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필자는 어린 시절 우슈토베의 영화관에서 본 흑백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렸다. 피곤한 형사가 집으로 돌아와 초콜릿이 담긴 컵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먹는 모습은 소년에게 처음으로 마주한 ‘행복의 풍경’이었다. 영화 속 장면을 직접 재현하고 싶었던 그는 초콜릿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이웃 콜호즈의 논일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7월의 어느 이른 아침, 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나무 난간을 두른 낡고 먼지투성이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모여 있었다. 운전사가 손을 한 번 휘젓자 사람들은 일제히 짐칸으로 올라타 좁은 나무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 천으로 만든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점심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낫을 들고 있었다. 곧고 날카로운 칼날을 천으로 감싼, 고려인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작은 낫이었다. 내 가방에는 차를 담은 병과 삶은 달걀, 빵 몇 조각, 오이와 토마토가 들어 있었고, 빈 성냥갑에는 삶은 달걀이나 채소를 찍어 먹을 소금을 담아 두었다.
아주머니들은 고려말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청소년들은 러시아어로 떠들었다. 두 언어가 뒤섞인 대화는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말없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 공기 속에 퍼지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좋았다. 왠지 모르게 평화롭고 집에 있는 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트럭 짐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았다. 그 풍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고,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너무 많은 기억을 품고 있는 땅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했다. 공부도 더 하고 싶었고 책도 많이 읽고 싶었다. 언젠가는 큰 도시로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물과 벼 사이에서 흘러가는 이 시간이 결코 하찮지 않다는 이상한 예감도 들었다. 이곳에서도 내게 중요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트럭은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논에 도착했다. 콜호즈의 작업 반장은 큰 소리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른 뒤, 논둑에 세워진 표지판에 적힌 작업 구역 번호를 하나씩 알려 주었다. 논물은 위쪽은 햇볕에 데워져 따뜻했지만, 아래쪽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발밑에는 미끈미끈한 진흙이 깔려 있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누군가가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갈대 뿌리는 질기고 단단해서 맨발을 사정없이 찔렀다. 그래도 그것쯤은 견딜 만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모기였다. 모기들은 온몸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마치 피를 모조리 빨아먹으려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물어댔다.
나는 낫으로 갈대와 잡초를 베었다. 하루 종일 살아 있는 기계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허리를 굽히고, 낫을 들이밀고, 베어 내고, 잡아당겨 뽑아냈다. 잡초는 쉽게 뽑히지 않았고, 갈대는 우지끈 소리를 내며 꺾였다. 물은 금세 흙탕물로 변했고, 바닥의 진흙이 뒤섞이며 올라왔다. 그 냄새는 마치 논이 아니라 수백 년 묵은 늪에서 일하는 것처럼 짙고 묵직했다. 손에는 곧 잔상처가 가득 생겼다. 손톱 밑에는 진흙이 파고들어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돌을 등에 지고 다닌 것처럼 허리도 욱신거렸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엎어지듯 쓰러져 꿈도 꾸지 않고 잠들었다.
일주일은 끝이 없을 만큼 길게 느껴졌다. 논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해가 떠오르면 벌써 지쳤고, 해가 중천에 걸리면 몇 시간이 지난 건지 감각조차 없어졌다. 해가 지면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눈앞에는 아직도 베어야 할 갈대가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정말 더는 견디기 힘든 순간이면 나는 초콜릿 한 장이 아니라 영화에서 보았던 초콜릿이 가득 담긴 그 컵을 떠올렸다. 차갑게 얼어 있는 초콜릿 조각들. 한 조각씩 입에 넣을 때마다 들리는 바삭한 소리. 그리고 그 바삭거림 하나하나가 미래를 향해 내딛는 한 걸음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상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십 대에게는 그런 어리석은 꿈이 있어야 고된 시간을 견딜 수 있다.
일주일이 끝나자 나는 품삯을 받으러 콜호즈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는 나이 지긋한 고려인 아주머니가 회계 일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내가 돈이 아니라 행복을 누릴 허락이라도 받으러 온 사람인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일 잘 했나?" 묻더니,이내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돈이 나다(돈 필요한 거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어느 언어로 대답해야 할지도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장부를 한참 뒤적이고, 주판알을 몇 번 튕긴 뒤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돈을 꺼내더니 내 손에 쥐여 주었다.
5루블 30코페이카.
그것은 당시의 내게 엄청난 돈이었다. 나는 지폐와 동전을 손에 꼭 쥔 채 혹시 꿈처럼 사라질까 봐 괜히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보았다. 5루블이면 초콜릿을 열 판이나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 나는 곧장 식료품점으로 가지 않았다. 먼저 서점부터 들렀다. 우슈토베 같은 작은 도시치고는 꽤 큰 서점이었다. 예전에는 그 건물이 군(郡)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내게 서점은 늘 발길이 향하는 곳이었다. 기독교인에게 교회가 그렇듯, 내게는 서점이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 들어서면 언제나 조용했고, 사람들마저 조금 더 선해 보였다. 무슨 책을 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먼저 샀다는 사실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작은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단것을 사러 온 것이 아니다. 책도 사러 왔다.'
서점을 나온 나는 그제야 슈퍼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슈퍼 안은 밝았고, 갓 구운 빵 냄새와 시큼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초콜릿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판매원에게 말했다.
"두 개 주세요."
그녀는 마치 내가 "파리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말없이 초콜릿 두 개를 건네주었다. 마트를 나오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마치 훔친 물건이라도 품에 안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초콜릿을 냉장고에 넣어 둘 수는 없었다. 우선 우리 집 냉장고는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게다가 동생들이 먼저 찾아내 먹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우리 집에서는 단것이 오래 남아 있는 법이 없었다.
