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고려인의 나라, 카자흐스탄에서도 2025년 을사년(乙巳年)의 새해가 밝았다. 금년은 60간지 중 42번째 해이며, ‘푸른 뱀'의 해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을사년에는 항상 어려운 국가사들이 존재했었다. 1905년의 ‘을사늑약(乙巳勒約)’이나 1965년의 한일협정 체결을 둘러싼 국론분열과 혼란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60년이 지나 맞이한 2025년의 을사년 새해에도 모두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는 다른 2025년을 기대해 보고 싶다. '을(乙)'은 ‘푸른 색’(동양의 오행에서는 '나무(木)'를 의미)의 의미로 생명력과 성장을 상징하고, '사(巳)'는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동물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2025년 을사년은 지혜로운 변혁과 성장,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시작해 보고 싶다.
그러한 굳은 믿음에 위로와 확신이라도 주려는 듯 을사년 새해 벽두부터 기백이 충만한 한 무리의 대한의 청년들이 역사문화탐방을 위해 카자흐스탄을 찾았다. 학사 및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전공 학생들(9명)과 3명의 교수진(최희수, 김상헌, 차윤미)이 그 주인공들이다. 1990년대 초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카자흐스탄은 국토면적 세계 9위의 100여 개가 넘는 다민족 국가로 민족 간 화합을 가장 중요시하는 나라이다. 특히 이곳에는 약 11만명(0.61%) 규모의 한민족의 후예 고려인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규모상 카자흐스탄 내 여러 구성민족들 중 9위에 해당된다. 하지만 작은 규모에도 고려인은 강제이주 이후 88년의 세월 동안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교육 및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늘 주목을 받아왔으며, 이제는 한류의 중심에서 K-Culture의 전달자로서의 큰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세월 동안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에서는 큰 존경과 추앙을 받는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나왔다. 여기에는 20세기 초 극동에서 항일운동에 투신했다가 스탈린 탄압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 되어 마지막 생애를 보낸 항일애국지사들도 포함된다. ‘고려인의 역사문화와 중앙아시아 K-Culture’라는 주제로 상명대 역사문화탐방단이 카자흐스탄 땅을 밟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자흐스탄은 CIS 고려인 이주정착사에서 중앙아시아 내 타국가들과 비교하여 남다른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는 곳이다. 첫째는 카자흐스탄이 강제이주 열차의 최초의 기착지이고, 둘째는 고려극장(당시 조선극장)과 고려일보(‘선봉’, ‘레닌기치’의 전신), 원동고려사범대와 같은 주요 단체들이 대거 자리를 잡은 곳이며, 마지막으로는 위 두 요인들로 인해 항일애국지사들을 포함하여 고려인 주요 인물들(예술인, 언론인, 교육자, 학자 등)이 카자흐스탄에 집중 거주해오며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를 대표해 왔다는 점이다. 특히 항일애국지사들의 경우는 역사적인 조국-한국에서까지 추앙과 관심을 받고 있다. 문헌을 보면 1937년을 전후하여 수 천 명(2,500여명)의 고려인 지도자급 인사들과 지식인들이 스탈린 탄압으로 희생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체포되어 심문과정과 수용소나 감옥살이를 거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거나 체포를 빗겨간 인물들도 있는데, 항일무장투쟁의 영웅 홍범도와 역사학자 계봉우, 15만원탈취사건의 생존자 최봉설, 항일무장투쟁의 황운정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모두는 카자흐스탄에서 마지막 생을 보냈으며, 카자흐스탄 곳곳에 이들의 거주지나 묘지, 기념비 등의 형태로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항일애국지사 관련 장소와 공간들은 한국정부에 의해 해외독립운동 ‘사적지’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상명대 역사문화탐방팀은 카자흐스탄의 옛수도이자 최대의 고려인 거주지역인 알마티와 CIS 55만 고려인의 메카인 우쉬토베와 김경천과 황운정 애국지사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카라간다와 아스타나, 강제이주 이후 소련시기 가장 큰 고려인 거주지이자 오늘날 항일애국지사 사적지들이 집중되어 있는 크즐오르다 등 7박 8일(2025.1.5-12)에 걸쳐 카자흐스탄 주요 도시들을 누볐다. 이 과정에서 탐방 참가학생들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이주정착사, 한민족 항일애국지사 사적지 답사,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등 한국학 전공학생들 및 교강사진과의 간담회와 친선교류, 카자흐스탄 내 K-Culture 현황 등에 대해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탐방 참가학생들 모두 모교에서 경쟁 선발을 거친 최고의 우수 인재들이다. 그런 만큼 참가자 모두가 흐트러짐 없이 일정 내내 가는 곳마다 남다른 각오와 관심, 열정을 보여주었다.
