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은 130여개 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따라서 타민족들과 서로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되어 있다. 알마티에서 거주하는 김 로사 알렉산드로브나의 가정에는 고려인을 비롯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위구르, 카자흐, 타타르 등 다섯 개 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가정 경사 때에는 식구들이 다 모이면 약 25명이 된다고 한다. 손자와 증손자만 해도 14명이나 된다. 항상 따뜻한 분위기가 떠도는 이런 다문화 가정을 이루기까지 로사 알렉산드로브나는 평탄치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야 했다…
로사는 잠빌 주 추 부락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락에 있는 기업이라고는 오직 하나의 기관고 (기관차 공장) 뿐이었다. 주민들 대부분이 이 공장에서 일했고, 로사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경제사로, 어머니는 부품을 닦는 일을 했으며, 로사는 야간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낮에는 역시 이 기관고에서 부품 측량원으로 근무했다. 이렇게 지루한 나날이 이어졌다. 로사의 친구들 중 여러 명은 향촌을 떠나 알마아타 (현 알마티)에서 일자리를 찾아 일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는 많은 고려인들이 농사일에 종사하던 때가 있었다. 로사의 부모 역시 알마아타 근교에서 양파를 재배하였다. 이를 기회로 삼아 로사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필요한 물건을 싸들고 글쪽지와 열쇠는 신발 터는 깔개 밑에 감추어 두고 알마아타로 떠났다. 알마아타에 삼촌이 있었기에 로사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삼촌은 국가공급 위원회에서 부지배인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로사는 그가 자신에게 일자리를 구해 줄 것이라 믿었다.
로사는 월요일에 집을 떠났는데, 같은 주 토요일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알마아타로 찾아왔다. 부모님은 추 부락 마을에서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딸의 장래를 위해 알마아타에서 작은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해서 로사의 가족은 알마아타로 자리를 옮겼다.
삼촌의 도움으로 로사는 사무실 비서로 취직했다. 어떻게 보면 생활이 제 궤도에 들어선 것 같다. 알다시피 소련 시대에 비서의 봉급이 낮았다. 로사는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비서직을 그만두고 플라스틱 공장에 취직했다. 이곳에서는 플라스틱 그릇을 생산했다. 로사는 잡일부터 시작하여 브리가지르 (작업반장)까지 승진했다. 공기가 탁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대신 한가지 장점은 봉급이 높은 것이었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로사의 어머니에게 우슈토베에 좋은 사위감이 있다고 말했다. 미남인데 키도 크고 대학도 졸업했다는 것이었다. 로사는 어릴 때부터 그런 총각과 결혼하기를 꿈꾸어왔다. 첫 만남에서 김 라브렌찌는 로사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이혼한 상태이며 자녀가 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로사의 결정을 바꾸지 못했다.
아들은 8세, 딸은 6세였다.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4개월 후, 로사는 라브렌찌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이들은 로사를 엄마라고 불렀다. 1년 후, 친어머니가 와사 딸애를 데려가려 했지만, 아이는 로사의 손을 꼭 잡고 서서 가기를 거부했다…
- 그 아이들은 제게 친자식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저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껴주었기에, 저 역시 남편의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모정을 몽땅 주었습니다. 저와 라브렌찌 사이에서는 아들 하나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행복한 아내였으며 행복한 어머니였습니다. 다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타민족 며느리들이 있는데, 처음에 아들이 다른 민족 여성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솔직히 말해서 어머니들은 가능하면 자기 민족의 며느리를 원하지 않습니까? 반대하지 않았아요? 반대하지 않았나요?
- 반대는커녕 오히려 아들이 그 러시아 아가씨와 헤어지지않도록도와주었습니다. 나는 알마아타의 시외에서 양파를 재배하는 남편을 돕기 위해 맏아들 아르뚜르를 데리고 그 곳에서 임시 지내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의 웃을 세탁하려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여자친구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호기심보다도 최근 며칠동안 아르뚜르가 알마아타로 가지도 않기에 아마도 그 애들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았나 싶어 편지를 읽어보았습니다. 헤여지려는 슬픈 내용이 담긴 편지였지요…나는 즉시 딸에게 연락해 우니웨르쌈 (백화점 같은 곳)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레나 (그 아가씨)를 찾아가 ‘오빠가 꼭 결혼할 것이니 고민하지 말라’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아르뚜르와 레나는 이미 60고개를 넘어섰습니다. 자녀 셋과 손주 여섯을 둔 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그때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듭니다.
‘’둘째 며느리를 삼아보아야 첫 며느리의 마음을 안다’’는 조선격언이 있다. 그러나 로사 알렉산드로브나의 가정에서는 이 격언이 통하지 않는다.
- 맏며느리와 둘째 며느리 모두 러시아인이지만, 두 사람 다 성품이 착하고 살림도 잘해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려인 가정에 들어온 만큼, 민족 전통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참 기특했습니다. 지금은 민족 요리도 저 못지 않게 능숙하게 준비합니다. 맏며느리는 특히 북장을 아주 맛있게 끓이는 솜씨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집 명절상에는 여러 민족의 요리가 올라옵니다.며느리들과 손자며느리들이 각자의 솜씨를 뽐내려 애쓰다 보니, 상차림이 더욱 풍성해지지요…
- 로사 알렉산드로브나, 며느리들의 관계 형성에는 시어머니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당신과 시어머니의 관계는 어떠셨습니까?
- 물론이지요. 시어머니께서는 저를 친딸처럼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1937년 강제 이주 당시, 우슈토베로 향하는 첫 번째 열차에 시부모님도 타고 계셨습니다. 그 쓰라린 역사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 다시 말하지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시부모님이 겪은 고난과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내가 그 가문에 들어갔을 때, 시어머니는 러시아말을 모르셨고, 저는 고려말을 몰랐으니 교제하면서 부득이 서로 언어를 배워주게 된 셈이지요. 시어머니께서는 저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고, 살림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 혹시 시어머니와의 따뜻한 관계가 로사 알렉산드로브나와 며느리들의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요?
- 그럴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로사 알렉산드로브나는 가장의 역할을 맡아 가족을 이끌고 있다. 이렇게 대가족의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가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김 로사 알렉산드로브나는 언제나 가족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가정의 분위기를 세심하게 조율하며 노력하고 있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