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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시련을 딛고 꿈을 실현한 삶, 김 레오니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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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시련을 딛고 꿈을 실현한 삶, 김 레오니드의 이야기
      모든 시련을 딛고 꿈을 실현한 삶, 김 레오니드의 이야기
      26.05.2025
      김 레오니드 알렉산드로비치의 삶은 목적지향성과 인내 그리고 근면함의 뚜렷한 모범으로 된다. 그의 생애는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꿈을 향해 나아가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한 고려인의 이야기이자, 20세기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와도 깊이 얽혀 있다.

      김 레오니드는 1928년에 원동 변강 포시예트 구역 파타시 (현 카믜쇼보예) 촌에서 태어났다. 빈농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사무원으로 일했고 어머니 김 올리가 빠블로브나는 가정주부였다.
      김씨네 가문의 역사는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공동체와 긴밀히 연계되었다. 김씨네 선조인 예브게니와 예카테리나는 파타시 촌에 1879년부터 즉 한인이주민들이 이 촌을 설립한 후부터 등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농업에 종사하였다.
      러시아 극동 국립역사문헌보관소(РГИА ДВ)에는 1913년 11월 17일자 농민 가족 명부가 보존되어 있으며, 이 명부에는 김 예브게니, 그의 아내 예카테리나, 아들 알렉산드르(훗날 레오니드 알렉산드로비치의 아버지), 딸 펠라게야가 언급되어 있다: “1913년 11월 17일자 가족 명부 (김 예브게니 33세, 아내 예카테리나 29세, 아들 알렉산드르 5세, 딸 펠라게야 1세)”.

      정교회 신자였던 예브게니는 제1차 예비역 병사(예비군 병사)로 등록되어 있었으며, "이 가족은 주택 1채, 부속 건물 1동, 노동용 소 1마리, 돼지 1마리를 보유하고 있었고, 약 1헥타르(1데샤티나)의 땅을 경작해 곡물을 재배하였다.”
      예브게니는 마을 공동체의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12년에는 ‘현물로 내던 식량세를 금전 납부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결의안에 서명한 몇 안 되는 유식한 농민 중 한 명이었다.
      레오니드의 어린 시절은 매우 힘들었다. 1932년, 그가 겨우 네 살이 되던 해에 가족은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의 광산 도시 아르쫌으로 이주했다. 같은 해, 그의 아버지 알렉산드르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려인 제2급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던 교사이자 열렬한 축구 애호가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4세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두 자녀를 데리고 친척이 살고 있던 니콜스크-우수리스크로 이사했다. 1936년, 레오니드와 그의 누나 크세니야는 극동변강 슈코토프스키 지역의 짜레프카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러나 1937년, 레오니드는 아홉 살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고려인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들은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로 이주되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가족의 운명과 레오니드 개인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매우 고통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1937-38년 강제이주의 첫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자녀들을 우즈베키스탄 양기율시에 살고 있던 첫 남편의 친척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후 어머니는 재혼하여 1943년에 장녀 크세니야만 데려갔다. 레오니드는 친척 집에 남게 되었고, 그들은 그를 친자식처럼 대하며 자신들의 네 자녀와 똑같이 돌보고 교육했다. 아이들 사이의 우정은 평생 이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레오니드는 어려움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힘든 유년기를 겪었음에도 그는 사람들에게 열린 태도, 온화하고 친절한 성격, 그리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주려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양기율에서는 크룹스카야 명칭 제26번 학교에서 9학년까지 마쳤고, 이후 1945년에는 고리키 명칭제5번 학교에 입학하여 1946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그는 많은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제약, ‘신뢰할 수 없는 이주민’이라는 낙인, 그리고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 등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당시 극동에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은 일반적으로 ‘행정적 추방자’라는 신분으로 분류되어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 외 지역으로의 이동이 제한되었다.
      그는 타슈켄트 대학에 입학했지만, 기숙사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1948년에 제적되었다. 이는 이주 고려인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문제였다. 이후 그는 몰로토프 명칭인 사라토프 자동차∙도로기술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나, 이곳에서도 거주등록을 받지 못해 결국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이런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레오니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세 번째 도전으로 그는 1949년에 레닌그라드 철도 전기기술공학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공식적인 거주등록 없이, 언제든지 추방될 수 있는 위협 속에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공부를 이어갔다. 여름이면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고려인 집단농장에서 생활비를 벌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1952년에 철도운수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공학사 학위를 받았다. 레닌그라드는 그의 마음속에 평생 남아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봉쇄가 끝난 지 불과 5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 도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따뜻한 기억으로 간직했다. 그는 극장을 즐겨 찾았고 오페라와 발레를 감상하며 고전 음악이 담긴 축음기 레코드를 수집해 나중에는 그것들을 모두 집으로 가져왔다.
      1950년부터 1956년까지 그는 소비에트 청년단체인 전연방레닌청년공산동맹(ВЛКСМ)의 단원이었고, 1956년부터는 소련공산당 입당 후보로 활동했으며, 1958년에는 당원으로 정식 입당하였다. 동료들은 그를 유능한 기술자이자 생산 합리화 운동가, 청년들에게는 멘토이자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평가했다.

