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의 한국에서 부치는 편지
≪와유(臥遊)≫
제1장 · 풍수로 정한 자리, 뜻으로 세운 수도 (서울)
알마티에서는 길을 잃어도 크게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고개를 들어 산을 찾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톈산의 줄기가 늘 도시의 남쪽에 서 있으니, 산이 보이는 쪽이 남쪽이고 산을 등지면 북쪽입니다. 그래서 알마티 사람들은 길을 일러 줄 때 “산 쪽으로 올라가라”, “산을 등지고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산이 곧 나침반인 도시에서 방위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새겨집니다.
육백여 년 전의 서울도 꼭 그런 도시였습니다. 방향만 반대였을 뿐입니다. 도성 사람들은 북악이 보이는 쪽을 북쪽으로 알았고, 남산을 바라보며 남쪽을 가늠했습니다. 알마티와 서울은 그렇게, 산으로 방위를 잡는 같은 버릇을 지닌 도시들입니다. 그러니 알마티의 눈으로 서울을 읽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이 여행에 앞서 저는 한 해 동안 스물네 절기, 곧 하늘의 시간을 읽는 글을 썼습니다. 이번에는 땅의 공간을 읽으려 합니다. 중국 남조의 화가 종병(宗炳)은 늙고 병들어 산천을 다니지 못하게 되자 벽에 산수를 그려 두고 누워서 노닐었다 합니다. 와유(臥遊), 누워서 노닌다는 말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이 책이 여러분께 그런 그림 한 폭이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한국 땅을 밟으시는 날, 이 편지가 미리 걸어 둔 길이 발밑에서 되살아나도록. 장마다 한 곳을 찾아가 그 땅에 새겨진 역사 한 토막을 되짚고, 옛사람들이 땅을 읽던 독법 하나를 곁들이겠습니다. 첫걸음은 서울입니다.
네 산이 두른 터, 두 물이 감싼 자리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두 해 뒤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을 두고 굳이 새 터를 찾은 데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새 왕조는 옛 도읍에 켜켜이 쌓인 지난 시대의 기억과 거리를 두고, 새 질서를 새 땅 위에서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도읍을 옮긴다는 것은 그 시절, 나라의 시간을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이었습니다. 『태조실록』에는 천도를 앞두고 정도전에게 종묘와 사직, 궁궐과 시장, 도로의 터를 정하게 했다는 대목이 보입니다. 새 나라의 설계를 맡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땅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옛사람들의 눈에 한양은 보기 드문 자리였습니다. 등 뒤로 주산 북악이 솟고, 왼팔처럼 낙산이, 오른팔처럼 인왕산이 감싸며, 앞으로는 남산이 책상처럼 마주 놓입니다. 네 산이 두른 분지 한복판으로 개천(지금의 청계천)이 흐르고, 바깥을 한강이 크게 감습니다. 바람을 품고 물을 얻는 땅, 풍수에서 말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전형입니다.
네 산의 생김도 저마다 또렷합니다. 북악은 단정한 세모꼴로 솟아 임금의 자리를 받치고, 인왕은 흰 바위 살결을 드러낸 채 서쪽을 지키며, 남산은 부드러운 능선으로 마주 앉고, 낙산은 나지막한 언덕으로 동쪽을 두릅니다. 터가 정해지자 이 네 산의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습니다. 농한기 두 차례, 전국에서 불러 모은 장정들이 각각 쉰 날 남짓한 공사로 18킬로미터가 넘는 성벽을 둘렀으니, 산과 성이 한 몸이 된 이 울타리가 곧 한양도성입니다.
오늘의 눈으로 보아도 이 독법은 허황하지 않습니다. 산줄기가 겨울바람을 막고, 물이 가까워 농사와 뱃길이 잇닿고, 큰 강이 바깥의 위협을 한 번 거르는 곳, 풍수의 언어를 걷어 내면 입지의 과학이 남습니다. 다만 옛사람들은 그 판단을 음양오행의 셈법으로 말했고, 그 셈법이 실제로 나라의 결정을 움직였습니다.
