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유럽 전역을 덮친 극심한 폭염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며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재차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카자흐스탄 각지에서도 연일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등 전례 없는 폭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40°C를 웃도는 폭염은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이례적인 현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극심한 더위는 지역사회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폭염 일수가 급격히 늘어나며 시민들의 생존과 일상을 위협하고 있지만, 도시 인프라와 관련 규정은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폭염이 중앙아시아의 도시 생활을 위협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한 배경을 짚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현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모색해 본다.
달아오르고 있는 중앙아시아··· 80여년 만에 깨진 알마티 폭염 기록
매년 여름 카자흐스탄 주요 언론은 폭염 경보와 주민 행동 요령을 알리는 헤드라인으로 도배된다. 그러나 올해의 열기는 차원이 다르다.
최근 카자흐스탄 기상청은 알마티 기온이 40°C를 기록하며 1945년 이후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지리적 특성상 덥고 건조한 여름은 익숙한 일상이었지만, 최근 관측되는 폭염은 기존의 양상을 벗어나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은행(WB)이 근래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반세기 동안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폭염의 발생 빈도가 크게 늘고 그 지속 기간도 대폭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연간 평균 21일에 불과했던 역내 고온 일수는 현재 51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가장 길었던 폭염 지속 기간 역시 기존 7일에서 16일로 대폭 늘었다. 지난 10년간 중앙아시아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약 2.2도 상승하며 전 세계 평균을 웃도는 빠른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카자흐스탄 내에서는 세메이, 페트로파블롭스크, 우랄스크 등 3개 도시가 가장 가파른 기온 상승 폭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문가들은 ‘극심한 폭염’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기온 기준은 없으며, 지역별 평년 기후를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일례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일반적인 여름 기온이 상대적으로 서늘한 카자흐스탄 북부에서 관측될 경우 '극심한 폭염'으로 분류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학계는 이상 기온 측정 시 단순 기온뿐만 아니라 지속 시간, 습도, 바람, 일조량 등 기상 요소를 종합 분석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한편 상기 보고서의 내용과 궤를 같이하며 역내 환경 전문가들 역시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티무르 이드리소프 중앙아시아 기후위기 전문가는 “최근 중앙아시아의 기온 상승은 단순한 체감이 아닌 장기 기상 관측 데이터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짚으면서 “역내 평균 기온 상승 속도가 세계 평균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아시아 도시들, 갈수록 더 극심한 폭염에 노출될 것’
문제는 단순히 기후가 더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기후변화의 규모와 심각성을 아직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비책 마련 역시 미비한 실정이라는 것이 기후위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2025년 세계은행(WB)이 발표한 보고서 ‘기후 변화에 대한 탄력성과 저탄소 미래를 위한 중앙아시아 도시 재생(Reimagining Central Asian Cities for a Resilient and Low-Carbon Future)’ 집필에 참여한 국제 전문가들은 “역내 국가들의 도시별 상태를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표준화되고 완전한 데이터의 부재는 기후 패턴과 추세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정책 수단을 개발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정확한 모니터링과 시급한 문제 지역 파악, 향후 예측을 위해 도시 정보 구축 체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보고서를 통해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스스로 문제를 자초하는 측면이 크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턱없이 부족한 도시 녹지 비율이다. 유럽의 1인당 평균 녹지 면적이 18.2m²에 달하는 반면, 중앙아시아 주요 도시의 평균은 7.6m²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카자흐스탄의 경우 1인당 평균 녹지 면적이 16.4m²로 역내 타 국가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여전히 유럽 평균에는 미치지 못한다.
보고서는 “난개발과 무질서한 도시 확장,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의 과도한 사용, 녹지 공간 부족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도시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 effect)’에 대한 취약성을 높이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라고 짚었다.
한편 중앙아시아지역환경센터(CAREC) 소속의 블라디미르 그레브네프 지역기후변화 전문가는 “공식 기온 데이터는 중앙아시아 도시 주민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환경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와 열을 품은 건물, 차량 열기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공식 수치보다 훨씬 높기에 극심한 폭염 문제를 논할 때 단순 관측치에만 의존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도시 내 ‘바람길’이 차단된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바람길은 공기 흐름이 도시 내부로 유입돼 자연 환기를 돕는 미개발지나 저층 건물 구역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경우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공기가 바람길을 통해 도심으로 들어와야 하지만, 무분별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들이 공기 순환을 막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열되고 오염된 공기가 도시에 오랫동안 잔류하면서 열섬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한 폭염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사회·경제적 재난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전력망과 교통, 보건 시스템에 과부하를 초래하고 경제 생산성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카자흐스탄을 덮친 폭염으로 3개 주에서 도로가 손상되는 피해가 발생했으며, 알마티와 아스타나 등 주요 도시들에서는 응급 호출 건수가 급증했다. 이웃 국가인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폭염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었다.
