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용맹스러운 유랑의 전사들, <카자흐(Қазақ)>

‘카자흐(실제 발음은 ‘카작’에 가깝다)’라는 민족명이 생겨난 때는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영토에 ‘카자흐 칸국’이 세워진 시기인 15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까지 이곳에서 살아가던 부족들은 스스로를 ‘카자흐-노가이(қазақ-ноғай)’, ‘카자흐-키르기스(қазақ-қырғыз)’ 등으로 불렀던 것으로 전해지며, 카자흐 칸국 시대부터 비로소 ‘카자흐’라는 통합적 명칭이 자리잡게 되었다.
‘카자흐’라는 이름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유래설이 존재한다. 바이투르시눌릐 카자흐 언어학 연구소 측은 ‘카자흐’라는 민족명이 ‘진정한 사카(족)’라는 의미를 가진 ‘카스 사크(қас сақ)’라는 말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추측과 ‘파내다’, ‘찾아내다’ 등을 의미하는 단어 ‘카주(қазу)’와 흰색을 뜻하는 낱말 ‘아크(ақ)’가 합쳐지면서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을 대표적인 유래론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편 역사·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카즈(қаз)’에는 ‘자유로운’, ‘유랑의’, ‘독립적인’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이는 ‘어느 한 곳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뜻하던 고대 튀르크어 낱말 ‘쿠자크(quzzāq)’와도 상통한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 해당 단어를 민족명 ‘카자흐’의 어원으로 보는 기원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밖에 ‘카자흐’라는 단어를 돌궐(괵튀르크)족이 8세기 초에 새긴 것으로 알려진 ‘오르혼 비문(Orkhon inscriptions)’에 등장하는 표현 ‘카즈각쿰 오글룸(kazgakum oğlum, 영웅적인 나의 아들)’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kazgakum’의 원형인 ‘kazgak’에서 ‘ㄱ(g)’ 발음이 누락되면서 ‘카작’이라는 단어로 굳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이 가설은 기본적으로 튀르크어의 음성학 법칙에 어긋나기에 학계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카라간디 국립대학교 소속의 역사학자 누르타스 스마글로프 교수는 “카자흐 민족이 ‘하나의 통합된 집단’으로서 형성과정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시기는 1465년 카자흐 칸국(Kazakh Khanate)이 세워진 때를 기점으로 한다”고 설명하면서 “이때부터 생겨난 ‘카자흐’라는 민족명을 두고 오늘날 학계에서는 수 많은 기원설과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그 중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진 것은 없다”고 부연한다.
40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 <키르기스 (Қырғыз)>

‘키르기스(실제 발음은 ‘킈르그즈’에 가깝다)’라는 민족명은 여러 고대 튀르크 비문과 기원전 3세기 경 기록된 중국의 역사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튀르크계 민족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졌다.
해당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도 오늘날 학계에서는 수 많은 학설과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키르기스’가 지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마흔개의 부족’으로, 숫자 ‘40'을 뜻하는 ‘킈륵(қырық)’과 ‘부족’ 또는 ‘부족 연합’을 의미하는 ‘오긔즈(оғыз)’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카자흐스탄의 동양학·튀르학 박사 유리 주예프 교수는 기마 유목민 집단인 훈족을 키르기스 민족의 조상으로 추정하면서 이들의 명칭 또한 ‘초원(қыр)’의 ‘훈족(күн)’이라는 의미로 형성된 고대 민족명 ‘킈르쿤(қыркүн)’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세우기도 했다.
본래 ‘키르기스’는 몽골 북부의 예니세이강 지역에 거주하던 ‘예니세이 키르기스’족을 일컫던 이름이었으나, 9~10세기 사이 이들이 알타이 및 통톈산 산맥으로 이주해감에 따라 그 민족명의 지칭 범위 또한 확대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편 18세기부터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기 시작한 제정 러시아는 ‘카자흐’ 민족을 지칭할 때 발음상의 유사성이 강한 동슬라브계 민족집단의 명칭 ‘카자크(Казаки)’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임의로 카자흐인들까지 ‘키르기스인(Киргизы)’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소비에트 시대 초기까지 키르기스인들과 카자흐인들을 혼동하여 인식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기도 했다.
강력한 통치자에 대한 동경에서 유래한 민족명, <우즈벡(Oʻzbek)>

오늘날 많은 튀르크 역사학자들은 ‘우즈벡’이라는 민족명이 킵차크 칸국을 통치했던 ‘우즈벡 칸(Узбек-хан, 1312–1342)’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즈벡 칸의 지배 하에 있던 유목 부족들이 그가 가졌던 막강한 권력에 대한 숭상의 의미로 스스로를 ‘우즈벡’으로 칭하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바이투르시눌릐 카자흐 언어학 연구소의 아를렌 세이트밧칼 역사연구원은 “전통적으로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강력한 지도자의 형상을 자신들과 결부하고 동일시 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고 설명하면서 “막강한 권위와 지배력을 지닌 통치자가 나타나면 유목 부족들은 그를 숭상하며 그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을 통틀어 일컫는 칭호로 사용한 것”라고 부연한다.
‘성스러운 불의 땅’ 그리고 ‘카스피해’를 수호하는 민족, <아제르바이잔(Azərbaycanlılar)>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명·민족명의 유래와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기원설 중 하나는 페르시아의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교가 한창 아제르바이잔 지역에서 번성하던 기원전 1천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부터 화산 활동이 활발했던 이 곳에서는 자연스레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가 크게 성행했는데,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불을 영원불멸의 요소이자 세상을 창조하는 힘의 근원으로 여기고 숭배했다. 당시 고대 페르시아의 방언으로 아제르바이잔 땅을 ‘아드레바간’이라 칭했는데 이는 ‘불을 수호하는 자들의 땅’이라는 뜻이며, 바로 이 단어에서 변형된 것이 ‘아제르바이잔’이라는 설이다.
한편 일부 역사학자들은 ‘아제르바이잔’이 고대부터 이곳 사람들이 카스피해를 불렀던 명칭 ‘헤제르(Хезер)’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카스피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로 ‘헤제르바이잔(Хезербайджан)’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가 그것이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으로 변형되어 굳혀졌다는 것.
‘진정한 튀르크인’를 자처하는 민족, <투르크멘(Türkmen)>

