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40년 전인 1984년5월16일에 카자흐스탄 내에서 처음으로 고려말로 방송된 라디오가 전파되었다. 공화당 라디오 공중파를 통해 처음으로 고려말 프로그램이 방송되어 고려인 모두에게 흥미진진하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되었다.
고려말 라디오 방송은 알마티에서 방송되기까지 극동, 크즐오르다, 알마-아타에 이르는 긴 여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강제이주 후 고려인 라디오 방송은 폐쇄되었다. 이후 여러 고려인 단체에서 방송 재개를 요청하여 처음에는 크즐오르다 한 곳으로만 전파를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크즐오르다뿐만 아니라 알마-아타, 잠불, 딸듸꾸르간, 침켄트 지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방송망의 확대를 요청하여 1984년5월16일 이후 카자흐스탄 전지역에서 청취할 수 있는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먼 옛날, 1937년에 '선봉' 신문사, 고려극장과 함께 라디오 스튜디오도 러시아 원동에서 크즐오르다로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바로 정치적 탄압을 당해 라디오 방송사는 활동을 시작조차 못했다. 20년이 지나서야 우리말 라디오 방송은 크즐오르다 한 곳으로만 전파가 송출되었다. 1950년대 초기에 크즐오르다에서 고려말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는 것에 대한 승인이 내려졌다. 하지만 라디오 방송국은 두 번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전문 라디오 기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닌 기치>신문사 직원들과 고려극장 배우 (정철성 – Тен Чоль Сон, 리길수 -Ли Гир Су, 김원봉 - Ким Вон Бон, 듀동일 - Дю Дон Иль, 오숙희 - О Сук Хи 등)들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고려인들의 목소리를 들려 주기 위해 라디오 개국의 원점에 섰다.
<레닌기치> 신문과 함께 크즐오르다 고려말 라디오 방송국은 오랫동안 영적문화의 중심지였다. 라디오 직원들 중 연극/배우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방송 프로그램은 고급 품질로 전파할 수 있었다. 언어의 문학적 규범을 보존하고, 내용을 고도로 예술적으로 읽는 것은 한국어의 부흥에 큰 기여를 했다. 라디오 방송에서 전파된 프로그램은 주로 그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삶과 농업 노동자들의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소련 시대에는 편집국 업무의 우선 순위 방향은 당과 정부의 최신 지침을 숙지하는 것이었다.
한국어로 방송되는 라디오 방송국 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라디오가 제일 먼저 크즐오르다 고려말 라디오국과 협력했다. 조선 라디오 방송국은 1956년에 처음으로 크즐오르다 라디오에 도움을 주었다. 조선의 평양 중앙TV라디오 방송위원회는 조선 노래 및 프로그램 녹음 테이프를 제공했다. 고려말 라디오는 조선 라디오 방송국에서 받은 이 포노그램들을 1989년까지 계속 사용했는데 업데이트를 거의 못했다.
고려극장과 <레닌기치>신문사가 알마-아타 (현 알마티)로 옮긴 후 고려말 라디오 방송도 전국으로 송출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최영근 기자가 공산당의 문을 두드리면서 수많은 요청서를 보내고 고려인 운동 활동가 겸 한반도 독립운동가인 황운정이 카자흐스탄 지도부와 직접 만나 전국 전파 요청에 대해서 드디어 긍정적 회답을 받을 수 있었다. 라디오 방송국 설립 시 알마티 고려인문화중앙회 회장인 황 M.V., 문화교육운동 활동가인 김국천, 카자흐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예예술가인 리길수 등이 큰 기여를 했다.
