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졌듯 오늘날 카자흐스탄에는 공식적으로 124개의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다. 현재 약 2천만 명에 달하는 전체 카자흐스탄 인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카자흐 민족을 제외하고 6백 만명 가량의 국민이 여러 다른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마다의 유구한 전통과 고유한 문화를 지켜가며 살아가는 이들은 그와 동시에 하나된 카자흐스탄 국민으로서 함께 공존하며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카자흐스탄 사회 속 화합 및 평화 실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주하는 12만 명의 고려인들 또한 카자흐스탄의 국민으로서 국가의 독립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해오고 있다. 지난 5월 1일 ‘카자흐스탄 민족화합의 날’을 앞두고 현지 매체 Liter.kz가 고가이 막심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책임비서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지인들의 시각에서 풀어본 카자흐스탄 고려인들 및 한민족에 대한 궁금증과 고려인협회의 활동 이모저모에 관하여 취재한 내용을 싣는다.
-막심 씨, 먼저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귀 협회가 그동안 카자흐스탄의 사회·문화적 방면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우리 협회의 역사는 지난 1990년 ‘전국 고려인 문화원 협회(РАККЦ)’의 출범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대 협회장으로는 당시 저명한 과학자셨던 한 구리 보리소비치 교수께서 선출되셨지요. 이 때를 기점으로 카자흐스탄 내 모든 주요 도시들에서 고려인 문화센터들이 활발한 발전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국 고려인 문화원 협회는 국내에서 활동하던 당대의 저명한 고려인 학자들과 국가 공훈 인사 및 사회활동가들, 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을 하나로 연대 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협회는 또한 한민족의 언어·역사·문화·전통 및 풍습을 배우고 보존함과 더불어 고려인들의 문학 및 예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도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강제 이주민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현재 벌써 카자흐스탄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려인 3-4세대를 구성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을 모국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께서는 일찍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었던 극동 땅을 타의에 의해 하루 아침에 뒤로 한 채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곳을 향해 떠나야만 했던 사연에 대해, 굶주림과 추위로 가득했던 그 공포의 여정에 대해 누누이 우리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이 밟게 된 땅 위에서 우리의 선조들께 연민을 보이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카자흐 토착민들, 특히 그 중에서도 형편이 넉넉치 않음에도 자신들 앞에 나타난 이방인들을 따뜻이 환대하며 마지막 남은 빵 한조각까지 함께 나누었던 평범한 카자흐 민중들의 온정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요.
우리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의 활동 목적은 오늘날 카자흐스탄 사회의 발전과 안녕 증진을 위해 다양한 사회 공익사업 및 교육 프로그램, 문화복지 행사 등을 다방면으로 기획·추진하고 이를 진행함에 있어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에 있습니다.
-고려인 이주민들이 처음으로 카자흐스탄 땅에 나타난 것은 언제였나요?
1929년 당시 소련이 진행 중이던 벼농사 발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20명의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 땅을 밟은 것이 시초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카자흐스탄에 고려인들이 본격·대대적으로 유입된 시기는 1937년 가을로, 이는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 정책 시행의 결과였습니다.
김 게르만 카자흐 국립대 교수의 연구논문 ‘한민족 이주사(История иммиграции корейцев)’에 따르면 현재 한반도에만 6천 5백만 명 가량의 한민족이 살고 있으며, 그 외 전세계 곳곳에 5백만 명 이상의 재외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백만 명의 재외한인들 중 46만 명 가량은 현재 CIS 지역에서 살아가는 고려인들이며, 그 중 12만 명이 카자흐스탄에 정주하고 있는 것이지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항상 한민족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23년부터 현재까지 발행되어오고 있는 주간 신문 <고려일보>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1932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세계 최초의 한민족 극장으로 설립되어 오늘날에는 알마티에서 ‘한반도 외 전세계 유일 국립 한민족 극장’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채로 과거와 변함없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이 있고요.
-현재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나요?
우리 협회의 활동은 현재 카자흐스탄 민족회의가 국내에서 펼치고 있는 모든 민족정책 및 그와 관련된 공익사업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우선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는 카자흐스탄 민족회의 산하에 있는 모든 민족 문화단체들과 긴밀이 협력하고 있으며 국민의 카자흐어 구사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공익행사 등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지요. 그 예로 지난 해에는 카자흐어 경시대회를 진행하여 우승자들에게 카자흐어 특별학습 캠프 참가를 통해 뛰어난 강사진으로부터 보다 깊이 있는 카자흐어 학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바 있습니다.
