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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쿠츠크의 고려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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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쿠츠크의 고려인들
      야쿠츠크의 고려인들
      10.02.2025
      예고로바-태 발레리아 (Валерия Егорова-Тхэ)는 야쿠츠크 (러시아 극동부 사하 공화국/야쿠티야의 수도)에 위치한 '사하-고려인들' 사회단체를 대표하고 있다. 발레리아는 러시아기자동맹 회원이며, 책 <사하 케리에이데레 – 우툼 타르듸이타> (Саха кэриэйдэрэ – утум тардыыта) / <사하-고려인 – 후계성의 실마리> (2020년) 및 <야쿠츠크 고려인의 역사> (2022년)의 저자이자 편집자이다.
      발레리아는 이 척박한 땅을 사랑하게 된 이유, 그리고 고려인들이 지역 발전에 기여한 공헌에 대해 이야기했다.

      - 언제 그리고 왜 고려인의 뿌리를 연구하고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하셨나요?
      - 2011 년, 나는 어머니의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은 할아버지 태명혼 (Тхэ Мен Хон)이 집단농장에서 채소를 재배하던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살아 계시던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조국전쟁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고려인들은 헌신적으로 일했어. 그들에게 기념비를 세워야 해. 그들의 노동 덕분에 수천 명의 여성, 아이들, 노인들이 굶주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이 말이 나를 깊이 격동시켰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한국에 남겨진 할아버지의 두 아들을 떠올려 보곤 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그러던 중, 지난 해 한국에 거주하는 한 지인이 할아버지의 아들 태민손 (Тхэ Мин Сон, 태극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함)에 대한 기록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자이자 항일투사로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체포되었으며, 감옥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순국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야쿠츠크에서 태어난 아들 니콜라이에게 태극 (Тхэ Гык)의 이름을 물려주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태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결국 저는 책을 집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야쿠츠크에 고려인 기념비가 있나요?
      - 네, 한갈라스 지역 '토이온 아린' 면에서는, 집단농장 '10월 (혁명)의 길을 따라' (По стопам Октября)에서 뛰어난 농업기술을 선보인 김근호 (Ким Кын Хо, 1870~1961년) 선생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 기념비는 대조국전쟁 당시 김근호 선생이 수확한 농작물로 기근에 허덕이던 마을 주민들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많습니다. 고려인들은 야쿠츠크에서 전례없는 수확을 길러내며,  후방에 남은 수많은 노약자를 구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진정한 개척자들이었으며, 근면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 출판한 책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어떻게 집필하셨나요?
      - 두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하나하나 꾸준히 모았습니다. 첫 번째 책 <사하 케리에이데레 – 우툼 타르듸이타>  (사하-고려인 – 후계성의 실마리)>는 야쿠트어로 출판되었으며, 두 번째 책 <야쿠츠크 고려인의 역사>는 러시아어와 야쿠트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들은 고려인 후손들의 증언, 국립 문서 보관소의 자료, 학술 논문, 통계 자료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특히, 사하 (야쿠티야) 공화국의 야쿠츠크 국립 문서보관소에 26년 동안 보관되었던 이바노프 니콜라이 박사 (이르쿠트스크 국립대)의 연구 논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 소중한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도와준 연구소 관계자분들에게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첫 번째 책은 사람들이 전선에서만 아니라 후방에서도 헌신적 노동으로 승리의 날을 앞당긴 대조국전쟁 (제2차세계대전)  승전75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되었습니다. 고려인들도 이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야쿠티야 여성들과 결혼하여 튼튼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인구 증가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수민족에게 있어 인구 증가는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며, 특히 전쟁과 같은 격변의 시기에는 더욱 의미 있는 요소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야쿠티야 전역 마을에서 김씨, 정씨, 장씨, 신씨, 태씨, 홍씨, 임씨, 유씨 기타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쿠츠크 고려인의 역사> 책은 야쿠티야 소베트사회주의자치공화국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되었는데 논리적으로 첫 번째 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 책은 '무궁화' 고려인 협회와 '사하-고려인' 협회가 공동으로 출판하였으며, 각 단체마다 저마다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어와 야쿠트어로 출판된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고려인들의 공헌은 단순히 농업 분야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소베트정권수립, 야쿠티야 금광 산업의 형성과 발전에도 고려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고려인들은 어떻게 야쿠츠크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나요?
      - 1937~1938년 소련의 대숙청 (대탄압) 시기, 고려인과 중국인들은 비교적 평온하던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습니다. 당시 소련 정부는 자립 국가로서의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에 있었으며, 사회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고려인들은 주로 세 차례에 걸쳐 야쿠츠크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의 이주 제외). 
      고려인들이 야쿠츠크에 대규모로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1870년대로 추정됩니다. 여러가지 방도로 고려인들이 10월 혁면 (1917년) 전에도 야쿠티야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극동에서 야쿠티야로 들어오는 길이 두 개가 있었는데 아얀스키와 오호츠키 (동부 바닷길) 통로였습니다. 조선인들은 이 경로를 따라 행운과 번영을 찾아 야쿠티야로 이동했습니다. 이주 초기, 우리 조상들은 주로 모피 및 매머드 뼈를 찾기 위해 이 지역을 찾아 왔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흑담비 가죽은 엄청난 가치를 지녔으며, 수많은 “행운을 찾는 신사들”은 이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미지의 땅으로 떠났습니다. 또한, 중국 상인들과 물물교환을 하는 환전상들도 조선인 이주자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차 (茶), 담배, 비단 등을 모피와 교환하는 상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인들은 한방 치료법 (약초, 뿌리, 자연에서 얻은 약재 등)에도 능숙했으며,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야쿠츠크 밀림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고려인들의 제2차 이주는 1905년 러일전쟁과 연관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보호국으로 만들면서 많은 조선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망명자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완전히 병합한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국경을 넘었습니다. 당시 국경 지대에 형성된 고려인 마을 (한인 거주지)에서는 조선애국자들이 항일 게릴라 조직을 경성하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예를 들어, 1908년 한 해 동안 고려인 항일군은 일본군을 1,400 차례 공격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고려인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고려인 이주자들 사이에서도 사상적 분열이 생겼지만, 대다수는 제국주의 반대 투쟁을 한반도의 민족 해방 운동과 연결시켜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극동 지역에서 소련 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 많은 고려인들이 참여했습니다. 심지어 부유한 고려인들조차 소련 정부를 지지했습니다. 
      이 시기, 러시아 영토에는 한반도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수많은 고려인 애국자들이 많았습니다.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톡과 아무르 주에서 일부러 한인거주지를 습격하여 많은 한인들을 학살했거나 체포하여 감금하였습니다. 때문에 한인들이 다른 곳에서 살 길을 찾은 것이 당연한 일이고 당시 많은 한인들이 야쿠츠크로 왔습니다. 