      김 레오니드 알렉산드로비치는 1952년부터 투르키스탄 철도국에서 전기기술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철도 신호, 중앙제어 및 차단 설비(СЦБ)의 원활한 작동을 책임졌다. 열차 운행의 안전을 보장하는 이 업무는 자동제어 및 전기기술 분야에 대한 높은 전문성과 비상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민첩성을 요구했다. 그는 밤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사고가 발생한 구간에 긴급히 출동해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이것이 바로 철도 업무의 특성이었다.
      1962년부터 그는 크질오르다 제25 신호 및 통신 구간의 부책임자, 이어서 책임자로 근무했다. 1977년에는 크질오르다 철도 지구 신호 및 통신부의 부서장으로 임명되었고, 1981년에는 서카자흐스탄 철도 소속 제735 특수 건설 및 조립 열차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레오니드 알렉산드로비치는 철도 분야에 평생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거의 40년 동안 철도 분야에서 일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삭사울스카야 역에서 투르키스탄 역까지의 신호 및 통신 체계가 건설되고 운영되었다. 그의 성실한 노력은 여러 차례 표창을 받았으며, 특히 그의 50회 생일을 기념해는 근면한 노동의 공로로 기념 손목시계를 수여받았다.
      전문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는 가족이었다. 1953년 그는 라리사 로마노브나와 결혼하여 굳건하고 조화로운 가정을 꾸렸다. 아내는 훗날 “남편은 마치 군 조직처럼 항상 근무 중인 듯했지만 동시에 배려 깊은 남편이자 따뜻한 아버지였다”고 회상했다. 부부는 함께 여행을 즐기고, 주말농장에서 채소와 참외를 기르며 여가를 보냈다. 수확한 농산물을 팔아 첫 자동차 ‘자포로제츠’를 장만했고, 오랫동안 그 차를 아끼며 사용했다.
      가족은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자녀들 모두 그의 길을 따랐다. 세 자녀 모두 철도 제409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두 딸 이리나와 옐레나는 모스크바 교통공학대학(МИИТ)을 졸업한 뒤 교통 분야에서 일했고, 아들 알렉세이는 에너지 기계공학 분야의 엔지니어가 되었다. 가정에서는 철도인의 날이 언제나 특별한 명절로 여겨졌다. 레오니드 알렉산드로비치는 자녀들의 학업과 직업 선택을 적극적으로 응원했고, 그들의 성과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다. 크질오르다 철도 지구 책임자인 오른바이 자나딜로브에 따르면, 그의 딸은 철도 운송 분야에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선진 기술을 도입하는 데 모범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은퇴를 앞두고 그는 크질오르다 철도전문기술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산업 안전과 기술 운영에 관한 과목을 강의하고, 학생들의 현장 실습도 지도했다.
      1988년 은퇴한 이후에도 김 레오니드 알렉산드로비치는 자가학습을 계속하면서 모국어 실력을 갈고닦았다. 그는 대학 시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유학생인 김형대, 민명식과의 교류 덕분에 한국어를 비교적 잘 구사할 수 있었다.
      김 레오니드 알렉산드로비치는 1991년 10월 1일 크질오르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단순한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강제이주와 탄압, 결핍을 겪은 한 세대의 운명을 대변하는 역사였다. 레오니드 알렉산드로비치는 불굴의 의지와 끈기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녔던 자신의 직업, 가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김 이리나 (크즐오르다), 김 알렉세이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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