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첨단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은 전세계적으로 청년 및 청소년층 사이에서 심각한 중독·과의존증을 불러일으키며 단순히 가족 간, 세대 간 소통 단절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사회적·정서적 고립감과 우울장애까지 초래하고 해마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 인구의 확산과 자살자 수의 급증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 내에서도 이러한 글로벌 추세와 같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 문제는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심각한 수준인데, 실제로 유니세프(UNICEF)는 이미 2010년대부터 카자흐스탄이 타 개발 도상국들 대비 전 연령대에 걸친 자살률이 높으며 그 중에서도 5세~14세 사이의 아동 및 학생들과 15세~24세 사이의 청소년·청년층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는 비율이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경고한 바 있다. 또한 작년에는 9월 중순부터 말까지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알마티 지역을 중심으로만 무려 10명 이상의 미성년자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으며, 그 배경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특정 온라인 모바일 게임들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되어 뒤 늦게나마 스마트 기기 및 디지털 플랫폼의 유해성으로부터 청소년층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바 있다.
이처럼 날로 부각되고 있는 미성년자들의 스마트 기기 및 디지털 환경에 대한 과의존증 문제를 카자흐스탄 사회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또 해결책으로는 어떤 방안을 제시하고 있을까? 지난 호에 이어 알마즈 샤르만 의학박사가 현지 매체 Tengrinews에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 왜 카자흐스탄의 아이들은 스마트 기기 화면 안에서 자라고 있나(Цифровое одиночество. Почему казахстанские дети растут в экранах)>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칼럼을 우리말로 옮겨 싣는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전통적으로 누려왔던 ‘어린시절’은 이제 집 앞 골목을 떠나 스마트폰 화면 안으로, 틱톡 등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속으로 터를 옮겼다. 현실 속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 ‘살아있는 진짜’ 소통, 그리고 수 백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카자흐 땅 사회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고유의 공동체 문화 그 자체마저 앗아가 버리며.”
(이전 호에 이어)
이미 통계로 나타나고 있는 우려스러운 현실
유니세프(UNICEF)는 이미 지난 2014년 카자흐스탄이 자국 청소년층의 정신건강 지표와 관련하여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유니세프 측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이 시기 카자흐스탄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국가 명단에 올라 있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는 매년 수백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으며, 그 시도를 하는 청소년의 수는 그보다 더욱 많다.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세계보건기구(WHO)와 카자흐스탄 국립 공중보건센터가 공동으로 진행하여 발표한 ‘HBSC(The Health Behaviour in School-Aged Children, 세계 각국의 11·13·15세 학령기 아동/청소년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행동 조사)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근래 카자흐스탄 청소년들 사이에서 불안장애 및 우울장애, 고립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비율이 과거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증상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의 생활습관을 분석한 결과 하루 중 ‘신체활동 없이 앉아만 있는’ 자세로 보내는 시간이 6~8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 ▲51.3%가 컴퓨터 또는 기타 전자기기를 통한 게임에 몰두하며 ▲56.6%는 SNS 상에서의 소통에 ▲30.5%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활동으로 이 같은 생활을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근래 4년간 ‘게임 중독’ 상태에 빠진 청소년의 수도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이미 인류가 겪었던 과정
역사를 훑다 보면 우리는 오늘날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공동체의 와해·인간관계 붕괴의 위기가 사실 전례 없는 초유의 현상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 20세기 초, 전세계적 산업화 과정 속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이주민 유입으로 야기된 도시 인구의 급증은 그 전까지 인류가 보편적으로 유지해왔던 전통적인 공동체들을 붕괴시켰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내 동아리·동호회, 스포츠 모임 등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찾아냈다.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사회에도 이처럼 새로운 앞마당 내지는 동네평상 역할을 하여 줄 대체제가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들이 어느때고 찾아와 경험을 쌓을 수 있고 또래들과 친목을 다지며 진정한 –SNS상에서처럼 ‘좋아요’ 유도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소통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위험천만’ 화성 탐사와도 같은 디지털·온라인 세상
디지털 시대의 고독과 그 해악은 비단 카자흐스탄 뿐 아니라 오늘날 인류 전체가 직면해 있는 도전과제다. 저명한 사회·아동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 뉴욕대학교 교수는 이 문제를 ‘화성 탐사’에 빗대어 꼬집는다.
“당신의 10살짜리 딸아이가 화성 탐사 여행에 초청받았다고 상상해보세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이 끝없이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여정 속으로 말입니다. 당신이라면 자신의 딸이 그런 여행길에 오르는 것을 선뜻 허락하겠습니까?
오늘날 구축되어 있는 온라인 사회망은 바로 그 화성 탐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현대의 디지털 환경이 가진 유해성, 특히 이것과 아동·청소년들의 불안 및 우울장애 발생의 상관관계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이 문제와 관련해 흐린 눈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유·소년기를 포함한 성장 과정에 있어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필수 도구가 되어버린 지금, 청소년들 사이에서 불안·우울장애 발생률이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으로 폭증한 것은 새삼 놀라울 일도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부모, 교사,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도래한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허나 그렇다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이 계속해서 청소년들에게 해악을 끼치도록 속수무책으로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 우선 부모들은 자녀에게 일련의 규칙을 정해 주어야 한다. 스크린 타임(스마트 기기를 일정 시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으로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량을 통제하는 한편 즐거운 분위기의 저녁식사, 산책, 게임 등 스마트 기기 없이 온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가정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 학교들에서는 단순히 교과 위주의 교육을 실시하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더 나아가 교내 동아리 활동과 스포츠, 예술 관련 모임 등을 통해 학우들 간에 원활한 소통 및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장려해야 한다.
