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등 각종 첨단 디지털 기기에 대한 청년 및 청소년층의 중독·과의존증은 오늘날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가족 간, 세대 간 대화 단절 및 유대감 저하를 야기시키는 주범으로서 해결이 매우 시급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스마트폰 및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과의존증과 사회적·정서적 고립감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우울증을 앓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으며, 스마트 기기의 등장으로 인한 국민들의 사회적 유대감 저하로 인해 예로부터 단체 생활과 여러 세대 간의 소통을 중시하던 카자흐인들의 전통문화 또한 존립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카자흐스탄 사회에서는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해결책으로는 어떤 방안을 제시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알마즈 샤르만 의학박사가 최근 현지매체에 기고한 내용을 소개한다. 아래 글은 카자흐스탄 매체 Tengrinews가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 왜 카자흐스탄의 아이들은 스마트 기기 화면 안에서 자라고 있나(Цифровое одиночество. Почему казахстанские дети растут в экранах)>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그의 칼럼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알마즈 샤르만(Алмаз Шарман) 의학박사는 미국과 카자흐스탄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저명한 생물의학 및 공중보건 전문가이다.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미국 앨라배마 버밍엄 대학교와 존스 홉킨스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연구 기관에서 근무했으며,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중앙아시아 지역 사무소 전염병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새로운 HIV 진단 검사법을 개발, 제 3세계에 보급하여 UN에서 집계하는 전 세계 HIV 감염자 수 추정치를 크게 감소시키는 데에도 기여한 바 있다. 현재 미국공중보건학회(APHA)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에서는 예방 의학 아카데미와 국립 건강 영양 센터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2023년에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보건부 장관의 예방 의학 문제에 대한 객원 고문으로 임명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전통적으로 누려왔던 ‘어린시절’은 이제 집 앞 골목을 떠나 스마트폰 화면 안으로, 틱톡 등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속으로 터를 옮겼다. 현실 속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 ‘살아있는 진짜’ 소통, 그리고 수 백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카자흐 땅 사회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고유의 공동체 문화 그 자체마저 앗아가 버리며.”
‘집 앞 골목에서 화면 속으로’ – 우리 국민의 유년기는 어떻게 변해버렸나
과거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유년기는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앞마당의 흙먼지 내음과 초원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의 향기로 가득했다. 우리들은 또래 친구들과 ‘아시크(Асык, 실제 발음은 ‘아싁’에 가깝다. 양, 염소 등의 복사뼈를 활용한 게임)’, ‘카자키-라즈보이니키(Казаки-разбойники,구소련권 전역에서 성행한 술래잡기 놀이의 일종. 제정 러시아 시대에 활약하던 ‘코사크’족 부대에서 유래했다 )’, 축구 등 단체 놀이를 즐겼으며 교실 책상 앞에 앉아 특정 주제를 놓고 열띤 논쟁을 펼치기도 하고, 모두 함께 어울려 영화 관람을 다니기도 하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허락했고, 이는 어느 가정에서나 접할 수 있던 지극히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자랐다. 이웃, 친구들, 골목 지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말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길 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흉흉한 범죄 관련 소식들, 그리고 그로 인해 도져버린 안전과민증까지 – 부모들의 불안감과 공포심은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집안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스마트폰은 과거 집 앞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아이들의 ‘놀이 풍경’에 완전한 종말을 고했다. 이때부터 전국민의 ‘어린시절’은 가상공간 속으로 들어가 ‘새살림’을 차렸다. 집 앞 골목에서 모두 함께 기타 반주에 맞추어 흥얼거리던 노래, 교실에서 학우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떨던 수다, 친구들과 어울려 가곤 하던 영화관 – 이 모든 것이 이젠 ‘틱톡’으로 대체된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 ‘상태’는 늘 ‘온라인’. 정작 ‘소통’은 단절
