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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극장’부터 ‘고려일보’까지 – 카자흐스탄 속 여러 민족들의 문화/예술과 매체 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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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독일극장’부터 ‘고려일보’까지 – 카자흐스탄 속 여러 민족들의 문화/예술과 매체 ➂
      ‘독일극장’부터 ‘고려일보’까지 –  카자흐스탄 속 여러 민족들의 문화/예술과 매체 ➂
      11.06.2025
      오늘날 카자흐스탄은 공식적으로 124개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이처럼 많고 다양한 카자흐스탄의 소수민족들은 저마다의 특색 있는 전통과 문화유산을 어떠한 방식으로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러한 문화적 자랑거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지난 호들에서는 위구르, 독일, 폴란드, 타타르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어 이번 편에서는 카자흐스탄의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우크라이나 디아스포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아제르바이잔인

      카스피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이웃지간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 그렇게 가까운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카자흐인들과 아제르바이잔인들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두 민족 모두 튀르크족에 속한다는 점을 비롯해 그에 따른 언어·문화·풍습 및 종교의 유사성, 그리고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원이었던 역사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카자흐인들과 지리·정서적으로 가까운 아제르바이잔 민족은 오늘날 약 15만 5천 명에 달하는 디아스포라를 카자흐스탄에 두고 있다. 이는 현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의 0.7%에 해당하는 규모로, 2025년 기준 카자흐스탄에서 8번째로 큰 민족집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근대 들어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카자흐 땅에 유입된 시기는 1900년대 초반 무렵으로, 이 때에는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이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아제르바이잔 본토를 떠나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카자흐스탄 땅에서 이들의 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은 다른 여러 소수 민족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비에트 정권의 강제이주 정책을 통해서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인들에 대한 소련 정부의 강제이주 정책은 1930년대보다 이른 1920년대 초중반부터 이미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 소련이 기존의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자 이에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켰던 민족 독립 운동가들에게 유배형이 내려지게 된 것이 그 시발점이다. 이들에 대한 강제이주는 이 때부터 194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집행되었으며 유배 지역 또한 카자흐스탄의 서부부터 중북부, 남부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형성되었다. 그 중 1937년, 그리고 1944년부터 1949년 사이에 집행된 강제이주 시기에는 아제르바이잔 본토보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에서 끌려온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각 시기별로 강제이주 당한 아제르바이잔인들의 수와 관련한 통계는 당시 정확히 기록되지 않아 상세한 수치를 확인할 수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문헌에 따르면 1939년 인구조사 당시 카자흐 땅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의 수는 1만 3천여 명이었으며 1959년께에는 그 수가 3만 8천 명까지 증가했다. 또한 강제이주 시기 이후인 1950년부터 1980년대 사이에는 약 1만 5천 명에 달하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추가적으로 카자흐스탄에 유입되었는데, 그 중 대다수는 카자흐 영토의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서 석유 시추공으로 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주해 온 이들이었다.

      소련 붕괴 후 1990년대 초반에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유전 붐이 일어나면서 카자흐스탄에서 살아가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본국으로 대거 떠나가는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카자흐스탄 내 이들 디아스포라의 규모가 급감하기도 했으나, 이후 다시 증가세에 접어들며 2000년대 들어 인구 10만명 대에 진입하고 근래에는 15만명을 넘어서며 오늘날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늘고 있는 소수민족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다른 민족들과 동일하게 카자흐스탄 공화국 민족회의 소속 아래 고유의 민족문화 보존 및 발전을 위한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2년부터 활동을 해오고 있는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민족 문화센터 ‘Turan’과 ‘아제르바이잔인 협회(Ассоциация азербайджанцев)’가 있으며 현재 잠블 주, 파블로다르 주, 망기스타우 주, 코스타나이 주, 알마티 주 등 국내 각지에 지부를 두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체적인 매체의 경우 지난 2007년부터 아제르바이잔 민족신문 ‘바탄(Ватан – 고국)’ 및 ‘Turan Express’가 아제르바이잔어·카자흐어·러시아어로 발행되었으나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전후로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공연예술 방면에서는 고려극장이나 독일극장처럼 아제르바이잔 디아스포라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민족극장은 없지만, 카자흐스탄 각지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문화센터들에 소속된 형태로 여러 공연단들이 아제르바이잔 전통 음악과 무용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그 중 국내외 다양한 행사들에 활발하게 참가하며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공연단으로는 ‘바하르(Бахар)’가 있는데, 이 단체의 특별한 점은 바로 아제르바이잔 민족문화 센터 소속임에도 아제르바이잔인들 뿐만 아니라 고려인, 카자흐인, 러시아인, 위구르인, 터키인 등 다양한 민족 출신의 인재들을 단원으로 두고 있으며 이들이 선보이는 무대 또한 아제르바이잔 전통 음악과 춤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코카서스(캅카스) 민족들의 공연예술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처럼 본 공연단이 표방하는 민족·문화적 다양성은 아제르바이잔 디아스포라를 넘어 오늘날 카자흐스탄 사회가 기치로 내걸고 있는 ‘민족간 조화와 화합’이라는 가치관과 부합하기에 특히나 돋보이는 부분이며, 국제 무대에서 카자흐스탄의 위상을 알리는 것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민속춤 경연대회 ‘Folk of Dance’에 카자흐스탄 대표로 출전한 ‘바하르’ 무용단은 ‘혼합팀’ 부문에서 그랑프리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바하르’의 단원들과 관계자들은 수상 당시 큰 기쁨을 표하며 “국제 사회에서 한 국가의 얼굴, 즉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대 요소는 정치보다도 스포츠, 문학, 예술”이라고 강조하면서 “본 대회에서 선보인 무대를 통해 우리는 카자흐스탄이 많은 인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민족들이 화합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국가임을 증명해 보였다. 시상대 위에 올려진 우리 카자흐스탄의 국기를 보며 매우 큰 자긍심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러시아에서 개최된 세계 민속춤 경연대회에서 카자흐스탄 대표로 출전해 ‘혼합팀’ 부문 그랑프리상을 수상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문화센터 소속 무용단 ‘바하르’


