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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초원, 그곳에 도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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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고대의 초원, 그곳에 도시가 있었다
      19.09.2026

      옛 카자흐 땅에 꽃피었던 도시 문명, 유목과 정착이 얽혀 만든 흥망의 역사


      카자흐스탄 남부(現 튀르키스탄 주)에 존재했던 고대도시 ‘오트라르’ 유적지

      카자흐스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 위를 오가는 유목민의 모습이다. 카자흐 땅을 유목과 초원의 역사로 이해하는 시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익숙하다. 실제 역사에서 유목이 차지한 비중이 컸던 데다, 오랫동안 이 지역의 역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의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유목 생활과 나란히 정착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으며, 다양한 형태의 정착지가 등장했다. 고대와 중세에 이르러서는 도시도 성장했다. 카자흐 땅은 유목민만의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초원과 도시, 유목과 정착은 서로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 교역과 정치적 관계를 통해 오랫동안 연결되어 있었다.

      유목 생활과 공존했던 정착 문화와 도시의 기원부터, 이들이 성장하고 쇠퇴한 과정까지 카자흐 땅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카자흐 땅에 초기 도시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형성되었던 정착 취락 ‘보타이’ 유적 (카자흐스탄 북부)

      카자흐스탄의 고대와 중세에는 유목 생활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정착지가 존재했다.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북부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이미 방어 시설을 갖춘 정착지들이 등장했으며, 고대와 중세에 이르러 도시도 이 지역의 경제·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흐메트 바이투르시눌리 코스타나이 주립대 소속의 세릭잔 이스마일로프 역사학 교수는 중앙아시아 일대에는 아케메네스 시대인 기원전 6~5세기부터 도시 정착지가 존재했으며, 고대부터 도시가 경제와 정치의 중요한 중심지로 발전했다고 설명하면서 “카자흐스탄 영토에서도 이러한 광역적인 도시 문화의 흐름과 맞물려 다양한 형태의 정착지와 도시가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초기 정착의 대표적인 사례가 카자흐스탄 북부의 보타이(Ботай) 유적이다. 고전적 형태의 도시가 출현하기 훨씬 전인 기원전 4천년기 중후반, 이곳에서는 움집 형태의 고정식 주거지로 이루어진 정착 취락이 형성되었다. 보타이 주민들은 말을 가축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토기에서 말젖과 관련된 지방 잔류물이 확인되어 이 시기에 말의 관리와 젖의 이용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어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2천년기에는 카자흐스탄 중부를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안드로노보 계열 문화(Andronovo cultural complex)와 그 지역적 변형들이 발달했다. 켄트(Кент)와 므르쥑(Мыржық)을 비롯한 정착지와 주변 유적에서는 금속 생산과 관련된 흔적이 확인되며, 이 지역에서 정착 생활과 금속 가공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기원전 3천년기 말부터 2천년기 전반에 걸쳐 남부 우랄과 북부 카자흐스탄 일대에는 신타쉬타(Синташта)·페트로프카(Петровка) 계열의 요새(要塞) 취락들이 분포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이들을 현대적인 의미의 ‘도시’로 보기보다는 성벽과 해자를 갖춘 대규모 요새형 정착지로 설명한다. 이 취락들은 규칙적으로 배치된 주거지와 금속 생산 시설 등 복잡한 공간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며, 일부에서는 원형 또는 원형에 가까운 평면과 내부 통로, 도랑·배수와 관련된 시설도 확인된다. 이러한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생산시설을 바탕으로 일부 연구자들은 이곳을 도시적 기능이나 조직이 나타난 초기 단계, 즉 ‘원시도시적’ 중심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다만 이를 현대적 의미의 도시와 동일시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도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물’이었다. 다른 고대 문명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의 정착지 역시 강 유역과 오아시스, 농경에 적합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이나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에서 농경과 도시가 발달했듯, 중앙아시아에서도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를 비롯한 주요 강이 농업과 정착 생활의 기반이 됐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시르다리야 유역과 일리강을 포함한 제티수 지역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남부 카자흐스탄의 오트라르 오아시스는 시르다리야와 아리스강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됐으며 관개농업과 도시의 성장도 강의 수자원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이스마일로프 교수는 “강과 강 사이의 교차 지역은 농경과 도시 발전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카자흐스탄 영토는 이러한 문명권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기에 이 지역의 도시 역사는 곧 우리의 역사”라고 강조한다.

