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판을 치던 시기를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맛을 잃고 며칠 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힘들어하던 중,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병문안을 하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음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할린에서 먹던 메밀묵이었다…
사할린에서는 결혼식이나 환갑과 같은 집안 경사 때마다 메밀묵이 상에 올랐다. 어떤 가정에서는 새해 명절에도 묵을 만들어 먹곤 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이후로는 메밀묵을 몇십 년째 먹어보지 못했다. 녹두로 만든 묵이 시장에서 가끔 팔린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메밀묵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 내 소원을 말하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 글쎄요, 우리는 이 곳에서 녹두나 중국산 콩가루로 드문드문 묵을 만들어 먹는데 요즘 그 콩가루를 찾기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한번 알아볼게…
그런데 며칠 후에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배달원을 걸쳐 묵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말도 채 듣지 않고 친구가 전화를 끊었다. 한시간쯤 지나니 배달원이 묵을 가지고 왔다. 친구는 맛있는 간장양념까지 만들어 보냈다. 원래 묵은 완전히 식은 후에 먹는데 나는 아직 채 식지도 않은 묵을 바로 그 자리에서 먹기 시작했다. 메밀묵에 비해 색이 좀 밝았지만 꿀맛이였다. 나는 이런 친구가 내 곁에 있는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나는 이 사연을 역시 사할린에서 이주하여 와서 알마티에서 오래 살고 있는 신문사 이전 동료에게 이야기 했다.
- 아니, 메밀묵을 만들어서 알마티에서 팔고 있는 것을 몰랐어요?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우경애씨 아들 유리네 부부가 말입니다 – 친구가 말했다.
물론 내가 알리가 없었지, 우연히 묵에 대한 말이 나와서 알게된 것이지…나는 즉시 전화번호를 받았다. 일주일 후에 나는 묵을 주문했다. 묵을 들고 온 유리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말하는 것이였다:
- 저를 기억하지 못하세요, 류보위 알렉산드로브나? ( 나의 러시아 명)어머니가 부탁해서 <털보네>회사에 저를 취직시켜 주었지 않아요…
- 글쎄 30여년이 지났으니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그 때 내가 젊은이들 여럿을 취직시켜 주었거던…카자흐스탄에 들어온 첫 외국회사이니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직하려고 회사를 찾아왔지 – 민봉식 회장의<털보네>회사에서 내가 통역으로 근무했던 90년대 초기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우리가 처음 만났다. 그후부터 나는 묵이 먹고 싶으면 종종 주문했으며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나이도 많지 않은 중년의 부부가 민속음식 제작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이 것이 자랑스러웠다. 어떻게 이 요리제작업을 시작하게 되였는지 알고 싶었다. 새해 전야에 이 겸손한 가정부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통화끝에 유리가 나의 제의에 동의했다.
- 유리, 어떻게 묵제조업을 시작하게 되였지?
- 아시다싶이 어머니가 2년전에 돌아가셨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에 설날이면 꼭 묵을 만들어 우리도 먹고 이웃도 대접했습니다. 나는 묵을 만들어 한국가게와 카페에 공급하고 주문자들에게도 팔면 어떻겠는가고 안해 위올레따와 의논해 보았습니다. 더군다나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같이 묵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다 잘 알고 있거던요. 아내가 나의 의도를 받들었습니다.
- 묵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몇마디 말해 주세요.
- 원래 두부, 묵을 비롯하여 조선전통 요리는 품이 많이 드는 음식입니다. 묵을 세가지 원료 즉 도토리, 녹두, 메밀로 만드는데 우리가 메밀로 만드니 메밀묵을 끓이는 과정을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메밀을 물에 ?담구어 떫은 맛을 우려냅니다. 다음 메밀을 통째로 갈아 물을 부어가며 채로 걸러낸 다음 웃물을 따라내고 밑에 깔아앉은 앙금으로 묵을 쑵니다. 그런데 앙금에 첨부하는 물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을 조절하면서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면서 끓입니다. 다음 그릇에 부어 식히면 묵이 됩니다.
- 현재 기술이 발전되였는데 묵제조과정의 어떤 부분이 기게화되지 않았나요?
- 한국에서도 전과 같이 다 수공이더라구요, 끓일 때 묵을 젓는 장치가 있더라구요, 오래 저어야 하니 손에 부담이 많이 가기 때문이겠지요. 하여튼 우리의 경우에는 위올레따가 기본 작업을 맡아 하게 되지요, 저는 직장을 다니니까요.
- 어디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나요?
-<이모네>와 <명가> 카페에 공급하는데 카페에서는 묵으로 요리를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대접합니다. 그리고 <두레>, <다사랑>, < 미코> 가게들에서 우리의 묵을 팔고 있습니다. 전 유리네 부부는 또 쌀로 과주리 (한과) 만드는데 최근에는 과주리 리에 가지각색의 건 과실을 넣어 보기에도 곱고 입맛도 더 돋구어 준다.
…전 유리는 알마티 동력대학을 필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전공한 직업에 따라 근무하지 않고 <털보네>회사 주방에서 일하다가 한국기독교 교회의 파견으로 부산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한글도 배웠다. 다음 서울에 있는 카자흐스탄회사에서 2년간 근무했는데 회사는 카자흐스탄, 러시아에 한국 차를 판매하는 비지니스를 하였다. 현재는 알마티 < 로떼 - 라하트>회사에서 운송부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전 유리의 할아버지에 대해 몇마디 써야할 것이다. 그의 친할아버지 전창렬은 3.1운동에 참가한 죄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3년간 감옥살이를 한후 사하린으로 실려갔다. 할아버지는 그리운 고향 강원도 양양에 끝내 귀국하시지 못하고 사하린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의 결정에 의해 2011년에 전창렬 열사께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전 유리와 유 위올레따는 자식 넷을 거느린 다자녀 가정이다. 우리 시대에 비교적 드문 현상이다. 보통 가정에 지식이 둘 그리고 많다면 셋인데…그러나 유리는 집안이 떠들썩하고 자식들이 많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생을 좋아한다고 한다. 아들 둘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제각기 전공분야에서 근무하며 딸애는 경제고등학교에서, 막내 아들은 제 105호 영어전문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얼마전에 결혼하였다.
끝으로 메밀묵의 장점에 대해 말한다면 메밀은 다른 곡식에 비해 단백질이 많아 비타민 B1, B2, 니코틴 산이 포함되여 당뇨병이나 기타 성인병에 좋다고 한다.
전통적 민속음식으로서의 귀중한 가치를 되살리고 있는 전 유리와 유 위올레따 부부께 앞으로도 성과를 바라는 바이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