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우리는 고려인 어르신 21명이 생애 처음으로 조국 방문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그 감동적인 여정이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소개한다.
소련 붕괴 이후, 대한민국은 중앙아시아 신생 독립국들과 관계를 빠르게 구축해 나갔다. 1992년 1월 28일,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30여 년 동안 양국은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해 왔다. 그러나 계약서나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도 존재한다. 바로 기억, 뿌리, 그리고 조국과의 연결이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에게 조국 방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특히 1세대와 고령층에게는 평생 간직해 온 꿈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2025년 4월, 알마티 고려민족중앙회(АКНЦ)는 ‘고려사람 고국 방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번 행사는 한반도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알마티 고려민족중앙회가 주도하고, 재외동포청, EASTAR JET 항공사, KORYOIN GLOBAL NETWORK, 고려일보 등 여러 기관이 함께 지원했다. 특히 홍범도기념사업회, 한국관광공사, 신한은행, 현대병원 등이 적극 협력해 성공적인 행사를 뒷받침했다.
4월 21일, 21명의 고려인 어르신들이 이스타항공편으로 한국으로 출발했다. 그중 최고령자인 최 니콜라이는 여행 당일 91세 생일을 맞아 주위를 더욱 감동시켰다. 항공사 측에서도 그의 열정을 존중하여 특별히 여행을 허락했다고 한다.
22일, 참가자들은 서울에 도착했다. 꽃다발과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맞이한 한국 관계자들은 전 일정을 통해 이들을 가족처럼 정성껏 대했다. 서울 시내 투어, 한강 유람선, 전통 한복 체험, 장류(된장·고추장) 제조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특히 한옥마을 방문과 전통음악 감상은 참가자들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참가자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려 노력했다. 특히 조상의 땅을 밟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이번 방문의 의미를 더욱 빛냈다. 91세의 최 니콜라이는 누구보다 활기차게 여행 일정을 소화하며, "오랫동안 꿈꿔온 고국 방문을 이루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장 우원식 의원과의 만남이었다. 고려인 후손인 우 의장은 “우리 모두는 같은 뿌리를 가진 형제자매다. 역사적 고난을 함께한 고려인들을 위해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만남은 참가자들에게 특별한 위로와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4월 25일, 참가자들은 다시 이스타항공에 올라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왔다. 비행기에는 수많은 추억, 따뜻한 선물, 그리고 짧지만 깊은 여운이 함께 실려 있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에는 10만 명이 넘는 고려인이 살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큰 기여를 하며 사회의 존경을 받고 있다.
‘고려사람 고국 방문’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뿌리에 대한 기억이자, 민족 간 우정의 확인이자, 무엇보다도 “우리는 잊히지 않았다”는 따뜻한 약속이었다.
이번 방문은 고려인 사회와 한국 사회를 다시금 굳건히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였다. 계약서나 통계가 아닌, 진심과 기억으로 이어진 인연. 바로 이것이 진정한 민간 외교이며, 공동의 역사를 잊지 않는 진정한 힘이다.
채예진, 한국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