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라시아 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사카족과 튀르크족들의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매우 중요하며 고귀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오늘날 꾸준히 발굴되고 있는 당시 여성들의 의복과 장신구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 과학고등교육부의 과학위원회 산하 ‘마르굴란 고고학연구소(Margulan Institute of Archaeology)’ 소속 연구원들을 만나 지금까지 카자흐스탄 전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바탕으로 고고학자들이 재현해낸 고대 카자흐 여성들의 모습에 대해 알아보았다. 본 글은 Kazinform에 게재된 내용을 발췌하여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알마티 소재 마르굴란 고고학연구소 내에 상설된 ‘신체 인류학 연구실(Laboratory of Physical Anthropology)’은 오늘날 카자흐스탄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유적 발굴 과정에서 발견되는 고대 유골을 비롯한 각종 출토품들을 집하하여 분석·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곳이다.
발굴된 유물들이 본 연구실로 보내지면 이곳의 연구원들은 우선 흙과 먼지 등을 제거하는 1차 처리과정을 거치며, 이후 피장자의 성별, 연령, 신장, 병리적 양상 등을 추정하기 위해 체질인류학적 분석, 유전자 분석, 3D 스캔을 통한 얼굴 복원 등의 작업을 진행한다.
“카자흐스탄 초대 고고학자 오라작 스마굴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카자흐 민족이 가진 외형적 특성의 형성과정은 약 4천 년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근 4천년 동안 카자흐 초원지대에서 살았던 이들의 두개골 형태 변화가 평균적인 수준의 범위 내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죠. 전반적으로 카자흐 민족의 인류학적 유형은 코카소이드와 몽골로이드가 혼합된 형태로, ‘투란’ 인종으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다. 카자흐 여성들의 외형적 특성 또한 해당 범주에 들지요”.
마르굴란 고고학연구소 소속 연구원인 아마잔 좌누작 씨가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져 온 연구를 통해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카자흐인들이 오늘날의 외형을 갖추기까지 거쳤던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지난 2013년 동카자흐스탄 주의 우르자르(Үржар) 지역에서는 카자흐스탄 고고학계에서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발견이 이루어졌다. 당시 해당 지역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의 보수공사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고대 무덤에서는 한 여성의 유해가 발굴되었는데, 훗날 이는 학계에서 일명 ‘우르자르 공주(영어권에는 공주 대신 ‘여사제’를 뜻하는 ‘Urzhar priestess’로 소개되었다)’로 불리게 된다. 분석 결과 이 인골은 사카/스키타이 시기인 기원전 5-4세기 경 살았던 여성의 것으로, 사망 당시 연령은 대략 30-35세 사이였을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우르자르 공주’라 이름 붙여진 이 고대 여성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후두골(뒤통수뼈)이 납작해져 있었으며 두개골 전반 또한 인위적인 환경으로 인해 변형이 이루어진 상태임이 판명되었는데, 이는 이 여성이 유아기에 ‘베시크(бесик,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고안한 요람)’나 그와 비슷한 공간 안에 넣어져 생활했음을 암시하는 부분입니다. 또한 복원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외형적 특성이 오늘날 전형적인 카자흐 여성들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간 과학적 분석을 통해 얻어진 자료들 또한 이 여성의 인류학적 유형이 현대 카자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그것과 일치하다는 점을 입증하고요. 이는 이미 여러 세기를 거슬러 추적 가능한 카자흐인들의 혈통적 계승성을 재차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한편 최근에도 마르굴란 고고학연구소에는 투르케스탄 주에서 발굴된 초기 철기시대의 인간 유해가 입수된 바 있는데, 분석 결과 해당 인골 또한 35-40세 여성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번에 발굴된 유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뒤통수 부위를 통해 두개골을 절개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같은 두개골 절개술은 시체를 미라로 만드는 것에 목적을 두었죠. 과거 유목민 사회에서는 지위와 영향력이 높은 인물이 사망하는 경우 먼 곳에서 생활하는 타 부족의 지도자들이 조문차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유족 입장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장기간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잘 보존해 둘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지요. 분석 결과 저희는 이 시체에 가해진 두개골 절개술이 해당 여성의 외형이 심미적 관점에서 최대한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바로 이를 위해 뒤통수 부분을 절개했던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방식의 두개골 절개술은 현재까지 오직 중앙/동부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발굴된 사카족의 유해들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본 연구소는 얼마 전 카자흐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제티수 주와 알마티 주 잠블 지역 소재의 삼스 촌에서 출토된 튀르크족 유물을 분석한 내용을 국제 학술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제티수 지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인골과 함께 순장된 말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또한 이슬람식으로 지어진 무덤에서는 청동 소재의 거울, 반지와 목걸이 등이 발견되기도 했지요. 이러한 점은 과거 유목생활을 했던 사카족과 튀르크족 사회에서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높은 지위를 가졌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는 부분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고대부터 여성들은 사회 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또 이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각종 역사적/민족지학적 자료들을 비롯해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고고학/인류학 발굴을 통해 출토되고 있는 다양한 유해와 사물들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고요. 특히 앞서 말씀드린 최근의 발굴 사례처럼, 당시 엄격한 예우를 갖춘 장례의식 속에 매장되었음을 알 수 있는 고대 여성의 유해는 과거 카자흐 유목민들의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누렸던 높은 지위를 고스란히 나타내 보이는 증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2013년 발굴된 '우르자르 공주' 유해 및 장신구들 (사진: archeok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