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보내는 편지 연재 1회 ·
프롤로그
같은 날, 두 개의 이름 매년 3월 21일 전후, 카자흐스탄의 광장에 수십개의 유르트가 세워집니다. 이는 새해와 새봄의 시작을 기념하는 나우르즈 축제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페르시아어로 '새로운 날'이라는 뜻. 긴 겨울을 이겨낸 생명들이 다시 땅 위로 돌아오는 날. 유르타 안에서는 나우르즈 코제가 끓여지고, 거리에서는 새해맞이 인사가 오갑니다. "나우르즈 쿠트볼슨(Наурыз құтты болсын)!" 그런데 바로 이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의 달력에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춘분(春分).
같은 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두 이름은 모두 하나의 천문 현상을 가리킵니다. 지구의 공전 궤도상,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의 위치가 적도 바로 위에 오는 순간. 낮과 밤의 길이가 정확히 같아지는 그 순간. 카자흐의 유목민도, 한반도의 농경민도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 수천 년 동안 이날을 같은 방식으로 기렸습니다. 두 문명이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 하늘의 기운이 실제로 달라지는 날이기 때문에, 그 기운을 몸으로 감각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같은 날을 기리게 된 것입니다. 고려인의 선조들이 연해주에서 이 땅으로 옮겨왔을 때, 그들은 낯선 땅에서 낯선 이웃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들이 계절을 알아차리는 방식이, 자신들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그 공통의 감각이 두 민족 사이에 무언의 다리를 놓았을 것입니다.
빼앗긴 것과 빼앗기지 않은 것
소련 정부의 강제이주령. 연해주의 고려인 18만여 명이 화물칸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보내졌습니다. 1937년의 일입니다. 6,400킬로미터. 지구 둘레의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였습니다. 1939년부터는 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이 폐지되고 러시아어 교육이 강요되었습니다. 땅을 잃었습니다. 말이 희미해졌습니다. 이름을 바꾼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빼앗기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니 빼앗을 수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 봄이 오면 들판으로 나서 땅을 일구고 싶어지는 충동. 겨울이 깊어지면 따뜻한 것을 끓여 나누고 싶은 마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몸이 기억하는 그 리듬. 언어는 빼앗을 수 있어도, 수천 년이 몸에 새겨놓은 계절의 감각은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감각의 이름이 절기입니다.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들은 토굴집을 짓고 황무지를 일구면서, 다시 학교를 세우고 신문을 발행하며 예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설되어 강제이주와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이전된 고려극장은 오늘날에도 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6년 카자흐스탄 정부는 고려극장을 국립 아카데미 극장으로 승격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신 이 신문, 고려일보가 있습니다. 지금 이 지면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85여 년의 이야기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에서 전하는 마음
사주명리는 수천 년의 관찰이 쌓인 동아시아식 자기 이해의 언어입니다. 그 뿌리에 계절의 리듬, 24절기가 있습니다. 절기는 달의 위상이 아니라 지구의 공전 위치, 즉 나우르즈의 춘분과 같은 그 하늘의 기운으로 결정됩니다. 사주명리는 각 절기가 품은 천문학적 의미와 오행의 논리를 살피고, 그 기운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 어떤 성질을 품고 있는지를 읽는 학문입니다. 앞으로의 연재는 봄에서 시작하여 겨울로 돌아오는 24절기의 순환을 따라갑니다. 각 절기가 품은 하늘의 기운을 읽고, 그 기운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 어떤 삶의 결을 가지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볼 것입니다. 이 글은 한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 한 가지 질문을 드리며 마칩니다. 나는 어느 계절의 기운을 품고 있는가?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정태철 | 교육학 박사
사진: Facebook 한국국학진흥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