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래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탓인지 더위의 결이 지난 해와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게다가 아무리 더워도 건조한 기후 탓에 그늘이나 실내에서는 견딜 정도가 되니 조물주가 빚어 낸 오묘한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대륙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금년에도 어김없이 반가운 얼굴들이 카자흐스탄을 찾아주었다. 인문콘텐츠학회 회장 김상헌 교수(상명대)와 학회임원들(상명대-최희수, 주진오 교수, 황태희 박사생, 조성민 석사; 선문대-고훈 교수; 경성대-김민옥 교수; 한국외대-최준철 박사; 안우리 학회사무국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김상헌 교수 일행은 2023년 새해에도 학술답사팀을 이끌고 카자흐스탄을 다녀간 바가 있는데, 올해는 보다 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알마티를 방문했다. 김상헌 교수 개인적으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카자흐스탄과의 인연이 깊다. 22년 전에 CIS 고려인 사회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레닌기치», «고려일보» 신문(1938-2002)의 디지털화 사업을 직접 지휘하고 수행한 인물이기 때문이다(현재 카자흐국립대 한국학과 박사과정생 해외지도교수로도 활동 중).
이번 학술답사팀 방문의 주요 목적은 카자흐스탄 전역에 위치하고 있는 한민족 항일애국지사 및 고려인 관련 주요 사적지들에 대한 답사를 통해서 문화콘텐츠를 통한 한국학 연구의 확산과 발전 가능성을 찾아보는데 있다. 또한 2002년 이후에 발간된 고려일보 신문에 대한 후속 디지털화 사업을 위해 고려일보측과 논의하고, 해당 시기 종이본 신문의 보존 상황을 체크하는 데 있다.
답사님은 이번에도 고려인의 가장 큰 집거지였던 크즐오르다와 강제이주 첫 기착점인 우쉬토베, 황운정 애국지사(2019년 유해 봉환)가 묻혀있는 알마티 등의 지역을 돌아보았다. 예상치 못한 국내선의 긴 연착(4시간 30분)으로 우여곡절 끝에 첫 방문지인 크즐오르다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도착 당일 오후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했고, 이튿날 콜호즈 방문 일정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홍범도 장군과 역사학자 계봉우 선생이 모셔져 있는 추모공원묘역을 방문했다. 금년에 새롭게 지도부를 꾸린 크즐오르다 고려인협회장(협회장-박데니스)과 부회장들이 답사팀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박 데니스 회장은 ‘푸른 눈’의 고려인으로 누구보다 크즐오르다 내 항일애국지사를 기리는 사업들에 관심과 열정이 많은 인물이다. 답사팀은 미리 요청하여 준비해 둔 꽃들로 다같이 헌화하고 항일애국지사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지난 1년 사이에 묘역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작년 상반기에 추모공원묘역 입구에 박물관과 주변 조형물이 조성되었고, 금년 상반기부터는 두 분의 항일애국지사를 기리는 관련 전시물들이 많이 채워져 있었다. 박물관은 11월 경에 개관식을 가질 예정인데, 공식적인 개관 이전에 내부를 엿본 것은 우리 답사팀이 처음이라고 한다. 더 정비되고 갖추어진 항일애국지사들의 묘역 모습에 흐뭇함이 느껴졌다. 이외에도 홍범도 장군의 생애 마지막 거주지와 ‘홍범도 거리’, 1920년 1월에 용정에서 발생했던 15만원탈취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봉설과 계봉우 선생의 거주지, 고려극장 터(건물), 그리고 현재 크즐오르다국립대학의 역사의 시작이자 전신인 극동에서 이전되어 왔던 고려사범대학 건물 등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홍범도거리’와 계봉우 선생의 말년 거주지에 작년에 추가로 부착되었던 기념 현판이 여전히 잘 관리가 되고 있어 안도할 수 있었다. 물론 언급된 장소들 이외에도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는 사적지들은 더 있으나 시간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두었다. 하지만 비행출발시간 지연으로 고려인들의 생활공동체였던 콜호즈(선봉콜호즈, 제3인터내셔설콜호즈 등)를 둘러보지 못한 것은 알마티로 돌아오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어진 우쉬토베 여정은 학술답사팀에게 또 다른 감정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우쉬토베는 강제이주 열차의 첫 기착점으로 55만 CIS고려인 사회에게는 메카와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답사단은 강제이주의 아픔이 서려있는 우쉬토베 기차역과 중앙공원에 있는 정치탄압희생자위령비, 고려인학교, 크즐오르다에서 이전되어 와 한때 활동했던 고려극장(1942-1959), 강제이주 기념비와 항일애국지사 추모비 등이 있는 한카우호공원을 돌아보았다. 1999년부터 한국정부와 한카친선협회, 고려인협회 등에 의해 기념비들이 하나 둘씩 조성되기 시작했고, 2022년 여름에는 추모비까지 조성되면서 한카우호공원은 비로소 보다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바스토베 언덕 주변의 황량한 들판과 공동묘지는 한편으로 방문객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한국인 선교사의 집에 조성되어 있는 야외박물관 또한 답사팀들에게는 훌륭한 현장학습 공간이 되어주었다. 마당 한 켠에는 토굴과 흙, 짚으로 만들어진 땅집, 그리고 부속건축물들이 과거의 모습에 거의 가깝게 복원되어 있었는데, 강제이주 초기 고려인들이 겪었을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었고, 방문객들 모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고려인들의 굶은 땀방울이 흠뻑 배어 있는 벼 들판을 지나쳐 달리면서 지난 세월 성공신화를 써 내려 온 한민족 고려인의 불굴의 개척정신이 느껴지는 듯 했다.
황운정 애국지사의 묘지를 비롯하여 고려인협회와 고려일보, 고려극장, 그리고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동방학부을 돌아보는 것으로 알마티에서의 마지막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고려일보에서는 2002년 이후에 발간된 신문에 대한 후속 디지털화 작업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 졌다. 고려극장에서는 자료 보존상황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1층 전시실의 전시물들을 통해 고려극장의 발전사를 한 눈에 파악해 볼 수 있었다.
6일 여정의 학술답사가 마무리되었다. 요행히도 그리 덥지 않은 날씨 속에 예정했던 일정을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답사팀의 복이 아닌가 싶다. 학술답사 일정 동안 참가자들은 카자흐 전통음식을 맛보거나 공원에서 거리에서 카자흐스탄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목도하며 카자흐스탄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방문객 중 누군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카자흐스탄을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카자흐스탄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시 찾고 싶어질 정도로 카자흐스탄은 한국인들에게 매력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모쪼록 금번 학술답사가 참가자 모두에게 카자흐스탄 내 한민족 애국지사사적지에 대한 이해를 제고시키고, 카자흐스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이병조(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