나는 초콜릿을 옷장 맨 위에 숨겨 두었다. 오래되고 높이가 큰 옷장이었는데, 그 위에는 낡은 가방과 상자들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초콜릿을 가장 구석진 곳에 밀어 넣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새해가 다가오면 헛간에 숨겨 두자. 그러면 냉장고에 넣은 것처럼 꽁꽁 얼겠지.
그리고 그때야말로 영화에서 본 것처럼 바삭거리는 초콜릿을 컵에 담아 먹을 것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내 꿈을 상징하는 한 컵의 초콜릿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가을은 좀처럼 끝날 줄 모르고 천천히 흘러갔다. 첫눈이 내리자 나는 옷장 위에 올라가 초콜릿을 꺼낸 뒤, 헛간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널빤지 몇 장이 쌓여 있는 구석에 조심스럽게 숨겨 두었다. 그러고는 큰일 하나를 마친 사람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다시 헛간으로 향했다. 심장은 또다시 쿵쿵 뛰었다. 이번에도 단순히 초콜릿을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식을 치르러 가는 사람처럼 긴장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겼다. 그런데 초콜릿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표면에 하얀 막이 얇게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초콜릿이 왜 그렇게 변하는지 알지 못했다. '초콜릿이 하얗게 뜬다(블룸 현상)'는 말도, 그 이유도 전혀 몰랐다. 나는 그저 초콜릿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마치 꿈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하얗게 바래 버릴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초콜릿을 잘게 부러뜨려 그릇에 담았다. 늘 시래기장물을 먹던 평범한 집안 그릇이었다. 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운 뒤 가슴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정말 잠시 동안만은….모든 것이 영화 속 장면과 똑같았다.
고요함. 차갑게 얼어 있는 초콜릿 조각. 그리고 바삭거리는 소리.
나는 그 형사처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초콜릿을 씹었다. 그러면서 미래를 생각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내 머릿속을 채운 생각들은 너무도 단순했다. '또 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큰 도시로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내 그릇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초콜릿을 한 조각씩 먹을수록 행복은 점점 커져 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행복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도 조금씩 커졌다. 혼자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당하게 번 돈으로 산 초콜릿이었지만, 동생들에게는 비밀로 한 채 혼자만 먹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십 대의 마음속에는 기쁨 뒤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늘 숨어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대가는 찾아왔다. 욕심과 이기심에 대한 벌이었을까. 며칠 동안 심한 변비에 시달리며 꼼짝없이 고생해야 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몸도 한결 가벼워졌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꿈이라는 게 참 이상한 일이다. 꿈은 사람을 모기가 들끓는 논으로 이끌고, 차가운 진흙 속을 걷게 만들고, 콜호즈 사무실과 몇 푼의 품삯을 거치게 하고, 옷장과 헛간을 오가게 만들고, 하얗게 변한 초콜릿 앞에서 실망하게 만들더니, 끝내는 몸까지 탈이 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후회는 없었다.
꿈은 초콜릿에 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콜릿은 그저 꿈을 꾸게 만든 계기였을 뿐이다.
그로부터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분명히 안다. 현실 속 형사들은 집에 돌아와 초콜릿이 담긴 그릇을 가슴에 올려놓고 오래 누워 있지 않는다. 대신 보드카나 위스키를 마시고, 전화로 상사나 동료와 언성을 높이거나 집에서는 잔소리 많은 아내와 다투곤 한다. 냉장고 문도 영화처럼 멋지게 열리지 않는다. 행복이 언제나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어떤 행복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때로 행복이란 그저 따뜻하고 포근한 자기 침대에 누울 수 있는 것, 혹은 유리잔처럼 산산조각 날까 두려워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영화관 ‘제티수’를 기억한다. 그리고 피곤에 지친 한 남자가 냉장고 문을 열어 초콜릿이 담긴 컵을 꺼내던 그 흑백 화면도 기억한다. 무엇보다 우슈토베 거리에서 살던 한 고려인 소년이었던 나 자신을 기억한다. 그 소년은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미래는 스스로 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모기 떼를 견디는 것도, 갈대 뿌리에 찔려 아픈 것도, 손에 낫을 쥐는 것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5루블 30코페이카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미래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었다는 것을.
만약 그때 누군가 내게 "초콜릿을 꿈꾸지 말고 더 큰 꿈을 꾸렴"이라고 말했다면, 나는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십 대에게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컵에 담을 수 있고, 옷장 위에 숨겨 둘 수 있고, 헛간에 가져다 놓을 수 있으며, 겨울이 되면 다시 꺼내 혼자 조용히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이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가 꿈꾼 것은 초콜릿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진정으로 꿈꾼 것은 나만의 컵을 가질 권리였고, 나만의 생각을 가질 권리였다는 것을.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영화 속 흑백 형사는 현실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보다 내게 더 큰 의미로 남았다. 그는 피곤한 삶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작은 즐거움 하나에도 앞으로 살아갈 긴 삶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초콜릿을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초콜릿을 먹을 생각에 웃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슈토베, 영화관, 여름, 논, 슈퍼마켓, 눈, 헛간, 하얗게 변한 초콜릿, 가슴 위에 올려놓았던 그릇, 이를 스치던 초콜릿의 바삭한 소리…. 그리고 그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아 아마 지금까지도 떠나지 않은 그 이상하고도 고집스러운 마음이 함께 떠오른다.
김 게르만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