물론 다툼도 있었습니다. 야사인 『오산설림초고』에는 무학대사가 인왕산을 주산 삼아 도성을 동향으로 앉히자 했으나, 정도전이 “예부터 제왕은 남쪽을 바라보고 다스렸다”며 북악 주산을 관철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야사는 야사로 읽어야겠지만, 도읍의 좌향이 그만큼 무거운 논쟁거리였다는 사정만은 또렷이 비춰 줍니다.
성문에 새긴 다섯 덕목
터를 읽는 일이 끝나자 이름을 짓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1395년 새 궁궐이 완성되자 태조는 정도전에게 이름을 짓게 했고, 그는 『시경』의 “군자 만년토록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구절에서 ’경복(景福)’을 따 왔습니다. 부지런히 다스리라는 근정전, 깊이 생각하라는 사정전, 평안하라는 강녕전, 전각 하나하나가 잠언이 되었습니다. 『태조실록』이 전하는 이 명명의 기록은, 이 도시가 처음부터 읽으라고 지은 텍스트였음을 드러냅니다.
이듬해 도성이 완성되고 여덟 개의 문이 열리자 그 텍스트는 성안 전체로 번졌습니다. 동쪽 대문은 어짊을 일으킨다는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은 의로움을 도탑게 한다는 돈의문(敦義門), 남쪽은 예를 높인다는 숭례문(崇禮門). 유학이 사람의 바탕으로 꼽는 다섯 덕목,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가운데 세 글자가 세 방위에 내걸렸습니다.
물론 백성들의 입에서 이 문들은 동대문, 남대문으로 더 자주 불렸습니다. 격식을 갖춘 이름과 살가운 속칭이 나란히 살았던 것인데, 오늘의 서울 사람들이 옛 도성 안쪽을 여전히 ’사대문 안’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그 글자들은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봄날이면 도성을 한 바퀴 도는 순성이 한양 사람들의 나들이였다고 전하니, 성벽은 군사 시설이면서 동시에 둘레길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한양도성 길을 걷는 일은 그 옛 놀이의 복원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동양의 오랜 이치에서 동쪽은 나무(木)의 방위이자 봄의 자리로, 만물을 살리는 어짊과 통합니다. 서쪽은 쇠(金)의 방위로 가을의 서늘한 결단, 곧 의로움과 짝하고, 남쪽은 불(火)의 방위로 예의 밝음과 잇닿습니다. 방위마다 제 덕목이 있다는 오행의 짜임을 설계자들은 그대로 성문에 옮겨 적었습니다. 이 문들이 곧 나라의 교과서나 다름없어서, 도성을 드나드는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그 글자들 가운데 하나를 지나야 했습니다.
전해 오는 풀이도 한 자 한 자에 붙었습니다. 사대문 가운데 흥인지문만 넉 자인 것을 두고 좌청룡 낙산이 낮아 기운을 글자로 보탰다는 이야기가 있고, 숭례문 현판이 유독 세로로 선 것을 두고는 불꽃처럼 일어선 예(禮)로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맞섰다는 풀이가 내려옵니다. 둘 다 후대의 해석으로 가려 읽어야 하지만, 글씨에 관해서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숭례문 현판을 양녕대군의 글씨로 전합니다. 사실과 전승을 나누어 읽되, 사람들이 이 글자들을 도시의 운명과 한 몸으로 여겼다는 점만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정작 이름을 지은 사람은 그 뒤를 오래 보지 못했습니다. 정도전은 도성이 완성되고 두 해 뒤 정변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가도 이름은 남아, 그가 성문에 새긴 설계는 그 뒤로도 오백 년을 일했습니다.
비워 둔 글자, 오백 년 뒤의 마침표
그런데 다섯 덕목 가운데 두 자가 비어 있습니다. 북쪽 대문의 이름은 숙정문(肅靖門), 지혜(智)가 들어설 자리에 엄숙히 다스린다는 뜻이 앉았습니다. 북쪽은 물(水)의 방위이자 겨울의 자리, 거둠과 감춤의 방향입니다. 지혜는 내걸기보다 간직하는 덕이라 북문에 쓰지 않았다는 풀이가 전하지만, 이 역시 후대의 해석으로 읽는 편이 정직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문이 실제로 닫힌 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숙정문은 평소 굳게 닫아 두었고, 실록에는 가뭄이 들면 양(陽)의 문인 숭례문을 닫고 음(陰)의 문인 숙정문을 열어 비를 빌었다는 기록이 거듭 보이고, 장마가 길면 반대로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오행이 책 속의 관념이 아니라 도성의 문을 여닫는 행정이었던 것입니다.