유럽의 폭염 대응, 무엇이 다른가
고온 현상은 비단 중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지하듯 최근 유럽 주요 도시들 역시 기후변화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오랜 기간 이탈리아에 거주해 온 티무르 이드리소프 기후위기 전문가는 “두 지역의 폭염 대응 방식에서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이드리소프 전문가는 “폭서 대응 측면에서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차이는 단순히 ‘어느 지역이 더 더운가’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폭염이라는 위기에 각국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에 있다. 유럽 국가들은 신속한 대응과 장기적 적응책에 투자할 자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많은 도시들에서 폭염 대책이 도시 정책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도시의 기후변화 적응 조치에 반드시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신규 개발을 이유로 기존 녹지를 훼손하지 않고, 아울러 친환경적인 타협점을 찾는 것만으로도 폭염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드리소프 전문가는 “일부 유럽 도시의 경우 폭염 기간 도심 곳곳에 에어컨이 설치된 임시 쉼터를 조성해 주민과 관광객의 온열질환을 예방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해외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유럽이 모든 면에서 유리한 것은 아니다. 건축물 보존 규제가 엄격하고 제도적 절차가 까다로워 개별 가구의 에어컨 설치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에어컨 보유율이 낮은 대다수 유럽인은 여름철 더위를 중앙아시아의 주민들보다 더 힘들게 견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럽 지자체들의 선제적 대응 체계는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예가 도심 온도를 낮추기 위한 ‘그림자 정책(Shadow policy)’이다. 이를 통해 차양막과 특수 구조물, 나무 식재 등을 활용하여 도심 곳곳에 그늘 공간을 집중적으로 조성함과 더불어 녹지 면적을 확대하고 가능한 구역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철거해 토양과 식생을 복원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반면 중앙아시아의 현주소는 여전히 아쉬움을 남긴다. 이드리소프 전문가는 “안타깝게도 중앙아시아 도시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수많은 기후 대책과 정책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기후 적응은커녕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정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땜질 처방은 그만’ ··· 도시들의 폭염 대응 실태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
카자흐스탄 주요 도시들이 폭염과 기후위기에 맞서 응급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단순 단기 처방을 넘어선 근본적인 도시 인프라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알마티 시는 대형 수목 중심의 도심 녹지 공간을 매년 확대해 오는 2030년까지 환경 체질을 개선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에만 14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상 고온에 대응하는 즉각적인 조치도 병행 중이다. 매일 16개 분대의 특수 장비와 500대 이상의 장비를 128개 이상 도로 및 정류장에 동원해 노면 살수와 공중 분무, 세척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녹지대 용수 공급 역시 강화해 자동 살수 시스템 적용 면적을 200만㎡ 이상으로 늘렸고, 외곽 구역에는 120대 이상의 장비와 모터펌프 200여 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임시방편식 살수 작업만으로는 기후 적응 한계가 명확하다”고 평가한다. 블라디미르 그레브네프 기후위기 전문가는 “가열된 아스팔트 위 살수는 물이 금방 증발해 일시적 효과만 가져다 줄 뿐”이라고 지적하며 “충분한 도심 녹화 사업 및 체계적인 살수 시스템과 결합해야 비로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울러 그는 “녹화 사업이 도심 기온을 낮추는 근본책인 것은 맞지만, 식재된 어린 나무가 수관을 형성해 그늘을 만들기까지는 10~15년이 걸린다”며, 단기 살수와 장기 녹화, 인프라 현대화 및 폭염 위험을 고려한 도시 계획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폭염 적응을 도시 계획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세계은행(WB)의 보고서 내용과도 궤를 같이한다. 도시 기반시설의 현대화와 기존 녹지 보존을 병행하는 한편, 폭염이 가져올 위협을 도시 설계에 근본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 사회의 안일한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티무르 이드리소프 중앙아시아 기후위기 전문가는 “유럽 일부 도시들은 폭염을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비상 상황으로 보고 조기‧적시에 학교와 사무실 문을 닫는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40°C를 육박하는 기온에도 ‘덥지만 견딜만한 일’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풍조는 우리가 기후 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의 파급력을 여전히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한편 당장 눈앞에 다가온 폭염보다 더 큰 우려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수자원 재앙’의 징후다. 이상기후의 여파가 머지않은 미래에 중앙아시아 전역의 용수 부족이라는 치명적인 안보 위기로 가시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라시아개발은행(EDB)은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과 역내 협력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전역이 오는 2050년까지 ‘심각한 물 기근 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연간 2,000㎥ 수준인 1인당 이용 가능 수자원량이 1,000㎥ 미만으로 급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역내 기후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닌, 각국의 생존과 직결된 현실적인 안보 과제로 부상했다고 강조한다. 국경을 넘어 흐르는 수자원의 특성상, 중앙아시아 국가 간의 긴밀한 협력 체계 구축과 선제적인 수자원 관리 정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