오늘날 우리들의 눈앞에는 ‘디지털 환경 속 고독’이라는 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현 시대의 청소년들은 언제나 ‘온라인 접속’ 상태에 있다. 채팅, 메신저, 그리고 SNS까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적으로 이들은 갈수록 더 큰 고독감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인스타그램 상의 ‘좋아요(Like)’, 채팅창에서의 웃는 이모지, 틱톡의 ‘리액션’ 등은 그저 각자가 생존해 있음을 상대에게 알리는 짧은 신호일 뿐, 진실된 친밀감이 담긴 수단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친목방식을 두고 ‘소통의 맛’은 분명 있기는 하나 영양성분은 ‘0’에 수렴하는, 시쳇말로 ‘부실 식단형 우정’이라 칭한다. 반면 상대와 ‘진짜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한가롭게 거니는 산책, 그리고 그 외 여러가지 단체 활동은 속절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대화는 사라지고 스마트폰 알림음만이 정적을 채우게 된 현대의 ‘다스타르한’
예로부터 가족, 친지들과 ‘다스타르한(Дастархан - 본래의 뜻은 ‘식탁·식탁보’이며, 가족과 손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과 함께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갖는 카자흐 전통 문화를 일컫는다)’을 중요시 했던 카자흐 민족. -편집자 주
예로부터 카자흐 문화는 ‘살아있는’ 소통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대가족이 모인 저녁 식탁, 그리고 손잡이 없는 둥근 찻잔 ‘피알라(пиала)’에 홍차를 따라 마시는 카자흐식 티타임 속에서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소통의 시간. 그러나 이제 이러한 문화는 점차 각종 스마트 전자기기들의 화면에 밀려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유모차 안에 눕혀진 아기들의 고사리손에 마저 딸랑이 장난감 대신 스마트폰이 쥐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손주들에게 밥을 먹이는 할머니들은 이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태블릿PC의 큼직한 화면에 만화영화를 띄워 보여준다. 어디 그뿐이랴. 행여 아이의 몰입에 방해라도 될세라, 화면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아이의 입에 일일이 음식을 집어다 조심조심 넣어 주며 시중 들기에 바쁘다.
알마티에서는 이제 시내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너무나 익숙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부모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인스타그램 게시물들을 스크롤 해가며 구경하고 있고, 그 옆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각 손에 쥔 스마트폰의 화면을 통해 가상의 몬스터들을 사냥하느라 정신이 없다. 웨이터들은 그 중 누구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고 마침내 주문을 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온가족이 모인 우리네 식탁은 더이상 떠들썩한 ‘다스타르한’이 아닌, ‘단체 침묵’의 자리로 변질되어 버렸다. 플롭(Плов, 중앙아시아식 볶음밥)은 식탁 위에, 차는 피알라에, 그리고 눈길은 스마트폰 화면 위에.
오래 전부터 건강상식 및 생활 에티켓과 관련하여 구소련 문화권에서 널리 쓰여온 구호, ‘밥 먹을 때만큼은 모두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되자(Когда я ем, я глух и нем – 정확한 번역은 ‘밥 먹을 때 만큼은 나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일지니’이며, 체증 등을 방지하고 타인 앞에서 식사예절을 지키기 위해 식사 시에는 음식물의 섭취에만 오롯이 집중하자는 의미로 쓰인다)’라는 표현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될 판국이다.
청소년들을 성별에 따라 유인하는 디지털 세상의 함정들
‘디지털 현실’은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의 세계를 장악해간다. 여자 청소년들은 대개 인스타그램, 틱톡처럼 시각적인 요소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덫에 사로잡히는 경향을 보인다.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는 해당 유형의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은 자연히 사용자로 하여금 그곳에 게시되는 타인들의 ‘완벽해 보이는’ 이미지들과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는 곧 자존감 하락, 불안감 및 우울증 증폭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편 남자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게임과 사행성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유형의 콘텐츠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은 현실 세상에서 소통하는 법, 그리고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난관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각종 게임의 컨텐츠적 구조는 디지털 과의존 및 중독 증상을 심화시킨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학교들은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배경으로 하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여학생들은 갈수록 더욱 심각한 수준의 외모 열등감에 빠져들고 있으며,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가상공간 속에 갇힌 채 현실에서 방황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은 아이들이 실제 삶 속에서 필히 몸소 얻어야 할 경험들을 앗아가고 있으며, 사회생활을 통해 체득하게 되는 도덕·윤리적 규범에 대해서도 모호한 인식을 가지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덫에 걸려든 청소년들은 결국 힘, 용기, 남성성, 책임감 등이 결여된 채로 성장하게 되며, 심지어는 향후 이성과의 교제에서마저 의욕을 상실한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