빈자리는 오래 두고 채워졌습니다. 숙종 때 도성 북쪽을 보강하며 세운 문에 비로소 지혜를 넓힌다는 홍지문(弘智門)이 걸렸고, 탕춘대성의 그 문은 도성 밖 북한산 자락에 지금도 서 있습니다. 도성 한복판의 종루에는 1895년 고종이 보신각(普信閣)이라는 현판을 내렸습니다. 이 종은 밤 열 시 무렵 스물여덟 번 울려 성문을 닫게 하고(인정), 새벽 네 시 무렵 서른세 번 울려 성문을 열게 했습니다(파루). 도성의 하루가 종소리로 닫히고 열렸습니다. 믿음(信)은 오행에서 중앙 흙(土)의 덕목이니, 다섯 자의 마지막 획이 그렇게 찍혔습니다. 어울리는 마무리입니다. 시각을 어김없이 알리는 종이야말로 도시가 백성과 주고받는 가장 오랜 약속이었으니까요. 지금도 한 해의 마지막 밤이면 사람들이 보신각 앞에 모여 서른세 번의 종소리로 새해를 맞으니, 파루의 그 서른세 번이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지금 제야에 우는 종은 1985년에 새로 부은 종이고, 조선의 옛 종은 박물관으로 옮겨 쉬고 있습니다. 소리의 임무는 교대되었어도, 약속만은 같은 자리에서 이어지는 중입니다.
그러니 서울은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완성한 설계가 아닙니다. 1394년에 첫 문장을 쓰고 1895년에 마지막 글자를 찍은, 오백 년에 걸쳐 쓰인 한 권의 책에 가깝습니다. 그 사이 지워진 대목도 있습니다. 돈의문은 일제강점기에 헐려 지금은 자리만 남았으니, 이 책은 빈 줄까지 품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산을 읽는 법
이 글을 들고 서울에 가시거든 광화문광장에 서 보시기 바랍니다. 경복궁 너머 정면으로 솟은 봉우리가 주산 북악입니다. 왼쪽으로 바위 이마가 환한 산이 우백호 인왕이고, 몸을 돌리면 남쪽 멀리 남산이 마주 서 있습니다. 좌청룡 낙산은 낮아 건물 사이에 잘 드러나지 않는데, 바로 그 낮음이 흥인지문 넉 자의 사연으로 이어졌다는 풀이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같은 자리가 관광에서 답사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경복궁에 드시거든 근정전 마당에서 한 번 더 북악을 올려다보십시오. 전각의 지붕선과 산의 능선이 맞물리는 그 각도에, 산을 등지고 궁을 앉힌 옛 설계의 눈이 들어 있습니다. 2020년에는 방탄소년단이 미국의 텔레비전 쇼를 위해 바로 이 궁 마당에서 노래해, 세계의 젊은 팬들에게 경복궁은 무대의 배경으로도 익숙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육백 년 묵은 텍스트가 새 독자를 얻는 방식입니다.
끼니로는 설렁탕 한 그릇을 권합니다. 임금이 선농단에서 몸소 밭을 갈고 끓여 나눈 국에서 이름이 왔다는 설이 전해 오니, 왕도다운 한 그릇입니다. 광장시장의 빈대떡과 육회 골목은 서울의 또 다른 맛 지도입니다.
발밑의 길에도 내력이 있습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는 옛 육조거리, 조선의 관청들이 늘어섰던 나라의 중심 길입니다. 경복궁의 중심축이 북악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곧게 뻗도록 놓였으니, 육백 년 동안 이 도시의 등뼈는 같은 자리에 있었던 셈입니다. 광장에서 남쪽으로 몇 걸음이면 청계천입니다. 네 산의 물이 모여 도성을 가로지르던 명당수로, 한동안 길 밑에 덮였다가 2005년 다시 열려 지금은 산책길이 되었습니다. 물길을 따라 동쪽 끝까지 걸으면 흥인지문 곁에 닿으니, 풍수의 물길이 그대로 답사의 길이 됩니다.
