련을 시켜왔다. 아사노바 박사는 “이렇듯 강인한 힘과 민첩한 비행능력으로 자신들의 사냥활동을 돕는 검독수리를 카자흐 유목민들은 ‘힘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숭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스키타이 동물양식’에서의 유래
아사노바 박사는 “이처럼 카자흐 유목민들이 일상 속에서 접하던 동물들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나타낸 문화는 스키타이(사카)계 유목민 문화의 특성인 동물 양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스키타이 동물 양식에 기반한 카자흐 유목민들의 토테미즘 표현 방식은 주로 몸치장을 목적으로 하는 장신구들에 적용되었습니다. 또한 일상적으로 쓰이던 물건들을 비롯해 특히 장례식 용품, 안장, 의복의 여러 부위에도 동물의 형태를 본뜬 문양들이 새겨졌죠. 이 밖에 피부에 문신을 새기는 행위도 널리 행해졌습니다. 당시 스키타이계 유목민들은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동물 형태의 문양들을 피부에 새겨 넣었는데, 그렇게 그려 넣은 동물을 수호신으로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지요. 즉 당시의 타투는 일종의 부적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그녀의 해설에 따르면 오늘날까지 전해져 사용되고 있는 카자흐 전통 문양들은 바로 이 스키타이 동물양식에서 유래하였으되, 형상의 사실성 보다는 상징성·간소화가 강조된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카자흐 전통 문양들을 살펴보면 낙타를 상징하는 문양인 ‘투이예 타반(Туйе табан, 낙타의 발자국을 형상화)’, 양을 상징하는 문양인 ‘코쉬카르 무이으즈(Қошқар мүйіз, 양의 뿔을 형상화)’, 새를 상징하는 문양인 ‘쿠스무른(Құсмұрын, 새의 부리를 형상화)’ 등 간결한 형태의 패턴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아사노바 박사는 “당시 카자흐인들을 포함한 유라시아의 유목민들은 자신들이 영위하던 생활 전반에 걸쳐 큰 부분을 차지하던 동물들 외에도 대지, 물, 하늘 등 대자연을 구성하는 많은 사물들 또한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상기하면서 “유라시아 유목민족이 가졌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로 ‘자연 친화적’ 삶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대자연을 향한 조심스럽고 경외심 담긴 자세를 담아낸 ‘텡그리즘(동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 현상을 신격화한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의 다신교 신앙)’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