오늘날 학계에서 ‘투르크멘’의 어원과 관련하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튀르크인’을 의미하는 ‘투릑(Türik)’과 강조의 뜻을 가진 접미사 ‘멘(-men)’이 합쳐져 ‘진정한 튀르크인’이라는 합성어로서 탄생하게 되었다는 설이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역사 기록가 메흐메드 네쉬리(Mehmed Neşri)는 본 민족명이 ‘튀르크’와 페르시아어에서 ‘믿음·신앙’을 뜻하는 단어 ‘이만(ایمان)’이 합쳐져 ‘굳건한 신앙을 가진 튀르크인’이라는 의미의 합성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으나, 현대 학계에서는 해당 유래설에 언어학적 오류가 있어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린 바 있다.
한편 ‘투르크멘’은 11세기 마흐무드 알카슈가리(Mahmud al-Kashgari)가 편찬한 역사상 최초의 튀르크어 사전 ‘Dīwān Lughāt al-Turk’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도 이를 ‘튀르크인을 지칭하는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씨족의 우두머리’, 그리고 ‘늑대’를 의미하는 <바시키르(Башҡорт)>

바시키르인을 의미하는 ‘바슈코르트(Башҡорт)’의 어원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머리’를 뜻하는 튀르크어 ‘바쉬(baş)’와 ‘늑대’를 의미하는 ‘쿠르트(kurt)’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고대 튀르크 민족 사이에서 늑대라는 동물은 매우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에게 늑대는 ‘힘과 생존’을 상징하는 토템으로서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바이투르시눌릐 카자흐 언어학 연구소의 세이트밧칼 역사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오늘날 튀르크어에서 ‘붸리(böri)’, ‘카스킈르(qaşqır)’로 불리는 늑대를 돌궐(괵튀르크) 시대에는 ‘쿠르트(kurt)’라 불렀습니다. 튀르크족의 설화에서 늑대는 그들의 조부모와도 같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홀로 살아남은 튀르크 아기를 거두어 키워낸 존재가 바로 늑대인 것이죠.”
한편 저명한 동양학자 자키 발리지 토간(Zeki Velidi Togan)은 ‘바시쿠르트’라는 명칭의 기원이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 밖에 7세기 기록된 중국의 역사서에도 바시키르족으로 추정되는 ‘바슈킬리(Башукили)’라는 부족이 등장하며, 아랍의 여행가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Ahmad ibn Fadlan)은 922년경 바시키르인들이 사는 지역을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후에 자신의 기록에서 이들에 대해 ‘수가 5천여 명에 이르는 강인한 전사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찬란했던 ‘황금 칸국'의 민족적 유산, <노가이(Ногъай)>

‘노가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479년 기록된 러시아의 역사 문헌을 통해서다. 역사학자들은 이 민족명이 ‘금장 칸국’으로도 불리기도 한 킵차크 칸국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통치자로 알려진 ‘노가이 칸(Nogai Khan)’과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카라간디 국립대학교 소속의 역사학자 스마글로프 교수는 “노가이 칸의 지배 아래 놓여있던 부족들은 언젠가부터 자신들을 ‘노가일릐(ноғайлы)’로 지칭하기 시작했고, 이 이름은 이후 세워지게 되는 국가 ‘노가이 칸국’에도 국명으로 차용되기에 이르렀다”고 해설한다.
튀르크계 부족들의 총칭이었던 <타타르(Татар)>

다른 민족명들과 마찬가지로 ‘타타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타타르’가 고대 튀르크어에서 ‘산’을 의미하던 ‘타우(Tay/Tağ)’와 ‘탄생·삶’을 의미하는 ‘토르(törü)’가 합쳐져 ‘산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의미로 생겨난 명칭이라는 기원설이 있다.
한편 바이투르시눌릐 카자흐스탄 언어학 연구소 측에 따르면 과거 ‘타타르’는 특정 민족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여러 튀르크계 부족들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즉, 현대의 타타르 민족 뿐만이 아니라 당시 유목민으로서 살아가던 모든 튀르크계 부족들을 총칭하던 이름으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튀르크계 민족’과 동일한 개념으로 존재하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그 범위가 좁아지면서 카잔 지방을 본거지로 하던 타타르 민족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검은 냇물’이 흐르는 땅의 민족, <카라차이(Къарачайлы)>

러시아의 북캅카스 지역에서 살아가는 ‘카라차이(Къарачайлы)’ 민족. 이들의 이름이 생겨난 배경과 관련해서는 우선 민족신화에 기반한 기원설을 꼽을 수 있다. 아득히 먼 옛날, 카라차이 족을 오늘날 이들의 본거지인 쿠반강 상류 지역으로 인도했다는 전설적 통치자의 이름 ‘카르차(Карча)’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이다.
한편 오늘날 사실상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지리적 특성상 이들이 살아가는 지역이 ‘어두운 빛깔의 강이 흐르는 땅’이라는 의미에서 튀르크어로 ‘검은색’을 의미하는 단어 ‘카라(kara)’와 ‘개울’을 뜻하는 낱말 ‘샤이(çay)’가 합쳐짐으로써 ‘카라차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는 유래론이다.