      많은 고려인들은 네스토르 칼란다라슈빌리 (Нестор Каландарашвили) 부대와 함께 야쿠츠크로 이주했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1920년 칼란다라슈빌리는 극동 지역에서 고려인 항일 게릴라 부대를 지휘했습니다. 1921년12월, 그는 소련 붉은군 제2북부 전선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야쿠츠크로 이동했습니다. 그의 부대에는 다양한 민족 출신의 병사들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많은 고려인 항일 전사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22년 결정적인 전투에서 한인 국제주의 전사들이 적극적으로 싸웠으며, 그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야쿠츠크 지역에 남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1920년 오호츠크에서 항일 게릴라 부대가 철수하며 450명의 병사가 야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이들 중 160명이 고려인이었으며, 일부는 이르쿠츠크로 이동했지만 많은 고려인들이 야쿠츠크에 정착했습니다. 고려인 국제주의자들은 자발적으로 현지 주둔 부대에 합류했으며, 대다수는 야쿠츠크 중앙 지역의 마을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했습니다. 

      야쿠츠크 지역에 금광이 발견되며서 첫 채굴자들이 보다이보 (Бодайбо)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1914년, (주) “렌스코예 금광 회사” (АО Ленское золотопромышленное товарищество)는 조선과 만주의 금광 노동자들을 야쿠츠크 금광 개발을 위해 모집했습니다. 이후, 많은 중국인과 한인 채굴자들이 야쿠츠크로 유입되었습니다. 특히 알단 (Алдан) 금광은 1923년11월에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습니다. 초창기 2년 동안은 거의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전체 채굴자의 64%가 한인과 중국인이었음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한인들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작업을 맡았으며, 12~13시간의 노동 강도를 감내하며, 가장 어려운 작업도 해내는 강인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이주 경로를 통해 야쿠츠크까지 온 많은 한인들에게, 이곳은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야쿠츠크의 원주민인 사하족, 에벤족, 에벤키족과 함께 살아가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며, 우리의 아버지와 조부모들이 걸어온 길입니다.

      - 북부 지역에서는 천연모피코트가 일상적인 겨울 외투인가요? 야쿠츠크에 사는 고려인 여성은 평생 몇 벌의 모피 코트를 입나요?
      - 글쎼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현대 가죽가공 기술로 만든 모피는 야쿠츠크의 혹한을 견디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오리털 패딩이 훨씬 더 따뜻하고 실용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선호합니다.

      - 가장 좋아하는 명절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 저는 야쿠츠크의 전통 설날 ‘으스아흐’ (Ысыах)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명절은 하지 (夏至) 기간 동안 열리며,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단결의 명절이기 때문입니다.

      김 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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