      우크라이나인

      2025년 기준 약 37만 2천 명으로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민족. 오늘날 카자흐, 러시아, 우즈벡 민족 다음으로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처음으로 카자흐스탄 땅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1768년 무렵으로,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대항해 일어났던 농민 반란에서 진압된 이들이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으로 유배된 것이 그 시초로 기록되어 있다. 얼마 뒤인 1775년 경에도 우크라이나의 자포로자 코사크(Запорозькі козаки – 우크라이나 드네프르강 주변의 자포로지 지역을 활동 거점으로 삼았던 군사집단 )들이 제정 러시아 정부에 의해 추가적으로 북부 카자흐스탄 땅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이후 1894년 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카자흐 땅으로 이주하는 우크라인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였고, 이는 카자흐스탄의 우크라이나 민족 공동체가 기반을 공고히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렇게 이 시기부터 우크라이나 이주민들은 시베리아 서남부 지대와 맞닿아 있는 카자흐스탄의 북부 지역에 이른바 ‘세라 우크라이나(Сіра Україна - 회색 우크라이나)’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인 밀집 지역을 형성하게 된다.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한 이후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 사이에는 소련 정부의 집단화 정책 강화에 따라 부통 및 중농 계층과 지식인 계층이 우크라이나에서 카자흐 땅으로 대대적인 이주를 당했으며 1939년부터는 서부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합병되면서 그 안의 여러 지역들로부터 1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추방 당했으며 그 중 대부분이 카자흐스탄의 중북부 지역들로 유배되었다.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소련 정부의 강제이주는 195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1944년부터 1952년 사이 카자흐스탄 땅으로 유배된 이들의 수는 20만 3천여 명에 달했다. 한편 카자흐스탄에 우크라이나인들의 유입이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진 시기는 강제이주 이후 카자흐스탄의 중부와 북부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산업화와 농지 개간 활성화가 이루어지던 1950년대와 1960년대였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우크라이나인 공동체는 우크라이나 민족 협회인 ‘우크라인치 카자흐스타누(Українці Казахстану – 카자흐스탄의 우크라이나인들)’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20개 이상의 우크라이나 문화센터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디아스포라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매체로는 1994년 창간한 이래 현재까지 발행되고 있는 민족 신문 ‘우크라인스키 노비니(Українські Новини – 우크라이나 소식)’가 있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디아스포라의 생활과 고국 소식, 카자흐스탄 내 우크라이나 문화원들과 여러 다른 민족 문화단체들 간에 이루어지는 교류 및 협업과 관련된 내용을 우크라이나어 및 카자흐어로 다루고 있다.

      한편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인들이 보유한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과거 ‘우크라이나 가톨릭교회’에 대한 소련 정부의 박해와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의 희생양으로서 1930년대 후반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된 우크라이나 사제들에 의해 세워진 ‘아포스톨스카야 아드미니스트라투라(Апостольская Администратура - 공식적인 가톨릭교회 주교구가 세워질 수 없는 특정한 상황으로 인해 임시적으로 구성된 조직단위)’가 있다. 1955년부터 소련 정부는 여러 정치범들과 더불어 카자흐스탄에 유배/수감 중에 있던 우크라이나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을 풀어주기 시작했으나, 이들을 석방하는 대신 고국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것은 불허했다. 이에 이들은 기존 유배지에서 지하 교회를 조직하여 종교활동에 돌입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카라간디에서 카자흐스탄의 초대 우크라이나 가톨릭 공동체가 탄생하였다.

      카자흐스탄의 우크라이나인 디아스포라는 이를 계승하여 오늘날까지 카라간디, 아스타나, 알마티, 파블로다르, 삿파예프, 쉬제르티 등지에 우크라이나 가톨릭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곳으로 아스타나 소재의 ‘성 요세프 교회(церковь Святого Иосифа Обручника)’를 꼽을 수 있다.
      한편 카자흐스탄 서부 도시 악타우에는 우크라이나 민족의 위대한 문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타라스 셰우첸코(Тарас Шевченко, 1814~1861)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타라스 셰우첸코는 제정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 민족의 자주권과 우크라이나어의 부흥을 위한 운동에 매진하다 1847년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되었던 인물로, 악타우 시는 과거(1961년부터 1991년까지) 그의 성을 딴 도시명 ‘셰프첸코’로 불렸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카자흐스탄 내에서 발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민족신문 ‘우크라인스키 노비니’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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