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인천 공항에서 카자흐스탄의 전 수도인 알마티까지 4천Km를 날아 가는데 6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1937년에 낯선 그곳으로 강제이주 당했던 분들을 생각하며 참았어요. 그분들은 훨씬 먼 거리를 화물열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두 달 가까이나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춥고 낯선 땅에 내려야 했어요.
더구나 강제이주를 전후하여, 일본의 간첩이라는 어이없는 혐의로 사형을 당했던 수많은 고려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분들이 감옥생활을 했고,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지요. 일본군 기병장교라는 특권을 버리고 망명하여 ‘백마를 탄 군신 김장군’으로 불리던 김경천 장군도 카라간다에서 그런 운명을 피하지 못했어요.
다음날 국내선으로 1시간 반 거리의 크질오르다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홍범도 장군님께 헌화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직접 마주하니, 장군님이 겪었던 파란만장한 인생이 떠오르고, 이제야 찾아왔다는 죄송함이 함께 들었어요. 작년에 장군님을 두고 국내에서 일어났던 소동 때문에 더욱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1951년에 건립했던 장군의 비석 표지판을 누가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현지에서 만난 고려인들 아무도 모르고 있었어요.
결국 독립운동가들의 유적지와 후손들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김동우 사진작가가 나서서, 철제 비문 앞뒤 한 쌍 중에 앞쪽 표지판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문 뒤쪽 표지판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다시 나온 철제 표지판을 우원식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모셔와서 홍범도기념사업회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전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존과 유지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전해 들었어요. 고려인 박물관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소련 정부가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킨 이유에는 1930년 대기근으로 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는 사태가 일어나자 이 지역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고려인들은 농사를 잘 짓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르다리아 강을 따라 고려인들의 콜호즈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크질오르다에는 홍범도 거리도 있었어요. 장군의 마지막 거주지는 거리 이름이 바뀌어 있었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장군이 관리인으로 근무했던 고려극장은 현재 지역을 위한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아쉬운 것은 이곳에 고려극장이 있었으며, 홍범도 장군이 말년에 일했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흔적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슈토베는 알마티에서 차량으로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지역인데, 고려인들이 처음 도착했던 곳이지요. 긴 여정 끝에 그들이 최초로 정착했던 바슈토베 언덕을 답사했습니다. 주변에 가릴 곳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움집을 짓고 추운 겨울을 지내야 했던 곳이지요. 지금은 공동묘지가 되어 버린 그 옆에 한카우호공원에 들어서 있습니다.
공원 내에는 나름 여러 의미를 두고 여러 조형물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 조성된 추모의벽에는 대표적인 항일애국지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감동을 더해 주었습니다. 한편으로 헬렌 박 선교사님이 선교공간 안에 설립한 기념관과 복원해 놓은 생활사 전시관도 인상이 깊었어요. 최근에 리모델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고려인들이 사막 같은 초원 한가운데에 내려서 토굴을 파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 3개월 안에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강제이주 시키라는, 소련공산당의 명령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혼란과 무질서의 결과로 극히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일이었어요. 그럼에도 고려인들은 성실하게 수로와 논을 만들고 벼를 심고, 삶의 터전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정말로 고통스럽고 힘든 시기였지만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가장 큰 성과를 올린 소수민족이 되었지요. 콜호즈와 고본지를 통해 성공한 고려인들은 유라시아 전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추모의 벽이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 남아 있는 빅토르 초이는, 크질오르다 출신인 아버지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출생했어요.
현재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전 인구의 0.6%에 불과하다고 들었습니다. 대부분 한국어를 할 줄 모르고, 많은 이들이 다른 민족과 혼인을 해서 외모도 다르며 이름도 대부분 러시아식을 쓰고 있어요. 이런 추세로 가다 보면 다음 세대에는 대부분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를 위해 고려인 박물관의 건립이 매우 시급하다고 느꼈어요.
카자흐스탄에서도 그동안 고려인 박물관의 건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 있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실현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는데요, 카자흐스탄에서 25년간이나 활동했던 김병학 관장님이 현지에 박물관이 건립되면 자료협조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즈베키스탄도 역시 고려인이 강제이주를 당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고려인 문화센터’가 건립되어 있어요. 2016년 타슈켄트 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2019년에 개관식이 열렸는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우즈베키스탄에 진행되었던 과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요.
강제이주 1세대들은 벌써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났고, 2세들도 고령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고 있던 기억과 유물들을 수집해서 보존하고, 전시해서 교육시키는 공간이 빨리 만들어져야 합니다. 특히 이분들이 생존해 있을 때, 구술을 남겨 두어야 합니다. 사실 지금도 이미 많이 늦은 상태이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습니다.
박물관 건립은 건축물 사업이 아니라 문화사업입니다.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서 라키비움의 형태를 가지고,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유물을 수집하고 잘 보존해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관이 되어야지요. 이는 단지 고려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과제이기도 하므로, 하루 빨리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고 박물관 건립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주진오(상명대 명예교수,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