근래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에서 진행한 또 다른 공익 활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2024년 봄,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생한 홍수로 인해 많은 지역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카자흐스탄 민족회의가 진행한 공익 프로젝트 ‘주롁쩬 주렉케(Жүректен жүрекке –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에는 수해 물자 지원을 위한 거점들이 세워지고 총 1천 5백 톤 이상에 달하는 비상식품 및 일용품들이 모아졌으며 1만 2천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와 다른 여러 민족 문화단체들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재난구호금으로 모금된 성금액은 7억 텡게 이상입니다.
우리 협회는 또한 카자흐스탄 내 대한민국 자본 투자 유치의 확대를 위해서도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다양한 합작 사업 및 공익 프로젝트들의 추진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국내에서 열렸던 카자흐스탄-한국 양국 정상 간 만남 당시 개최되었던 국제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른바 ‘K-Silk Road’라는 전략 프로젝트의 실현 방안에 대한 논의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중앙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카자흐스탄을 통해 다양한 무역 및 경제 협력, 공동 투자 프로젝트 등을 향한 새로운 기회들이 마련되었으며 사업·의료·교육 분야 협력에 대한 여러 양해각서가 체결된 바 있습니다. 근래 들어서는 특히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를 통해 많은 고려인 경영인들이 한국의 아시아나, 코트라, 재외동포재단 등과 파트너 관계를 맺는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한편 대한민국 측에서도 카자흐 민족이 과거 1930년대 일어났던 강제이주 당시 현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선조들인 한민족 동포들을 따뜻하게 환대하여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함을 표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 협회와 카자흐스탄 민족회의 산하의 다른 민족 문화단체들과의 협력 및 협업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오늘날 카자흐스탄 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민족 문화단체들은 카자흐스탄 민족회의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 문화단체들 간의 협업 및 상호작용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요. 가령 카자흐스탄 민족회의가 매년 진행하는 총회에서는 국내 각지에서 활동하는 민족문화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카자흐스탄 국민 통합이라는 취지에 부합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나 행사를 추후 함께 진행할 것을 논의하기도 하지요.
또한 카자흐스탄 전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민족 문화단체들은 각 지역 별로 운영되는 카자흐스탄 민족회의 산하 ‘친선의 집’을 거점으로 하여 사실상 매일 만남을 가지며 해당 지역 공동체와 관련된 각종 사안들을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을 누리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에서는 기존 카자흐스탄의 명절을 제외하고 한민족 문화와 관련하여 어떤 특별한 날들을 기념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추석과 설날이 가장 인기 있는 민족 명절입니다. 추석은 추수감사의 의미를 갖는 날로서 전통적으로 음력 8월 15일, 그러니까 주로 9월경 기념됩니다.
설날은 음력 새해의 첫날을 기념하는 명절로서 주로 2월 또는 1월의 끝자락에 돌아오지요. 이날에는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을 찾아 뵙는 것이 관례이며,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른들은 자식 세대로부터 세배를 받고 세뱃돈이나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전국적인 규모로 열리는 한민족 문화 축제 같은 행사도 있나요?
전국적 규모로 개최되는 K-Pop 페스티벌로는 ‘K-POP STAR.KZ’가 있습니다. 이 행사는 한국의 현대 음악과 춤에 열광하는 젊은층으로부터 매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죠. 이 밖에도 매년 한국 문화 축제가 아스타나, 알마티를 비롯해 국내 여러 지역들에서 개최되고 있고요. 또한 알마티에서는 ‘남성’, ‘비둘기’ 등 인지도 높은 고려인 합창단 및 무용단들과 다양한 초청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꾸며지는 설날 기념 갈라 콘서트가 매년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민족 문화단체들이 오늘날 국내 민족간 관계 발전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지난 세기 일어났던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카자흐스탄 땅에서는 124개의 다양한 민족들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모든 민족들은 각자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영위하는데 있어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인 우리 모두는 카자흐스탄의 한 국민으로서 사회 속 평등과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성실히 살아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오늘날 국제 무대에서 민족간 화합, 국가의 지속적 발전, 안정 및 번영의 본보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민족회의 또한 사회 속 화목과 단합 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의 카자흐스탄 국민’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Liter.k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