사주명리를 다뤄 온 이 책의 독법도 여기에 잇닿아 있습니다. 명리가 사람의 생년월일시 여덟 글자를 목화토금수로 읽어 내듯, 옛사람들은 도시를 그렇게 읽고 또 지었습니다. 오행은 점치는 술수이기 전에 시간과 공간과 사람을 한 표에 놓고 헤아리던 동아시아의 오랜 질서여서, 그것으로 하늘의 때를 읽으면 절기가 되고, 땅을 살피면 풍수가 되며, 사람의 때를 짚으면 명리가 됩니다. 사람의 사주와 도성의 성문은 한 이치에서 나온 다른 문장인 셈입니다. 동대문이 봄과 어짊의 문임을 알고 그 앞에 서면, 돌과 기와 위로 글자가 떠오릅니다.
백여 년 전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를 지나 중앙아시아에 닿은 사람들에게, 한양 도성은 평생 말로만 듣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름으로만 품었던 도시를 이제 후손들은 비행기로 한나절이면 닿아 두 발로 밟습니다. 고향을 멀리 두고 사는 이든 처음 이 땅을 밟는 이든, 그 걸음에 읽는 법 하나를 보태 드리는 것이 이 책이 맡은 몫입니다.
도시는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쓰이는 것입니다. 서울은 산이 정해 준 자리에 글자로 써 내려간, 아직 퇴고가 끝나지 않은 문장입니다. 어느 시대는 글자를 보태고 어느 시대는 잃었으며, 그때마다 이 도시는 제 문장을 고쳐 써 왔습니다. 여러분이 광화문에 서는 날, 그 육백 년 문장의 가장 새로운 독자가 됩니다.
답사 메모
•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광장으로 바로. 성벽 걷기는 4호선 한성대입구역(혜화문)에서 시작해 동대문역(흥인지문)으로 내려오는 방향이 편합니다.
• 하루 동선: 광화문광장 지도·사진에서 북악·인왕·남산을 읽고 → 혜화문으로 이동, 한양도성 낙산 구간 2km 지도·사진 → 흥인지문 지도·사진 → 청계천 따라 보신각 지도·사진 → 숭례문 지도·사진. 도성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한나절 길입니다.
• 계절과 시간: 낙산 성벽은 해 질 녘, 성벽 너머로 도심 불빛이 켜지는 시간이 백미입니다. 숙정문 지도 쪽 북악 구간은 숲길이라 봄가을이 좋습니다.
• 맛과 쉼: 흥인지문 곁 광장시장 지도의 빈대떡과 마약김밥이 성벽 걷기의 보상입니다.
• 알아 둘 것: 북악 구간은 신분증을 챙기시기를. 경복궁은 화요일 휴궁. 숭례문의 禮 현판은 2008년 화재 뒤 2013년 복구본이고, 사라진 돈의문 터는 정동의 박물관마을 지도이 지킵니다.
동선 한 번에 열기, 도성 동서 횡단(도보+지하철): 동선 지도
알아 두면 좋은 말들
• 주산(主山)·안산(案山): 터의 등 뒤를 받쳐 주는 산과, 앞에 낮게 마주 놓인 산.
• 좌청룡·우백호: 터를 왼쪽과 오른쪽에서 감싸 주는 산줄기.
• 사신사(四神砂): 주산·안산·청룡·백호, 터를 둘러싼 네 산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오상(五常): 유학이 꼽는 사람의 다섯 가지 바탕 덕목, 인의예지신.
• 현판(懸板): 문이나 건물에 이름을 적어 내거는 판.
• 도성(都城): 임금이 사는 서울을 두른 성, 또는 그 안의 도시.
• 순성(巡城):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일. 조선 사람들의 봄나들이이기도 했습니다.
교육학박사
정태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