1984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3월 회의 때 코나예프 D.A. (Кунаев Д.А.) 카자흐스탄 각료평의회 의장은 고려말 방송 개국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TV라디오 방송 국립위원회는 고려말 방송국에 사무실과 장비, 직원들을 제공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됐다. 크즐오르다 라디오 스튜디오의 음방 자료들은 고려말 라디오 방송국의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1984년5월16일, 고려말로 된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송출되었다. 방송된 첫 프로그램은 고려인 사회에 설레고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그 당시에 1주일에 2회 방송되는 30분 분량의 라디오 방송이었다. 고려말로 된 프로그램은 청취장들에게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을 전하며, 소비에트 최고의 노동자를 소개하고 우리 조상의 관습과 전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명인들과의 인터뷰, 고려극장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이 청취자에게 인기가 많았다. 지금은 이 목소리의 골든 수집품의 일부가 보관되어 있어서 카자흐 라디오 골드펀드에서 소중히 보존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전파되는 전국 고려말 라디오 방송국 설립 및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방송 개국부터 방송사에서 일했던 김옥려 (타마라 니콜라예브나)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청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청취자들이 그녀에게 감사 편지도 많이 보냈다. 김옥려 라디오국장은 한인문화 발전에 기여한 것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무궁화’ 훈장을 받았다. 또한 김옥려 국장은 고려인 사회 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카자흐스탄 대사관, 알마티 한국교육원, 한국 사회단체 및 기업들과 소통할 수 있게 연결 시키려는 역할도 많이 해주었다.
박영준 (Пак Ен Дюн), 한 올가 (Хан Ольга), 최미옥 (Цой Ми Ок), 센 (성) 이리나 (Сен Ирина), 박 이리나 (Пак Ирина), 정 야나 (Тен Яна) 등의 훌륭한 사람들도 고려말로 된 라디오 방송국 발전에 큰 공로를 했다. 또한 수파타예바 굴자한(Супатаева Гульжахан), 알리아스카로바 나즈굴 (Алиаскарова Назгуль), 토크무르진 예를란 (Токмурзин Ерлан), 다이르베코바 아크눌 (Даирбекова Акнур) 등 음향 PD, 사운드-디자이너들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90년,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TV라디오 방송국과 한국 KBS 간의 방송 협력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사건은 고려말 라디오 운영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젊은 기자들이 한국의 명문대와 KBS에서 연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 국제라디오국의 제작진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조국과 다른 나라에서 사는 한인 동포들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재외동포재단(현 재외동포청), 한국언론재단, 알마티 한국교육원이 고려말 라디오국에 많은 지원을 해 주었다.
1994~1997년, 라디오국은 '유라시아' 국제 채널의 구성원이었으며, 중앙아,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방송을 했다. 공화국 라디오 방송의 여러 민족(카자흐어, 러시아어, 위구르어, 독일어, 영어로 방송됨) 언어로 전파되는 성격은 고려말 라디오 프로그램의 전반적 흐름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었다. 다양한 민족의 고유한 명절 때 고려말 라디오에서 그 민족의 민요를 들려주며 명절과 관련된 콘텐츠들도 특별히 제작했다. 외국 청취자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과 그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996년 한국 언론국제포럼에서 최영근 고려말 라디오국장은 '서울상'을 받았다.
1999년 해외청취권역은 중단되었다. 2017년까지 고려말라디오국은 국립 프로그램 '도스특' (Достык) 부서의 구성원이었다. 고려말로 된 라디오 프로그램은 카자흐 라디오 주파수 101FM이며 수요일마다 송출되었다. 2003~2009년1달에 한 번 일요일마다 러시아어로 '나의 고향 – 카자흐스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송되었다. 카자흐스탄 국내외 고려인 뉴스,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와 알마티 고려민족 문화중앙회 등의 고려인 단체의 활동에 대한 시사는 주요 콘텐츠였다. 그리고 '우수한 인물', '우리의 근원', '나는 카자흐스탄 사람이다', '고려극장: 어제와 오늘', '외국인의 눈으로 본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대한민국: 우정의 측면', '스튜디오를 찾은 손님', '청소년의 페이지', '국어 학습 클래스' 프로그램들이 정기적으로 제작되어 방송에 나갔다.
2005년 제1 민족 언론인 대회 '민족간 화합 및 시민 평화 문제' 부문에서 고려말 라디오 방송국은 '최우수상'을 받았다.
'모든 것은 다이나믹하게 간결하고 정보성 있게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은 고려말 라디오 방송국이 제작한 20분 분량 내에 다양한 콘텐츠를 담길 수 있었다. 뉴스 외에도 한국, 조선, 카자흐스탄 가수의 노래도 들려 주었다.
고려말 라디오 방송국에 헌신한 직원들은 프로그램 편성, 라디오 방송국의 발전, 그동안 수상한 상 등으로 고려인 사회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국민들 중에서 가치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