      실크로드가 가져온 도시 발전의 전환점

      기존 도시의 성장과 새로운 교역 거점의 발달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 것은 실크로드였다.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여러 교역로는 시대에 따라 경로가 달라지면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이란·중동, 지중해 세계 등을 연결했다. 장거리 교역이 확대되면서 상인과 여행자를 위한 숙박·보급시설과 교역 거점 등 이를 뒷받침하는 기반시설의 필요성 또한 커졌다.

      도시와 ‘카라반사라이(Kārvānsarā, 페르시아어로 ‘상인과 여행자를 위한 숙소’를 의미)’는 이러한 교역을 뒷받침하는 주요 거점으로 기능했다. 카라반사라이는 상인과 여행자들이 쉬고 물과 식량을 확보하며 물품을 교환·거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특히 건조한 중앙아시아에서는 교역로를 따라 물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과 정착지가 함께 발달했으며, 일부 카라반사라이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새로운 정착지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스마일로프 역사학자는 “카라반이 안전하게 이동하려면 거점 도시와 카라반사라이가 필요했다. 규모가 큰 도시 주변에는 농경을 통해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는 배후 농촌 정착지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도시 자체도 다기능적 공간이었다. 단순히 사람이 거주하는 곳을 넘어 농업 생산물을 집산하고 수공업과 무역이 이루어지는 한편, 행정·군사적 거점으로도 기능했다. 성벽과 성채를 갖춘 도시들은 외부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 거점 역할도 수행했다. 카자흐스탄 남부의 오트라르(Отрар)는 이처럼 농업 지역을 배후에 두면서 교역·행정·수공업의 중심지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돌궐 제국과 무역로의 확장

      도시 문화는 돌궐 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발전 국면을 맞았다. 6세기 중반 등장한 돌궐 제국(Göktürk/괵튀르크 카간국)은 동쪽의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서방 초원에 이르는 광대한 정치·교역 공간을 형성했다. 이러한 정치적 통합은 동서 교역망의 확대와 재편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소그드인(5~8세기 중앙아시아의 주요 장거리 교역 상인들)들은 돌궐의 보호와 협력을 바탕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광대한 지역이 하나의 정치적 세력권 아래 연결되면서 일부 교역로의 안전성이 높아졌고, 장거리 교역을 이어가는 데 유리한 환경도 조성됐다. 소그드 상인들은 돌궐의 상업·외교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6세기 후반에는 돌궐과 비잔티움 사이의 직접적인 교역 관계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스마일로프 교수는 “거대 제국의 존재는 중국에서 유럽으로, 혹은 중동과 이란으로 이어지는 물자 이동의 위험과 손실을 줄여주었다. 통일된 정치 체제 덕분에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을 지나는 대체 무역로가 활성화되었고, 경로를 따라 도시들도 함께 성장했다”고 해설한다.

      돌궐 시대의 변화는 카자흐스탄 지역의 도시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제티수(Жетісу)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동부 지역에서는 소그드 상인과 정착민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교역망과 도시·정착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됐다. 당시 도시들은 단순한 교역 거점을 넘어 수공업과 농업, 행정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지역 중심지로 발전해갔다.

      남부뿐 아니라 북·동부에도 도시 존재

      중세 도시가 주로 카자흐스탄 남부와 제티수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세의 아랍·페르시아계 지리서와 고고학 자료를 보면 북부와 동부를 비롯한 보다 넓은 지역에서도 도시와 도시적 정착지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키막 카간국(Қимақ қағандығы)이다. 12세기 아랍계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키막의 영토에 16개의 도시가 있었다고 기록했으며, 이마키야(Имакия)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언급했다. 이들 도시 가운데 일부는 이르티시강 유역을 비롯한 키막 세력권에 분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록과 고고학 자료는 적어도 9~11세기 키막 세력권에서도 도시와 정착지, 교역 거점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르티시 유역은 유목 목축과 농업, 교역이 연결되는 공간이었으며, 도시적 정착이 유목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중세 카자흐스탄의 사회를 ‘유목 초원’과 ‘정착 도시’라는 두 영역으로 단순하게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목 문화와 도시 문화는 서로 단절된 별개의 체계라기보다 교역과 정치적 관계를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르다리야강 도시들과 금장한국(金帳汗國)의 번영

      카자흐스탄 영토의 중세 도시와 정착지 수는 고고학 조사가 진행되면서 계속 보완되고 있다. 남부에 위치한 타라즈(Тараз)는 2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고대 도시이며, 튀르키스탄(Түркістан) 역시 중세 중앙아시아의 중요한 도시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시르다리야강 연안의 시가낙(Сығанақ) 같은 도시들은 시르다리야 유역의 농경·도시권과 북쪽의 초원 지대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시가낙은 킵차크계 정치체와 아크 오르다, 카자흐 칸국 등 여러 정치 세력의 지배 아래 발전했고, 실크로드를 따라 교역과 수공업도 발달했다.

