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에 고객 리뷰는 상품과 서비스를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찾을 때는 여전히 입소문이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돈 비탈리 아나톨리예비치 (Дон Виталий Анатольевич) 의사와 만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입소문 덕분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저명한 고려 역사학자 김 게르만 교수의 추천을 받고, 우리는 대통령 직속 중앙임상병원 (일명 ‘소브미노브카’/ Совминовка)에서 일하는 외상외과 및 수기요법 전문가인 그를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를 신뢰하고 있었고, 사실 우리는 그의 치료를 받고 나서 목뼈에서 들리는 시원한 '우두둑' 소리와 치료 후의 가벼운 느낌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 비탈리 의사는 단순한 교정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의사였다. 따라서 우리가 기대했던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돈 비탈리 아나톨리이예비치는 알마티 출신으로, 카자흐인 어머니와 고려인 아버지를 둔 가정에서 성장했다. 부모님 권유로 의학의 길을 걷게 되었고, 대학생 시절 응급의료병원에서 근무하며 첫 멘토들을 만났다. 아만갈리예프 다니야르 바흐토비치 교수와 알림자노프 아스카르 카심하노비치 교수는 그에게 외과학에 대한 애정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외과 수술만으로는 환자를 완전히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보다 포괄적인 의료 접근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외과학 이회에 외상외과, 혈관외과, 신경학 등 배웠다.
-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병리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원인을 정확히 찾아 치료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는 미세수술 전문가인 문 트로핌 니콜라예비치 교수로부터 신경학의 기초를 배웠으며, 최고 신경병리학자 중 한 명인 김 이고르 태운오비치 교수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수기요법과 운동학 (키네시올로지)을 독학으로 익히며, 통증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신경, 근육, 혈관계 그리고 경락 (기 (氣)의 흐름)과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오직 그것이 불가피한 경우여야 합니다.
비탈리 씨는 환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수술 자체가 몸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치료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강조한다.
- 치료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환자는 고통을 견디며 꾸준히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료입니다.
그는 운동, 침술, 근막 이완 요법과 같은 자연 치유법이 약물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입니다. 가만히 누워서 약만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돈비탈리는 의료 기술의 발전을 인정하면서도 환자와 직접 소통하며 손으로 치료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 12번 병원과 시즈가노프 국립심장외과센터에서는 손으로 진료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스승들은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했고, MRI없이도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단순하다. ‘’올바른 진단이 올바른 치료를 결정하며, 이것이 환자의 회복을 보장한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몸과 마음을 함께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을 지켜오고 있다. 그의 인생 철학은 ‘’선을 행하되, 이를 물에 던져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비탈리 씨는 과거를 회상하며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 젊었을 때, 유명한 내과 의사 보보리킨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교수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믹스커피 ‘3 in 1’ 마시고 있었는데, 보보리킨 교수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비탈리야, 너는 도대체 무슨 쓰레기를 마시는 거냐? 커피는 향이 있어야 하고, 직접 끓여야 제대로 된 커피지. 네가 마시는 건 쓰레기다.’ 그 때 한 사람이 진료실로 들어왔습니다. 보보리킨 교수는 그를 보자마자 ‘’비탈리야, 이 사람은 내 환자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어요. 그는 내과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였습니다. 보보리킨 교수는 환자의 걸음걸이와 외모만 보고도 그가 자신의 환자임을 알아챘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돈비탈리는 한때 미니 축구팀 ‘카이라트’에서 팀 닥터로 활동했다. 선수들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훈련 전에 항상 그들의 몸을 충분히 준비시켰다. 인대와 힘줄을 먼저 풀어준 후 훈련을 시작했고, 훈련 후에는 반드시 스트레칭을 했다. 선수들을 준비 운동 없이 경기장에 내보내는 일은 절대 없었다.
- 운동 전에 충분한 워밍업을 해야 인대가 유연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부상을 줄이고, 운동으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비탈리 아나톨리예비치의 할아버지는 크즐오르다 인근 유명한 고려인 집단농장 ‘아방가르드’에서 존경받는 의사였다. 할아버지 이름은 돈기동이었으며, 본관은 북한의 단천돈씨였다. 할아버지는 의학을 공부하고 침술로 사람들을 치료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바로 다음 날, 알마티에서 그의 손자인 비탈리 씨가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가 일했던 ‘아방가르드’에 가본 적이 없으며, 침술 도구나 사진 같은 유품이 남아 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이제 그는 스스로 새로운 세대의 일부가 되었다. 소비에트 시대가 아닌, 카자흐스탄 시대의 가족.
그는 고려인이고, 아내는 카자흐인이며 치과의사이다. 두 사람은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
- 아이들이 부모의 길을 따를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가족이 함께 살아갈 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의사의 손은 환자를 치유한다.
한 블라디미르, 남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