탐방팀이 찾은 첫번째 장소는 강제이주 열차의 첫 기착점이자 55만 CIS고려인 사회의 메카와도 같은 우쉬토베이다. 이곳에서 탐방팀은 강제이주의 아픔이 서려있는 우쉬토베 기차역과 정치탄압희생자위령비, 최초의 고려인학교, 크즐오르다에서 이전되어 온 고려극장이 한동안 활동했던 고려극장(1942-1959), 강제이주기념비와 항일애국지사 추모비 등이 있는 한카우호공원을 돌아보았다. 강제이주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한카우호공원에는 1999년부터 한국정부와 한카친선협회, 고려인협회 등에 의해 순차적으로 기념비들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2022년 여름에는 추모비까지 세워지면서 한카우호공원은 보다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공원 주변의 눈덮힌 황량한 들판과 바스토베 언덕의 공동묘지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더 울컥하게 만들었다. 한편 시내의 한국인 교회 내에 세워진 작은 박물관과 강제이주 당시의 재현물들은 탐방팀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마당 한 켠에는 강제이주 첫해 고려인들이 겪었을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토굴과 흙과 짚으로 만들어진 땅집 및 부속건축물들이 과거의 모습에 거의 가깝게 재현되어 있었다. 우쉬토베에서는 아직도 고려인들의 벼농사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눈덮힌 벼 들판을 지나쳐 달리면서 지난 세월 극동에 이어 다시 한번 중앙아시아에서 성공신화를 써 내려 온 한민족 고려인의 불굴의 개척정신을 느껴본다. 우쉬토베는 상명의 청년들에게 가슴속 뭉클함과 애틋함을 심어주었다.
탐방팀이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카자흐스탄 북부에 위치한 카라간다(카를락; 정치탄압희생자기념관)와 수도인 아스타나(알쥐르; 정치탄압 및 전체주의 희생자기념관) 이다. 이곳은 소련시기 가장 큰 정치범수용소가 위치했었던 곳들 중의 하나로,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해당 장소들에는 기념관들이 세워졌는데, 이곳에는 항일애국지사 김경천과 황운정의 큰 발자취가 남아있다. 황운정(1899-1989)은 1919년 함북 온성에서 3.1운동에 참여했고, 북간도 최진동의 독군부 부대와 러시아 연해주 솔밭관 부대의 간부로 활약한 인물이다. 소련 형성 이후에는 고려인 콜호즈 지도자와 교육자로서도 활동했다. 하지만 1935년에 소련 당국에 의해 일본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1938년 11월까지 카라간다 교화노동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가까스로 석방되었다. 묘지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립공동묘지에 있는데, 2019년 4월에 한국정부에 의해 봉환되었고, 후손들에 의해 묘지는 과거의 형태로 복원되어 있다. 김경천 또한 1936년 체포된 이후 카를락에서 1939년 6월 25일까지 수형생활을 했다. 이후 김경천은 모스크바 부틔르스크 감옥과 코미자치주에 있는 코틀라스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다가 1942년 1월에 사망했는데, 당시 수용소 주변에 시신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안타깝게도 매장지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다. 스탈린 시대의 정치탄압의 아픔을 생생히 잘 보여주고 있는 기념관들('카를락'과 '알쥐르')에서 탐방팀원들은 적지 않은 깊은 충격과 아픔을 느꼈다. 기념관에는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특히 지하에 재현되어 있는 감옥에서는 인간이 겪어야 했던 최악의 순간들이 생생한 흔적으로 남아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이번 탐방에서 가장 하일라이트는 소련시기 가장 큰 고려인 거주지이자 가장 많은 항일애국지사 사적지들이 집중되어 있는 크즐오르다였다. 지난 해 하반기에 크즐오르다 고려인협회 회장이 된 안엘레나와 부회장(이 타티야나)의 안내에 따라 홍범도 장군과 역사학자 계봉우 선생이 모셔져 있는 추모공원묘역에서 다같이 헌화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추모공원묘역 입구에 작년 하반기에 개장된 홍범도·계봉우박물관에는 전시물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조품 형태로라도 홍범도 장군이 입었던 군복과 권총 등을 전시하고, 묘지 재이장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묘지표지석 등의 물품들이 향후 전시된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탐방팀은 이외에도 홍범도 장군의 마지막 거주지와 1994년에 조성된 ‘홍범도 거리’, 계봉우 거주지, 1920년 1월에 용정에서 발생했던 15만원탈취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봉설 거주지, 고려극장 건물, 그리고 현재 크즐오르다 국립대학의 역사의 시작이자 전신인 극동에서 이전되어 왔던 고려사범대학 건물 등을 둘러보았다. 