      이어 몽골 제국과 그 서방의 주요 후계 국가인 금장한국(金帳汗國, 킵차크 칸국) 시대에는 기존 도시가 번성하고 새로운 도시도 건설되면서 도시화가 크게 진전됐다. 아트라우 지역의 사라이쉭(Сарайшық)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우랄강 유역의 교역 거점이자 정치·수공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몽골 제국의 광범위한 정치적 통합과 교역망은 장거리 교역을 뒷받침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역참과 교통망이 정비되면서 광대한 지역을 연결하는 교역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변화는 기존 도시의 성장과 새로운 교역 거점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목 지배층 역시 도시와 초원이라는 두 공간을 병행해 활용했다. 돌궐 시대의 경우 서돌궐 카간국의 주요 중심지였던 수야브(Suyab)와 카간(돌궐의 최고 통치자)의 여름 궁정이었던 밍불락(Миң-Булак/Мыңбұлақ)은 이러한 정치·도시 공간의 결합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유목 사회와 정착 도시가 서로 분리된 체계가 아니라 정치와 교역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들 도시는 어떻게 사라졌을까? 아미르 티무르의 원정과 무역로의 이동

      그렇다면 이토록 번성했던 중세 도시들은 왜 쇠퇴했을까? 도시의 쇠퇴는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정치적 분열과 전쟁, 교역로의 재편, 주변 지역의 경제적 변화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일부 도시의 중요성이 점차 약화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의 정치·군사적 격변은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 1336-1405)와 금장한국의 톡타미시 칸 사이의 전쟁은 금장한국의 주요 도시와 교역망에 큰 타격을 입혔다. 1395년 티무르는 톡타미시를 격파한 뒤 볼가강 하류의 사라이와 아스트라한 등 주요 도시를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금장한국의 경제적·상업적 기반도 크게 약화됐다. 그러나 티무르의 원정을 곧바로 중앙아시아 전체 도시의 몰락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티무르는 도시를 파괴하는 한편 자신의 제국에 필요한 교역로를 확보하고 재편하려 했으며, 그의 지배 아래에서도 사마르칸트와 헤라트 등을 중심으로 장거리 교역은 계속됐다.

      따라서 이 시기의 변화는 ‘도시와 무역의 완전한 단절’이라기보다 기존 교역망과 도시의 중심축이 재편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여기에 15~16세기부터 본격화된 해상 교역의 확대도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 상인과 국가들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으로 진출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로의 중요성이 커졌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육상 실크로드의 종말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중앙아시아의 카라반 교역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됐으며, 연구자들은 해상 교역과의 경쟁뿐 아니라 정치적 분열과 교역 환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고 본다.

      결국 중세 도시의 쇠퇴는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하기보다 장기간에 걸친 교역망의 재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쟁으로 특정 도시와 교역 거점이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교역은 새로운 경로로 이동했고 정치적 환경에 따라 도시의 중심지도 이동했다. 실크로드 역시 하나의 고정된 길이 아니라 여러 육상·해상 교역로가 연결된 네트워크였기 때문에, 한 노선의 쇠퇴가 모든 도시가 동시에 몰락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현대판 실크로드로의 부활?

      과거 실크로드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 물류망의 주요 경유지 가운데 하나이며,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카스피해를 거쳐 코카서스·튀르키예·유럽으로 이어지는 중간회랑(Trans-Caspian International Transport Route) 등이 동서 교통망을 구성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대의 물류망을 고대 실크로드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교통수단과 경제 구조, 국가 체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따라 도시와 물류 거점이 성장한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실크로드와 비교해볼 수 있다.

      결국 사라진 옛 카자흐 땅의 도시들은 그저 한 시대의 흥망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도시의 성쇠가 정치적 안정, 교역로의 변화, 물류 환경, 주변 지역과의 경제적 관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을 통과하는 새로운 동서 물류망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도시와 지역 경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13~18세기 존재했던 중세도시 ‘사우란’ 유적.


      5~13세기 경 존재했던 사우란의 전신, '카라토베 사우란(Қаратөбе-Сауран)' 유적.
      중세에 세워진 ‘사우란’ 유적으로부터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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