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8일,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Пак Иван Тимофеевич) 교수의 95세 생신 기념하는 축하의 밤이 따뜻한 분위기 속에 열렸다. 그는 카자흐스탄 과학아카데미 회원이자 '파라삿(Парасат)’과 ‘쿠르멧(Құрмет)’ 훈장 수훈자이며 고려인 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 교수는 1930년10월4일, 구소련 연해주 부뎐니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자흐스탄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인 사회운동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올해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며, 젊은 세대의 교육과 인재 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지혜와 인간애,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는 놀라운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를 아는 이들은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진정한 학자이자 어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박 교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백과사전』 편찬 과정에서 자신의 학문적 열정과 인간적인 따뜻함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이 프로젝트는 카학(НТО «КАХАК»)의 가장 방대한 장기 사업으로, 그 안에는 기쁨과 피로, 성취와 좌절이 모두 담겨 있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박 이반 교수는 ‘’가장 의미 있고 배움이 많은 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바로 불신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런 책은 꼭 필요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조차도 처음에는 의구심을 보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놀란 것은 박 이반 교수가 얼마나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백과사전의 구조를 설계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직접 수집하고 꼼꼼히 정리했으며, 모든 세부 사항과 출처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그렇게 해서 끝없는 정보의 바다를 질서정연한 학문적 업적으로 다듬어냈다. 무엇보다도 각 인물에 대한 그의 태도는 가족을 대하듯 따뜻했다. 그 진심 어린 시선 덕분에 이 백과사전은 단순한 참고서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와 인간미가 살아 있는 기록이 되었다.
시간은 그의 노력을 증명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백과사전』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이미 학자들과 독자 모두에게 인정받은 기념비적 연구 성과다. 이 책은 과학의 언어로 쓰였지만, 그 근원에는 인간의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부른다.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의 가슴으로 쓴 백과사전’’이라고.
그런데 이반 티모페예비치의 가장 놀라운 본질은 단연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 언어에 대한 사랑, 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한 사랑…
그는 회고록과 역사서를 좋아하고 산악 스키를 즐기며, 오래된 영화를 혼자 조용히 보기를 즐긴다. 그 속의 분위기와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 알마티 (옛 알마-아타)를 사랑하고, 또한 조국인 한국을 진심 어린 자부심으로 사랑한다.
많은 이들이 목격했다.
그가 얼마나 끈질기게 카자흐스탄 학자들의 한국 학술회의 및 포럼 참여 기회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재능 있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드러낼 기회를 갖는 것이었다.
박 교수는 사람과 소통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나이 많은 이와도, 젊은이와도, 동료와도, 낯선 사람과도,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한다. 그는 누구에게나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의 가치를 보고 그 안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일깨워준다.
그의 비결은 ‘듣는 능력’에 있다.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필요할 때는 조용히 도와준다.
박 이반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지만, 언제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이유는 의무감이 아니라 함께 있고 싶어서다.
그에게는 보기 드문 덕목이 있다. 바로 따뜻한 선함이다.
그는 누구를 비난하지 않는다. 심지어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도 그저 부드럽게 이렇게 말한다.
‘’조금… 이상한 사람이네’’…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의 95번째 생신 기념 콘서트는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공연의 연출자이자 사회자인 차 유리(Юрий Цай) 감독은 콘서트 제목을 「박의 공리(Аксиома Пак)」로 정했다.
‘공리(Axiom)’란 증명이 필요 없는 진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그 말처럼 이반 티모페예비치 교수의 삶 자체가 하나의 진리임을 모두가 느꼈다.
그는 여러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다. 유년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언제나 노력과 명예 그리고 진실의 길 위에 있었다.
공연의 화두는 ‘박(朴) 씨’였다. 그의 성 (姓)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박’ 씨의 기원은 고대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마을 사람들이 신성한 샘 근처에서 박 모양의 큰 알 하나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바로 신라의 첫 임금 ‘혁거세(赫居世)’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알의 모양이 조롱박같이 생겨서 성을 박으로 해서 이후 ‘박(朴)’이라는 성씨의 유래가 되었다.
그 뒤로 조선시대 생활 속에서는 조롱박으로 만든 그릇, 즉 바가지가 등장했다. 이는 삶을 담는 그릇이자 공동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朴’이라는 한자는 ‘소박하다’, ‘순수하다’를 뜻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의 모습이다.
겸손하고 따뜻하며 진솔한 사람.
공연 중간에는 작은 퀴즈 이벤트도 열렸다. 생신 주인공에 대한 질문이 무대에서 던져지면 관객들은 즐겁게 손을 들고 답했다. 정답을 맞친 사람에게는 상징적인 선물로 작은 바가지가 전달되었다. 그 선물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이반 티모페예비치의 소박함과 따뜻함을 상징하는 마음의 선물이었다.
콘서트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알마티 고려민족중앙회의 의뢰로 <고려일보> 편집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부끄러운 이반 티모페예비치>>가 상영되었다. 영화 제목 속 ‘부끄럽다’는 말은 단순히 수줍음이나 겸손함을 의미한다. 그 단어 하나에 이반 티모페예비치 교수의 인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과학계에서의 거대한 업적과 널리 알려진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가 자신에 대해 한 가지 후회를 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박 교수의 후회는 놀랍게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후회는 진정한 학자와 교육자만이 품을 수 있는 고백일 것이다.
그 겸허함과 끊임없는 자기성찰이야말로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 교수의 인생을 하나의 '공리(公理, Axiom)', 즉 증명할 필요 없는 진리로 만들어 주는 힘이었다.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 교수의 주요 업적과 수상 경력
박 이반 티모페예비치 교수는 카자흐스탄 고려학회 «카학»(НТО «Кахак»)의 창립 멤버이자,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회장으로 재임하며 고려인 학문 공동체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또한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한반도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으로 네 차례 활동했으며,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원로회의 의장(2013년~)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카자흐스탄 국립과학아카데미 명예회원(2015), 러시아자연과학아카데미(RAEN) 정회원(1995)으로 선출되어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박 교수는 평생에 걸쳐 175편의 학술 논문, 17건의 발명 저작권, 20건의 해외 특허를 남겼으며, 카자흐스탄 정보·계산기술연구소에서 수십 년간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왔다.
그의 업적은 다수의 국가훈장으로 이어졌다.
-쿠르멧 («Құрмет») 훈장 (2011)
-제2차 세계대전 근로공훈 메달 (1946)
-노동훈장 (1985)
-카자흐스탄민족회의(АНК) 금메달 (2016)
-대한민국 동백장(«Донбэкчан») (2004)
-그리고 2022년,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령에 따라 ‘파라삿(Парасат)’ 훈장을 수훈했다.
파라삿 훈장은 과학·문화·문학·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거나,
국가의 정신적·지적 잠재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최고 영예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