• 정부와 사회는 청소년층의 정신건강 보호 및 증진을 향한 임무에 더욱 진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상시운영 상담채널 및 교내 상주 상담심리사 등의 지원을 비롯해 실질적이며 포괄적인 청소년 상담·복지 프로그램이 시행될 필요가 있다.
• 성인들은 청소년층을 대할 때, 그들을 위한 걱정이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 답습해온 막연한 공포심의 틀 안에 아이들을 맞추고 통제하려는 ‘목수’가 되기를 멈추고, 대신 이들이 자유로운 성장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정원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소통의 문화’ 보존하기
우리나라는 현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채 힘겨웠던 과거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며 여기에 더해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 날로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기까지 마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까지 지금껏 우리 모두가 익숙해 있던 기존의 질서를 빠르게 뒤바꾸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 다름 아닌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 대신 스마트 기기와의 소통에 더 몰두하기를 원하는가? 모처럼 집안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잔칫상에서조차 떠들썩한 대화 대신 스마트폰의 알림 소리들만이 이따금씩 정적을 깨는 것이 전부인 해괴한 광경이 펼쳐지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기계들과 함께 ‘스마트’해질 것이냐, 아니면 기계들 곁에서 구제불능의 우매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냐를 둔 선택의 갈림길 위에 말이다. 그 답은 오로지 우리의 선택 –‘살아있는’ 소통, 이웃사촌들과의 친목, 오랜 전통과 가족 구성원 간 따뜻한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보존하는 것에 대한– 여부에 달려있다.
‘미래’란 곧 사람들 간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탄생하는 것
최근 필자는 국내 각기 다른 지역에 위치한 두 시설의 개관 행사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하나는 한 지방에서 열린 학생회관 개관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느 소도시 소재의 커뮤니티 센터 개원식이었다. 이 같은 공공 시설들은 왜 필요한 것일까? 바로 여러 세대를 하나로 이어주고 어린이와 청년층, 노인들이 한데 어울려 스포츠와 교육,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 바로 ‘살아있는’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어찌 현 시대의 ‘디지털 고독’을 극복할 최고의 방안 아니겠는가? 바로 이러한 공공시설을 증설하는 사업에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건설해 나가야 하는 미래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각지의 지방 행정부들은 이제 매년 멀쩡한 보도블록들과 아스팔트를 밀고 재포장하는 식의 무의미한 관료행태는 그만두고, 사람들을 진정으로 하나로 이어주는 공공 프로젝트에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만일 우리 스스로가 아이들과 부모, 젊은이들과 노인들, 나아가 사회 전체의 단합을 이뤄낼 수 있는 실질적 여건들을 조성하는 작업을 바로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대체 그 누가, 그리고 언제 우리를 대신하여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 주겠는가?
뻔한 에필로그 대신 고하다: 스마트폰 세대를 구원하는 법
‘디지털 절대주의(Digital absolutism)’의 위험성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다룬 디지털·온라인과 관련한 문제들을 단순히 스마트 기기 사용 범위 내에만 국한된 것으로 인식하게끔 유도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직면해 있는 본 위기의 근원에는 부모의 과보호, 취약한 공교육 제도, 진정한 모습을 한 공동체의 부재라는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균형’을 지키는 것에 있다. ‘금지’시키는 대신 방향을 ‘제시’해 주기,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대신 대체제를 ‘제시’해 주는 식으로 말이다.
예로부터 카자흐스탄의 사회는 늘 상호 간의 도움, 가족과 공동체의 연대에서 비롯되는 카자흐 민족 고유의 풍습 ‘아사르(Асар)’를 바탕으로 건설되어 왔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전통적 가치관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면, 오늘날 위기에 빠져 있는 스마트폰 세대를 구원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알마즈 샤르만(Алмаз Шарман) 의학박사는 미국과 카자흐스탄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저명한 생물의학 및 공중보건 전문가이다.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미국 앨라배마 버밍엄 대학교와 존스 홉킨스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연구 기관에서 근무했으며,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중앙아시아 지역 사무소 전염병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새로운 HIV 진단 검사법을 개발, 제 3세계에 보급하여 UN에서 집계하는 전 세계 HIV 감염자 수 추정치를 크게 감소시키는 데에도 기여한 바 있다. 현재 미국공중보건학회(APHA)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에서는 예방 의학 아카데미와 국립 건강 영양 센터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2023년에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보건부 장관의 예방 의학 문제에 대한 객원 고문으로 임명된 바 있다. 또한 그는 카자흐스탄 최초의 아동 및 학생 전용 교육포털 사이트 balaman.kz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