물론 애국지사들과 관련된 장소들은 더 있다. 아쉽지만 1996년에 조선된 ‘계봉우 거리’와 소설 ‘홍범도’의 작가 김세일의 거주지, 그리고 대표적인 고려인 콜호즈들(‘선봉’, ‘제3인터내셔널’)은 시간관계상 방문하지 못했고 다음 기회로 남겨두었다. 이억만리 타국에서 한민족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진 거리 명패와 알림표지석 등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가슴뭉클한 일이다. 참가 학생들 모두에게 그동안 교과서에서만 들어왔던 영웅들의 마지막 발자취를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목도하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탐방의 마지막 일정은 알마티에서 마무리되었다. 다시 알마티로 돌아온 탐방팀은 CIS 고려인 사회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고려일보(1991-현재, 한러혼용판)와 고려극장(1932-현재)을 돌아보았고, 알마티에 모셔져 있는 황운정 묘지를 방문하고 헌화했다. 고려일보는 선봉(1923-1937, 한글판)과 레닌기치(1938-1990, 한글판)를 이어 온 100년 역사의 자랑스런 해외 한민족 신문으로 고려인 사회의 입과 귀 역할을 해왔다. 특별히 이번 탐방에 함께 한 김상헌 교수는 2002년에 레닌기치와 고려일보 신문(1938-2002)을 디지털화하여 신문사에 영구보존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 탐방에 앞서서도 미리 알마티에 들어와 2003년 이후의 종이본 신문들에 대해서 스캔처리된 디지털 작업을 진행했고, 곧 결과물이 신문사에 제공될 예정인만큼 김상헌 교수의 고려일보 신문사에 대한 기여는 매우 크다. 고려극장 또한 한민족 고전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거나 춤과 노래 등 한민족의 공연예술을 계승해 온 90여 년 역사의 자랑스런 고려인 사회의의 보고이다. 신문사에 보관된 오래된 신문철을 보면서, 또 극장에 걸려있는 배우단 사진과 무대를 보면서 상명의 청년들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에 감사의 마음과 안도의 마음이 동시에 일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도 어제처럼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상명대 역사문화탐방팀은 카자흐스탄의 젊은이들과도 친선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한국학과 학생들과는 간담회를 갖고 식사를 했으며, 시내를 함께 투어하며 서로의 우의를 다졌다. 알마티에 위치한 큐(Q) 대학에서도 대학 및 학생 간 협력과 교류에 대해서 논의했으며, 점심으로 제공된 카자흐 전통음식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카자흐 음식문화에 대해서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생각보다 컸던 카자흐스탄 젊은이들의 한류와 K-Culture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탐방팀원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크게 느껴질 정도로 카자흐스탄의 젊은이들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음식과 노래, 춤, 드라마에 심취해 있었다.
7박 8일에 걸친 탐방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탐방 기간 내내 매서운 한파없이 적절한 수준의 추위가 유지되었는데, 이 또한 탐방팀의 복이 아닌가 싶다. 비록 카자흐스탄에 10년을 살아오고 있지만, 전 일정을 함께하며 필자 또한 여전히 더 많은 새로운 것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탐방 참가학생들에게 카자흐 음식과 공원, 건물, 학교, 입은 옷 등의 모습에서, 또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카자흐스탄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제고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20대 젊은 날의 해외여행은 이후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방문객 중 누군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카자흐스탄을 찾을 것이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시 찾고 싶어질 정도로 카자흐스탄은 한국인들에게 매력있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모쪼록 금번 역사탐방이 참가자 모두에게 특별한 역사문화 여행이 되었기를 바라며, 함께 해준 교수님들과 학생들 모두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병조(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