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에 극동 조선사범대학이 폐쇄되면서 모든 서류와 자산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정치적 이유'로 대학의 행정팀이 크즐오르다로 옮겨지면서, 도서관에 있던 조선 서적들도 함께 옮겨졌다. 이 고서들은 현재 코르킷 아타 명칭 크즐오르다 국립대학 과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 희귀한 책들은 많은 방문객들에게 감탄을 자아낸다.
목판술은 영국의 판화가이자 조류학자인 토머스 뷰익(1753–1828)에 의해 발명되었다. 목판술(xylography)은 그리스어로 'xylon'은 나무, 'grapho'는 그리기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는 나무 판에 그림을 새겨서 물감을 입힌 후 종이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보급되었다. 19세기 말까지 조선에서는 중국의 고전 필체가 공인된 공식적 의사소통 수단이었기에, 조선의 목판본도 대부분 중국어 (한자)로 씌여 있었다.
크즐오르다 국립대 도서관에 보관된 목판본 책들은 얇은 당지 (볏짚을 원료로 만든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표지는 두꺼운 노란 종이로 장식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책은 다섯 군데가 붉은 실로 묶여 있으며, 일부 장과 표지는 물에 젖어 훼손되었고, 책 내부에도 습기에 의한 얼룩이 남아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극동 지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동방필사 연구소에도 조선 관련 목판본 10권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들 모두 번역 및 연구되었다.
크즐오르다 국립대 과학도서관에는 27권의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저서인 광서은제 (Кван Со Ын Це; IV 권 및VII 권)의 평안도의 주요 도시인 평양과 안주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 붙인 「평안도 지리」, 「조선 법 선집」(1897–1910), 공법회동의 「국제법에 대하여」(1897), 담채와 후재가 쓴 「공자에 대한 해설」의 일부, 강합의 저서 「명왕조 시대 왕의 정령」, 삼산의 작품 「명단, 서한, 표창장, 공식 서류」(17–18세기) 등이 있다.
도서관에는 또한 오형과 이고의 「종교-천문학 철학의 기본」과 16~19세기의 작가들의 문학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학자이자 고위 관료였던 윤봉조 (포암;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작품, 계구암, 태호 (홍원섭)의 작품, 학주, 주보 (황문)의 저서, 수쯰 (리원수), 명우쯰, 운석 (18세기), 우복 (16~17세기), 보만재 (18세기), 논포 등 다양한 작가들의 저서를 포함하고 있다.
종종 놀랍고 흥미로운 것들은 가까이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이 목판본들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커서 세계 어느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도 빛날 만한 보물이다. 다행히도 이 책들은 여러 상황 덕분에 우리에게 보관되어 있다.
크즐오르다로 이주한 후, 극동 조선사범대학에서는 조선어로 교육을 진행했으나, 1938년 1월 24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민족학교 개편에 관한 결정」이 채택되면서 러시아어 교육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대학 총장은 중국어와 조선어로 된 모든 책을 소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사건은 극작가이자 소설가, 전 <고려일보> 신문 (1991년) 편집장인 한진(한도연)의 단편 소설 「공포」에서 묘사되었다. 당시 화학을 가르치던 리 선생님은 목숨을 걸고 귀중한 고대 조선의 목판본을 지켰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강제 이주된 조선사범대와 함께 온 교사였다.
한진은 소설에서 당시 크즐오르다의 분위기를 아주 생생하게 전했다. 그 분위기는 지금도 느낄 수 있다. 대학이 자리 잡았던 '붉은 성' (Красная крепость), 바람에 실려 유리창을 때리는 마른 모래, 비누 거품이 나지 않는 크즐오르다의 물, 그리고 무게가 약 8키로에 달하는 냉동된 시르다리야 강의 잉어들까지…
저자는 리 선생이 구해낸 책들 중 「문헌비고」 (1770년 출간된 100권짜리 조선 백과사전), 15세기 말 발행된 조선지리서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 지리서에는 지리적 묘사뿐 아니라 여러 세기 전의 풍습, 전설, 노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리선생과 그의 친구들이 어린 시절 마을 학교에서 공부했던 「천자문」, 조선 이 왕조의 법전 「대전통편」 (1392~1910) 등 다양한 서적이 있었다.
리 선생은 이 국가의 보물이자 귀한 책들을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전 작품들을 불태울 수 없다고 생각하며, ''민족의 기억을 불태우는 것을 눈앞에서 지키면서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되새겼다. 리 선생은 목숨을 걸고 이 책들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알마티 도서관 (당시 푸시킨 명칭 국립도서관)에 책이 든 두 개의 상자를 비밀리에 보냈다. 현재 이 책들은 카자흐스탄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1938년5월부터 극동 조선사범대학은 크즐오르다 사범대학으로 개칭되었으며, 현재는 코르킷 아타 명칭 크즐오르다 국립대학으로, 지금까지도 지역과 국가를 위해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과 협력으로 코르킷 아타 크즐오르다 국립대에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대학’이 개설되었다. 서울과학기술국립대의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미래의 프로그래머, 사이버 보안 전문가, 정보 및 정보시스템 전문가들이 카자흐어,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로 교육을 받게 된다.
크즐오르다와 알마티 도서관에서 보관된 귀중한 목판본들이 후손, 연구자, 학자들에 의해 언젠가 반드시 읽히고 연구될 것이다. 한진의 소설 주인공이자 겸손하고 용감한 리 선생 또한 이 책들이 후세에 반드시 읽히리라 믿고 꿈꾸었다.
김 이리나 – 경제학 박사, 크즐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