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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유공업에 바친 반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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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유공업에 바친 반세기
      채유공업에 바친 반세기
      15.06.2026
      원유는 현대 산업의 혈맥이라고 할 수 있다. 원유는 나라에 들어오는 외화의 큰 몫을 주며 나라의 동력자원으로, 공업생산의 기초로 된다. 원유는 모든 운수수단의 기본원천으로, 공업품 생산의 원료로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원유의 막대한 의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본 기사에는 이 중요한 분야에 근 반 세기를 이바지한 원로 양 다비드 겐나지예비치(Ян Давид Геннадьевич)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동의 포시예트 구역에서 거주하던 다비드 겐나지예비치의 부모들도 1937년에 기타 고려인들과 마찬가지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다. 그들은 구리예브 (현재 아틔라우 )주 박사이스키 ( 현재 마함베트스키 )구역 츠칼로보 촌으로 실려왔다.

      - 아버지가 강제이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한번은 그 시기를 회상하면서 첫해 겨울을 토굴에서 지냈는데 문이 천정에 있었다고 말했어요, 토굴의 주위에 눈이 둘러싸이면 문을 열수가 없었기에 그랬다고 합니다. 그 해에는 학교도 가지 못하고 다음 해에 학교를 건설하여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 다비드 겐나지예비치가 말했다.

      양 다비드는 1944년 11월 25일에 상기 츠칼로보 촌에서 태어났다. 1959년에 중학을 필하고 그 해에 구리예브 원유기술전문 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직업을 희망하지 않았는가하는 질문에 원래 노동계급의 출신이라서 그런지 노동과 연관된 직업을 전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추공 자격증을 받은 다비드는 서부 카자흐스탄 지질탐사 관리국 산하 <망그슬라크 원유가스시굴>트레스트로 파견되었다. 후에 트레스트는 노력(勞力)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다비드는 시추공 조수로 노동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양 다비드 겐나지예비치는 1964 ~ 1996년 기간에 우센, 제띄바이, 카라만듸스, 텡게, 카라꾸두크, 아릐스타놉까, 카라뚜룬, 잔부르시, 콤소몰스코예, 아르만 원유시굴장들에서 일하면서 시추공 조수, 시추공, 마스터, 엔지니어, 현장소장, 생산 책임자, 수석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왔다. 그동안 그림자 하나 없는 넓은 초원의 시굴장에서 뜨거운 햇볕에 그을리며 그가 시굴한 유정이 몇 개였던가! 다비드 겐나지예비치는 청춘시절에 나라에 필요한 ‘흑금’을 찾아내겠다는 욕망에 불타는 공산청년 동맹원으로서 모든 어려움을 견디여 내면서 동료들과 원유를 찾았다고 한다.

      - 그동안 가정을 이루었겠지요? 초원을 그렇게 헤매 다나면 아내가 될 아가씨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양 다비드 겐나지예비치는 이 질문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 우리는 유치원을 다닐 때 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요…

      - 아니, 그러면 80여년을 나란히 걷고 있다는 말인가요?
      - 예, 그런 셈이지요…

      박 알라 그리고리예브나(Пак Алла Григорьевна)는 결혼한 후 남편이 원유를 찾아 구리예브 주 초원을 앞뒤로 헤매였을 때도 몇 년간 그의 곁에 있었다. 사정없이 내리쪼이는 햇볕, 먼지가 푸석푸석 일어나는 길, 식수의 질 문제, 살림살이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합숙소 생활… 알라는 한 마디의 불만도 없이 남편을 따랐다 – 마치 데카브리스트 부인 처럼…(데카브리스트(Dekabrist)는 러시아어로 12월을 데카브리라고 한 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1825년 12월에 일어난 혁명이기 때문에 12월혁명당원(黨員)이라고도 한다. 데카브리스트 부인은 1825년 러시아 '데카브리스트의 난(Decabrist revolt)' 실패로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 혁명가 남편들을 따라 기꺼이 극한의 유배길에 오른 11명의 귀족 여성들을 일컫는다)

      자식 둘을 낳고 키우게 되자 구리예브 시에서 살면서 직업 ( 준의 (북한어 의료책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의사보다 한 단계 낮은 기술 자격을 가진 의료인 뜻한다))에 따라 직장도 다녔다. 부부는 아들과 딸을 키워 고등지식을 받도록 뒤받침해 주었는데 아들은 엔지니어, 딸은 경제 분야 전문가이다. 다비드 겐나지예비치와 알라 그리고리예브나는 손자 다섯과 증손자 둘을 두고 있다.
      양 다비드는 1996년 4월부터 유한책임회사 '카자흐투르크무나이' 합작회사에서 엔지니어-생태학자로 근무했다. 이것은 국내 최초의 카자흐스탄-터키 합작기업이다. 2007년에 은퇴하였으나 2015년까지 계속 일했다.

      다비드 겐나지예비치는 근 반세기를 중요한 분야인 원유 산업과 인연을 맺었었다. 그는 <망그슬라크> 산지에서 탄화수소 자원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1980년에 <명예 훈장>을 받았다. 그 외에도 그에게는 <카자흐스탄 원유 100주년>기념 훈장, <민족화합 20주년> 기념메달, 주) <카스무나이가스>사의 영예표창장, <카자흐투르크무나이> 유한책임회사 영예표창장 기타 많은 감사장을 보관하고 있다. 양 다비드 겐나지예비치는 2007년에 <카자흐스탄 민족 간 화합 기여 공로>에 대한 망그슬라크 주지사 수여 감사장을 받았다. 이것은 그가 악타우 <조선> 민족연합 열성자로, 그 후에는 오늘날까지 상기 연합 원로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여러가지 행사를 조직하여 민족 간 친선과 화합에 하는 기여를 높이 평가해 준 것이다. 양 다비드 겐나지예비치가 맡고 있는 원로회는 노인의 날에 노인들에게 선물도 나누어 드리며 시내 식목 작업에도 참가하며 차세대와 모임도 조직하면서 곤난한 시기에 이상 세대가 겪어 온 경험, 소중히 지켜오는 생활의 가치물을 전해주고 있다.

      남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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