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현(한국, 전 거창대성고 교사)
“유월 보름에
아아, 벼랑에 버린 빗 같아라
돌아보실 임을
조금씩 좇아갑니다
아으 동동다리”
- 고려가요 <동동>에서
1년 열두 달의 세시풍속을 노래한 <동동>은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인데 고려시대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조선시대에 문자로 정착되었다. 임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를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였고, 후렴구(아으 동동다리)를 사용하였다. 이 노래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그 빗을 멀리 던져 액땜을 하는 음력 유월 보름 유두날 풍속이 반영되어 있다.
오는 7월 20일은 음력으로는 6월 보름(15일),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전통적인 명절인 유두날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옛날에는 음력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옛날에는 음력을 사용했다. 음력 6월 15일은 유두 혹은 유둣날이라 불리는 명절날이었다. 올해는 양력 7월 20일이 음력 6월 15일 유둣날이다.
유두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준말에서 나왔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뜻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선택하는 까닭은 동쪽이 푸른색을 상징하며, 해가 뜨는 곳으로 양기가 가장 왕성한 길상의 방위이기 때문이다. 유두는 소두(梳頭) · 수두(水頭)라고도 표기하였다. 소두란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며,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 곧 물맞이라는 뜻인데, 이는 모두 유둣날의 행사와 관련이 있다.
유두는 신라 때부터 있어 온 명절로 알려져 있다. 첫머리에서 예를 든 <동동>에도 유두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유두가 고려시대에는 이미 보편적인 명절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두는 물과 관련이 깊은 명절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였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빗은 다음에 그 빗을 벼랑에 던져버리면 그 해의 액운을 없애준다고 믿었다. 물은 부정(不淨)을 씻는 것이다. 유두날 놀이 중에 탁족놀이가 있는데, 이 역시 단순히 발을 씻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씻는 것,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산이나 계곡을 찾아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밑에서 물맞이를 했다. 약수터에서 노구메를 드리는 일도 많았다. 노구는 놋쇠로 만든 작은 솥, 메는 밥을 의미하므로 노구메 드린다는 것은 노구솥에 밥을 지어 올리며 기원한다는 뜻이다.
유두날 가정에 따라 유두천신을 했다. 천신이란 계절에 따라 새로 나는 각종 음식물을 먼저 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유두 무렵에는 참외, 수박 같은 과일이 나기 시작하므로 햇과일과 함께 밀로 만든 국수, 또는 밀전병을 조상에게 제물로 올려 유두 제사를 지냈다.
이날 농촌에서는 떡을 만들고 참외나 생선 등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논의 물꼬와 밭 가운데에 차려놓고, 농업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면서 고사(유두제)를 지냈다.
내 고향 동네에서는 떡을 물꼬에 놓고 물이 새지 않고 농사가 잘 되기를 농업신에게 빌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은 이 떡들을 찾아 먹기 위하여 여기저기 논밭을 찾아 다니기도 했다.
유두를 각별한 명절로 여겨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이때에는 집에서 특별히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쌀과 양초를 가지고 절에 가서 직접 밥을 지어 올리고 불을 밝힌 뒤 불공을 드렸다.
음력 유월 중순쯤은 더위가 밀려오는 때로 이날은 일가 친지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맑은 시내나 산간에 있는 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뒤, 가지고 간 음식을 먹으면서 서늘하게 하루를 지냈다. 이것을 유두잔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에 질병을 물리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요컨대 유두는 새로운 과일이 나고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에 맑은 시내나 폭포에 가서 몸을 씻고, 조상과 농신에게 정갈한 음식물로 제를 지내며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햇과일과 집에서 장만한 여러 음식들을 먹으며 고된 농사일로 지친 몸을 풀고 다가올 본격적인 무더위를 이겨내고자 한, 한민족의 오랜 풍속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두도 잊혀져 가는 풍속이 되고 말았다. 의례적인 요소는 그 전승이 단절되었으며, 물맞이 풍속은 여름 휴가철 바캉스로 바뀌고 말았다.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부채 하나로 더위를 식히고, 시냇가나 폭포를 찾아가서 머리 감고 목욕했던 그 옛날의 피서! 낭만과 멋이 있었다. 지금 에어컨 바람이 아무리 시원하더라도 낭만과 멋은 없지 않은가? 그때로 돌아가 낭만과 멋의 피서를 즐겨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